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외식을 금하신 예수 (마 6:1)
19. 외식을 금하신 예수 (마 6:1)
  • 주성호
  • 승인 2018.05.0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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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5장에서 18절까지 하나님의 자녀로서 기본 자격을 밝혔다.
① 천국 시민으로서 받아야 할 복은 8가지(3~12절)인데, 그 복을 받으려면 심령이 가난해야 되고, 애통하는 자, 온유 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② 천국 시민으로서의 역할(13~16절)은 특별히 불신 세계에서의 빛과 소금의 역할이어야 한다.
③ 참된 의의 생활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옛 율법의 문제점들을 들어 기본 이념을 근본적으로 뒤집어엎어 버리셨다.

6장에서는 천국 시민으로서 생활해야 할 행동 지침을 구체적으로 가르치셨다. 특히 구제, 기도, 금식은 유대교 경전의 3대 요소이다. 그런데 예수님 시대의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철저히 외식에 빠져 있었다. 그러므로 천국 시민이 된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들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기 위해 6장의 교훈을 주셨다. 오늘 본문은 그 서론으로 주어진 말씀이다.

첫째: 경계해야 할 외식

1) 사람들에게만 보이려고 하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이 누구보다 더 주님의 책망을 가장 신랄하게
받은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해야 될 일을 아니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유대교 경전의 3대 요소인 구제. 기도, 금식도 날짜와 시간을 지켜가면서 철저히 실행했다. 그런데 왜 문제가 되었는가?

1절 "사람에게 보이려고"(qeaqhnai)라는 말은 목적을 위한 의도적인 행위를 나타내는 낱말이다. 유대인들이 하는 일들의 목적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다.
마 23:5을 보면 예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 술을 크게 하고"라고 말씀하셨다. '경문'은 이마나 손목에 기도의 끈을 매는데 네 성구(율법)를 기입하여(양피지에) 송아지 가죽으로 만든 주머니에 넣어 차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차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니라 보이려고 크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옷 술을 크게 한다고 했는데, 옷 술은 흰색과 청색실로 만들어 옷단에 부착하는 장식인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방인과 구별된 백성이며 그것을 명심케 하기 위해 제정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크게 붙임으로 특별한 존재인 것처럼 과시하려 했던 것이 문제였다.
마 23:29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마 23: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뱀이나 독사는 사단의 화신이요 상징이었다(창 3:8; 계 20:2). 이 말씀들은 인자하신 예수께서 그런 말씀을 할 정도로 지독한 욕이요 저주였다. 사람들은 외적인 행위의 결과만을 가지고 매사를 평가하기 때문에 때로는 외식 그 자체가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고 영광도 받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외식을 가장 싫어하고 마지막 심판 때에도 외식한 자는 결코 용납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2) 주의해야 할 의식
"너희 의를 사람 앞에 들어내 보이려고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셨다. '주의하라'라는 말은 '프로세케테'(prosecete)로서 '마음을 열중하다, 주목하다, 감사하다'라는 의미의 동사이다. 그것은 어떤 법칙이나 행위에 대하여 금지하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정확한 결과를 보기 전에는 함부로 행동을 취하지 말라는 의미도 된다.

사실 세상에는 주의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다. 잠시라도 주의를 소홀하면 엄청난 일들이 수시로 벌어지는 위기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인생들이다. 그런데 본문에서 주의하라는 것은 전혀 성격을 달리하는 것으로 성도의 생활에서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외식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말씀이다. 마음에 내키지도 않고, 하고 싶은 일이 아닌데도 입장 때문에, 채면 때문에 외식해야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일은 없도록 하라는 주의 사항이다.
마 5:20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셨다. 외식 면으로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너무도 철저했으니까. 그러나 어려울 것이 없는 것은 무슨 일이든지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인하여 거듭난 자로서, 사랑과 진실함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의를 행할 때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된다.

지난 주일 저녁에 경험한 이야기를 하나 하겠다. 청년들이 선교단을 조직하고 저녁 늦게까지 연습하고 있었는데 집사람이 "여보 자장면이라도 사 줍시다." "나는 돈 없는데......"했더니, 윤순중 집사님이 봉투를 하나 주셨는데 30,000원이라고 했다. 순간적으로 내 마음속에. 요즈음 우리 살림이 말이 아닌데, 미국의 아들 학비 보내라 해서 보내고, 마누라 병원비(40일간), 추수감사 헌금 등등 반찬거리나 할 것이지 하는 마음을 먹었다가, "통닭구이는 어때" 하고 5마리를 사다가 라면 끓여서 함께 흐뭇한 마음으로 저녁을 먹었는데 예쁜 우리 집사람 얼굴이 더 예뻐 보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할 때 굉장한 일, 눈에 드러나는 일을 하고 난 다음에 칭찬 받는 일도 좋다. 하지만 보다 아름다운 것은 사람들이 알아주고 안 알아주는 것과는 상관없이 마음에서 우러나와 기쁜 마음으로 지극히 작은 일을 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예수님의 정신이 바로 여기에 있다.

둘째: 하나님께로 받는 상급

1) 상급을 받지 못할 자.

상에 대한 성서적인 표현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① 일꾼의 급료로 받는 것(눅 10:7)
② 영적 수고에 대한 열매의 대가로(고전 9:18)
③ 하나님의 상급으로(마 5:11~12)
④ 순종을 통한 상급으로(마 5:46)
⑤ 종말론적인 상급으로(고전 3:8)
⑥ 은혜의 상급으로(롬 4:4)

어쨌든 상이란 임금 또는 보상이란 뜻으로 수고한 행위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남에게 보이려는 목적을 가지고 의를 행하였고, 이미 이 땅에서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영광을 받았기 때문에 목적은 성취되었으니 하늘로부터 받을 상은 없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상 받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상을 받을 때는 기분이 참 좋을 것이 분명한데, 세상에서는 많은 상을 받았으나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상이 없다면 어떠하겠는가? 1965년경 박경원 강원도 지사께서 화전민들과 함께 살고 있는 나에게 군청을 통해 5.16 민족상 후보로 추천할 테니 인적 사항을 올리라고 전통으로 하달했었다. 그래서 상 받으려고 하는 일이 아니니 이곳에서 나갈 때나 달라고 했던 때가 30세 되었을 때인데, 지금 생각하면 제법 쓸만한 생각을 해냈다 생각된다.
벧전 1:24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라고 했다. 이 세상 영광이란 풀의 꽃과 같은 것인데 그것을 위해 일생을 보낸다면 어리석은 자의 삶을 살았다 할 수 있다. 어거스틴은 "영예를 사랑하는 것은 참된 경건의 치명적인 파멸(독,毒)"이라고 했다.

2) 상급을 받을 자
하나님께서 선행을 식별하시고 상을 줄 때에는 결과로 나타난 통계 자료에 의해서가 아니라 평상시 얼마나 은밀하게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였느냐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앞으로 계속해서 나오는 말씀 가운데 4, 6, 18절은 거듭 이것을 반복하며 강조했다. 종교생활의 본연의 모습은 외적 표시보다 내적 충실에 노력하는 것인데 오늘의 교회와 성도는 외적인데 너무 치우쳐 있음을 뉘우쳐야 한다. 교회 갱신의 소리가 날이 갈수록 높아가고 있는데 별 변화는 없는 것이 심각한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고전 3: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 했다. 마지막 심판 때 성도는 죄의 심판은 없어도 일한 대로 받는 상급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큰상은 어떤 자들이 받는가? 마 5:11~12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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