뒤돌아보니 그리워지는 이 시대...
뒤돌아보니 그리워지는 이 시대...
  • 민돈원
  • 승인 2020.08.11 1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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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년 1월 겨울 예나 지금이나 선호하는 직장중의 하나였던 한전 신입사원 공채 시험에 나는 합격이 되었다. 얼마 후 제97기 신입사원 연수교육 통지를 받았다. 각 지점이나 사업소에 배치되기 전 실무에 반드시 필요한 업무와 기타 소양 등을 배우게 되었다.

당시 서울 쌍문동에 소재한 연수원에서 1개월 동안 합숙을 하는 교육이었다. 이 교육을 마치는 날 자신이 근무할 지역과 지점이 발표되는 긴장된 시간이 왔다. 나의 초임지는 서울 성동지점이었다. 나를 비롯한 4명이 같은 지점에 인사 발령 받았다.

그 때 받은 첫 월급 실 수령액이 11만 원쯤으로 기억한다. 그 중 가장 많은 지출은 매월 나가는 하숙비였다. 당시 월급의 절반인 5만원이었다. 하숙집은 출퇴근이 용이한 지점 근처였다.

지금은 하숙집이 거의 없어졌지만 그 땐 지방에서 온 학생이나 직장인들의 경우 주로 자취 내지는 하숙하는 풍토였다. 따라서 지방학생들 가운데 나와 같이 서울로 유학 온 하숙생 룸메이트가 있었다. 참으로 가족같이 여겨주는 좋은 하숙집이었다. 감정이 메마르지 않은 시대였다.

지금 돌이켜 보니 회사역시도 좋은 회사였다. 예컨대 '미스 킴! 커피한잔 타 와 ' 라고 해도 이런 것을 가지고 지금처럼 갑질이니 어쩌니 그런 말 자체를 만들어 낸 삭막한 분위기로 이슈화하지 않았다. 또한 차별이니 인권이니 성차별이니 하는 프레임으로 더더구나 몰아가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성적인 문제가 연일 사회 문제가 될 만큼 어지럽지 않았다.

후배 직원과 선배 직원 사이에 정겨운 면이 있으면서도 기본적인 룰이 있었고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나이가 많건 적건 상사나 선배 직원보다 먼저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던 회사 분위기였다.

그러면서도 당시 사회 분위기 구조에 있어서는 규범과 절도(節度)가 있으면서도 경색되어 있기보다는 연인들끼리 더 낭만적이고 애틋한 추억거리가 많은 시절이었다.

비록 언제부터인가 걸핏하면 소수 약자 대변한다느니 표리부동한 집단행동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시키려 하는 자유분방한 급진주의자들, 예컨대 동성애론 자들 내지는 이들을 옹호하는 세력들 없어도 지금보다 훨씬 더 인간미 넘치고, 사람 사는 감칠맛이 나는 정말 서로서로 화기애애한 회사였고 하숙집 역시 그러했으며 정감이 있는 사회 풍토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 인권과 평등을 자신의 통치수단으로 여길 만큼 이념적인 혼란의 대결구조로 변질시켜 버렸다. 그 결과 국민 통합은커녕 계속된 파열음으로 국민 분열의 구도로 만들어 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이같은 메카니즘이 교회 안에서도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즉 동성애, 퀴어신학과 같은 반성경적인 세상의 유행 신학에 맞서 성경과 교리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순수한 복음을 지켜 내려하는 자들과의 갈등이 표면화될 수밖에 없는 추세이다.

이런 국론 분열을 조장하는 배후의 세력은 어떤 이념이겠는가? 이런 일로 인해 반사 이익을 노리는 자들은 또한 누구이겠는가?

그런데 현재 나와 동시대를 사는 불특정 다수에게 사회 곳곳에서 암암리에 길들여지고 학습되어져 인권과 차별을 강변하는 지금 이 사회가 과연 감성이 넘치고 인간미 넘치던 그때 그리움보다 살 맛 나는 세상이라 할 수 있겠는가? 라고 질문한다면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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