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성도의 구제 (마 6:2~4)
20. 성도의 구제 (마 6:2~4)
  • 주성호
  • 승인 2018.05.14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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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 경전의 3대 요소가 구제, 기도, 금식이라고 했는데 구제는 대인(對人)관계에서, 기도는 대신(對神)관계에서, 금식은 자신을 향한 경건 생활의 배제할 수 없는 생활 원리들이다. 그 중에 먼저 천국 시민으로서 특별히 대인관계에서 가져야할 삶의 방법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 오늘 본문의 구제이다. 구제는 초대 교회에서 교회가 해야 할 일 중 인간관계에서는 가장 으뜸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도 구제를 중요시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한 것 같은데 사람들에게 의도적으로 나타내 보이려고 하기 때문에 도저히 용납될 수 없다고 하면서 외식적인 구제를 경계하는 말씀을 하셨다. 오늘 본문에서 참된 구제는 바리새인들처럼 자기 의를 드러내어 사람들에 의해 영광을 받는 위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제할 때 오른손이 구제를 하는데도 왼손이 모를 정도로, 자신을 의식하지 않으면서 은밀하게 해야 됨을 예수께서는 강조하셨다.

첫째: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구제(2절)

1)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하는 구제
예수께서 왜 외식하는 자들에 대해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는가? 외식하는 자들의 특징은 하는 일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보다는 사람에게 영광 받기 위한 행위를 하기 때문이다. 인간 활동의 목적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목적이 있어야 한다. 더구나 성도들은 두말할 것 없다.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는 말씀을 KJV는 "not do trumpet"이라고 번역하였다. 유명한 칼빈도 문자적 해석을 가하고 있으나 실제로 유대인들이 구제하면서 나팔을 분 근거나 흔적은 없으므로 구제하면서 나팔을 불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가운데 공연히 나팔 불지 말라는 말을 하는데 과장해서 확대해서 자기선전을 하는데 쓰는 말이다. 그러므로 본문의 뜻도 상징적인 뜻으로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지적하기 위한 것으로, .사람의 눈과 마음을 끌기 위한 방편으로 행하는 구제 행위의 표현을 나팔을 불지 말라고 했다고 볼 수 있다. 외식하는 자들이 하는 구제는 구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구제가 아니라 구제하는 자기를 알아주기를 원하며 작은 일을 해 놓고도 크게 알아주기를 원하므로 자기선전에만 급급하다.

2) 상급이 없는 구제
왜 성도들이 구제하는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하느냐? 갈 2: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 딤전 6:18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한 마디로 구제는 하나님의 명령이므로 성도로서 기쁜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행하라는 권면이다.
마 6:19~21과 눅 12:33은 구제하는 것은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과도 같다고 했다. 세상에 쌓아놓은 재물은 없어지기도 하고 변하기도 하지만 하늘에 쌓아둔 것은 없어지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는 영원한 것인데, 여기서 말하는 보물은 곧 구제의 행위를 뜻한다. 의식하는 자는 원래 연극배우를 가리키는 말이다. 연극배우나, 탤런트들은 본래의 자기 감정을 감추고 대본에 나오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나타내야 하므로 결국은 자신도 속이고 남도 속이는 자이다. 그러므로 외식이란 말은 위선자라고 하는 말로도 쓰이게 되었다. 외식하는 자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행동하므로 그의 행동을 본 사람들로부터 이미 칭찬도 받고 상도 받았으므로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칭찬이나 상도 없다. 그러므로 오늘의 교회에서 행해지는 구제들이 사람들로부터 칭찬이나 상 받는 행위가 되지 않도록, 즉 나팔로 봉사하지 않도록 삼가 조심해야 한다.

둘째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구제(3~4절)

1) 은밀하게 하는 구제
예루살렘 성전 출입구 오른편에는 가난한 사람을 위한 구제함이 놓여 있어서 성전에 들어가는 자 중에 구제하기를 원하는 자는 오른 손으로 그 통에 구제금을 넣었다고 한다. 어쨌든 오른손이 하는 일을 어떻게 왼손이 모르게 하느냐? 실상은 불가능하다. 문자적으로 해석한다면 구제하는 자신도 모르게 하라는 뜻인데 당시의 격언이라고 하는 이도 있으나 분명하지는 않다. 은밀한 구제는 자기 의지에서 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아무나 쉽게 되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명령으로 되어지는 것도 아니다. 죄의 용서함을 받은 사람이 남을 용서할 수 있듯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그의 진정한 사랑을 받아본 자가 너무도 감사하고 감격하여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와야 은밀한 구제도 가능하다.
그런 마음가짐이 되면 구제가 성도의 마땅한 의무로 생각하게 된다. 해도 괜찮고 안 해도 괜찮은 것 아니다. 안 할 수가 없고 해도 공치사 받거나 인정해 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더구나 상 같은 것도 전혀 상관없다. 베써(Besser)에 의하면 성전에 부끄러워하는 자선가들이 부끄러워하는 빈민들에게 구제물을 분배해 주기 위한 장소를 제공했다고 하는데 그 장소를 '침묵'이라 불렀다 한다.

2)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구제
천국 시민의 활동 목적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장로교 소요리문답 제1조에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오늘의 교회나 성도들이 하는 어떤 형태의 구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있다.
그런데 현실은 너무나 인간 위주이다. 교회의 갖가지 행사가 너무나 인간 위주가 많다. 00취임예배, 00축하예배, 00출판기념예배, 심지어 박사학위 취득 축하예배. 등등. 그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사람들이 영광을 가로채니 문제다. 진실한 마음으로 무엇인가 신앙적으로 하려면 인간적인 욕망, 자만심의 충족코자 하는 망상을 버려야 한다. 사람이나 교회에 기준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 목적을 두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할 때 가능하다. 끝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구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늘의 본문의 교훈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즉 자기가 해 놓고도 알지도 못할 정도로 하라는 것이다. 마 19:21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쫓으라." 사랑으로 우러나오는 구제여야 한다. 행 11:29에는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했다. 나름대로 최선의 방법을 다하여 구제금을 보냈다. 고후 8:3~4을 보면 힘대로 할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했다. 힘대로는 나의 힘으로 가능하나 힘에 지나도록 하는 것은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오늘 우리의 구제는 체면 유지를 위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외식이 되고, 하고도 책망 받는다. 감사한 마음에서 우러나와 기쁜 마음으로, 힘대로,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므로 하기 바란다. 성탄절을 불과 한 주 앞두고 있는데 의의 있게 보내려면 받기보다 주는데 목적의식을 가지고 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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