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새 트랜드, 교카공족
교회의 새 트랜드, 교카공족
  • 민돈원
  • 승인 2018.07.24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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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15년 이상 학교와 직장 생활을 하느라 줄곧 살게 된 적이 있다. 그러다 다시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된 사건은 목회를 하면서부터이다. 집안에 목회자는 고사하고 기독교인이 거의 희박하던 당시 상황에서 목회자로의 변신은 내게 있어서나 우리 집안, 그리고 내가 살았던 마을의 정서상 조금도 자랑할 만한 것이 못되었고 가히 충격적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지금이야 연세 많으신 부모님이 신앙생활을 하고 계시지만(은퇴장로, 권사) 그 때 불신자이셨던 아버님 하신 말씀은 지금도 생생하게 들려오는 것 만 같이 남아 있는데 그중에 이런 말씀이다. ‘...내가 마을 다니면 창피해서 얼굴 들고 다닐 수가 없다...<중략> 너 하나 없는 것으로 여기겠다...’ 7남매중 제일 맏이인 장남이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잘 다니던 괜찮은 회사 그만두고 목회자가 된다고 하는 그 당시 나의 모습이 조금도 마음에 차지 않을 뿐더러 도리어 창피하게 보이셨다는 말씀이다. 이 한마디로 마을 분위기나 집안의 정서가 어떠했는가를 동일한 경험한 분들이라면 짐작이 갈 것이다.

이렇게 해서 출발한 나의 첫 목회지는 한 번도 가 본적 없던 전남 영광이었다. 그곳에서 개척은 시작되었다. 더군다나 감리교회가 당시에 군 전체에 한곳도 없는 감리교회 불모지였다. 그런 그 지역에 있던 폐가를 사들여 창립예배 시작을 밖에 천막을 친 상태에서 야외에 일부는 준비한 의자에 앉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분들은 서서 개척예배를 드렸다.

내가 머문 곳도 집이 아닌 어느 식당에 손님 받는 겨우 3평 남짓한 방 한 칸이 내가 살던 집이었다. 그곳에서 하숙을 한 셈이다. 먹고 자고 새벽이면 일어나서 다음날부터 천막치고 개척 예배드리던 곳에 교회공사가 시작되기에 그 곳에 가서 기도하며 목회의 여정을 가게 되었다.
이런 생활의 열악함이야 애초부터 ‘어디를 보내실지라도 가겠습니다’ 라고 서원하고 각오했던지라 아무 불평할 것도 없었고 도리어 감사하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였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한 가지 적응이 잘 안 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개척에 대한 환경이나 상황 그런 것이 아니었다. 교인에 대한 것도 아니었다. 사는 집이 작기 때문이 아니었다. 다만 한 가지, 그것은 대형 서점이 없었기에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없다는 것이 내게는 가장 불편했고 정서적으로 메말라 가는 것 같은 마음이 들어 처음 1-2년은 무척 힘들었다.

그 때만 해도 책을 읽는 문화였고 지금처럼 서점이 사양길에 접어든 때가 아니고 붐비던 시대였다. 개척 하러 오기 전 나는 평소에도 늘 애용하던 서점이 있었는데 을지문고, 종로서적, 영풍문고, 그리고 교보문고, 그리고 정동에 있는 프란체스코 서원이었다. 심지어 가끔 책을 보러 영광에서 서울까지 4시간 이상 고속버스를 타고 서점에 들러 신간서적이 어떤 책들인지를 알 겸 읽기 위해 들르곤 할 정도였다.

오랜 세월이 흘러 지난 몇 주 전 서울에 오후 6시 약속시간이 있어 수시간전에 최근 서점의 풍경이 어떤지, 또 신간 책도 살펴보고 원하는 책도 읽기 위해 광화문에 있는 대형서점에 일부러 들러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넓은 매장에 각종 분야별로 색인이 되어 여러 코너를 둘러볼 수 있었다. 거기서 30년 전과는 다른 새로운 풍경을 목격하였다. 군데군데 책 읽을 수 있도록 자리를 배려해 놓은 것도 좋았는데 더 색다른 것은 대학 도서관처럼 넓은 대형 책상위에 칸막이 없이 책도 읽고 자습하도록 마련해 놓은 곳이 눈에 띄었다. 빈 의자가 없을 만큼 촘촘히 앉아 있는 분들을 살펴보니 단순히 독서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그 중에는 공부하는 고등학생들도 있고, 그리고 다른 시험을 준비하는 나이든 수험생들도 보였다.

▲ 서울 한 대형서점이 매장 안에 배려한 독서실

 

그 장면을 유심히 보는 순간 바로 그것이었다. 이제는 서점이 단순히 책을 판매하는 공급자 중심의 서점이라는 개념에서 탈피하여 소비자의 욕구와 필요에 응답하는 서점으로 변신된 모습이었다. 아! 그렇구나! 책을 읽으러 갔는데 서점의 트렌드(trend)를 읽을 수 있었던 이 값진 깨달음은 서점에 가서 책 한권을 읽고 나온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한 가치획득이었다. 라는 새로운 안목을 갖게 되었다.

흔히들 전철 안이나 길거리에서 보면 어린이, 청년 어른 등 너나 할 것 없이 온통 스마트 폰 밖에 안보는 세상인가 했는데 서점에 들러보니 여전히 책을 구매하러 오는 분들, 책을 읽고 있는 분들이 적지 않음을 목격하면서 왠지 내 마음이 풍요로워 지는 것만 같았다. 최근에는 일반 카페가 기존의 커피와 음료를 마시는 것과 달리 여기에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해 놓은 일명 ‘카공족’들 대상으로 한 카페도 있다고 한다. 일부 교회도 카페를 시설하여 운영하는 곳도 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좀 더 진일보하여 우리교회는 물론 많은 교회들이 교인들의 정서를 함양하고 마음의 양식을 풍요롭게 하며 삶의 깊이를 더해주는 책 읽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서공족(대형서점에서 공부하는 사람), 카공족을 넘어서 이른바 “교카공족”(‘카공족’‘에 착안하여 내가 임의로 만들어 본 용어임 : 교회 카페에서 음료 등을 마시면서 공부하고 책을 보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우후죽순 생겨났으면 하는 바램을 이번 서점을 들른 후 너무 얕아지고 보이는 것에만 매몰되어가는 이 시대에 그 대안 중의 하나로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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