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증편향으로부터의 해방
확증편향으로부터의 해방
  • 민돈원
  • 승인 2018.08.14 0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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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10여년이상 지내온 것 같다. 진주에서 목회하고 있을 때 서울근교에 계신 분을 진주까지 설교초청을 하여 모신 전직 감독회장님이 계신다.
그것도 단 하루 밤 헌신예배 또는 일일부흥회를 위해서였다 그렇게 오시면 먼 거리이기에 하루 밤 주무시도록 숙소를 잡아 드렸다. 그 대신 새벽까지 한 차례 더 말씀을 전해주시도록 부탁드리면 쾌히 승낙 하시면서 몇 번 다녀가셨다.
지금은 좀 더 가까이 계시기에 종종 모시기도 하는 전직 감독회장을 지내신 분이 나를 만날 때면 거의 빠지지 않고 하시는 말씀이 있다.

'민 목사, 감리사 할 때 됐지?'

이제는 여러 번 들어서 대부분 답변 없이 픽 웃고 마는데, 10여 년 전 똑같은 질문을 맨 처음 들을 때는 이렇게 직답을 드렸다.

'네, 그런데 저는 감리사는 관심이 없습니다.'

라고 답변하였고 지금도 그 마음은 여전하다. 같은 맥락에서 지금은 서로 다른 지방이지만 십 수 년 전에 같은 지방에서 목회했던 목사님과 한번은 대화를 나누던 중에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감리교회는 감리사를 해야 지방에서도 함부로 하거나 무시당하지 않고연회나 총회에 나가 자리 하나 차지할 수 있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아마도 그 말은 잘 들여다보면 일반 조직사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현실로 보인다.

그런데 정회원 된지 어언 20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목회연수로 따진다면 진즉 그 그릇은 스스로 챙겼어야 했는데 관심도 없고 미련도 없기에 그렇지를 못하고 평범하게 지낸다. 알고 보면 내 주위에 3-4년 후배들 감리사급이 적지 않다.

시험 봐서 당락이 결정되는 힘든 고시도 아니기에 그다지 자랑할 것도 못되지만 나름대로 명예로 여기지 않는다고 부인하기도 힘든 것 같다. 사실 자격만 되면 파벌이나 기득권 세력의 헤게모니에 밀리지만 않는 한 너나 할 것 없이 할 수 있는 자리, 그런데도 그 자리 꿰차려는 욕심이 적잖은 게 현실이다. 차라리 시험으로 감리사 감독을 자격자들 중에 고시처럼 어렵게 출제하는 문제와 일정한 심사기준을 정하여 철저한 성품검사를 거쳐 뽑는다면 오늘날과 같은 잡음이 많을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그렇게도 하고 싶어 하고 인기가 높으니 고시처럼 실력경쟁을 두면 좋을 성 싶어서이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그런 것들은 여전히 내게 논외 대상이다.
다만 목회열정이나 정의에 관한 주제라면 누구라도 만나 밤을 지새우고서라도 이야기하기를 둘째가라 하면 서러울 만큼 할 말이 많은 사람에 속한다.

종종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정치인들이 서로 정적이 되는 경우는 주로 정치적 성향 때문일 것이고 또 다른 요인이 있다면 지나친 과욕으로 인한 도를 벗어난 경쟁의식 때문이 아닐까 한다.
바로 이런 정적의 관계가 교회 안이나 목회자 세계에도 알게 모르게 팽배해 있다

그리고 이것은 주도권 싸움에 밀리지 않고 소기의 목적을 쟁취하려다 보니 서로의 관계를 여지없이 깨트려 버리고 만다. 이런 유형들이 만성적 질병처럼 치유 불가능하다시피 고착화 되어가고 있다. 이런 만성적 질병이 개인이면 한사람으로 끝나지만 교회 공동체 안에 발병되면 여러 사람이 몸살을 앓고 진통하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이미 오래전부터 감리교회를 비롯한 교계 바람 잘 날 없는 기득권의 일탈행위들이 연일 세간에도 탑 기사로 손색없을 만큼 기사화되는 것을 보면서 작금에 이르러 목사의 정체성을 어쩌면 기독교가 전래된 당시로 전면 초기화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깊은 고뇌에 잠기게 된다.

감리사와 감독은 2년으로 잠깐이지만 목사는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영원하다.
그러므로 그 잠시 자리 때문에 영원한 신의와 우정을 저 버리고 정적 같은 원수로 살아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이런 저런 일들을 목격하면서 최근 들어 알게 된 심리기재, 그것은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다.
이 용어는 자기에게 유리한 쪽의 것만 보려고 하거나, 들으려고 하는 성향으로 나타나는 치우친 선입견 또는 삐뚤어진 고정관념을 일컫는 말이다.

이런 성향이 알게 모르게 우리 속에 너무 팽배해 있다. 예컨대 한 때 우리 문화속에 택시 손님 중에 안경 낀 사람이 타면 그 날 재수가 없다는 허무맹랑한 말과 같은 따위가 여기에 속한다.

따라서 먼저 교회안에서 성도들 간의 관계, 성도와 목회자와의 관계에서 주의해야 할 것 역시 이 부분이다. 잘못된 자기 신념체계를 고집하여 남에게 그것을 주입하여 살면 믿음이 자라지 않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고 더욱이 교회 공동체 화합에 해를 주고 사회 부적응상태가 되고 만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확증편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나를 위한 듣기 싫은 쓴 소리를 경청하여 삶에 적용할 줄 아는 성숙하고 넒은 마음을 가진 자세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스스로 주관적인 결론을 자기 마음대로 미리 정해놓고 거기에 맞는 것만 취하고 산다면 자기체면에 걸려 낭패를 당하거나 더 큰 세계를 볼 수 없는 마음의 소경이 된 채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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