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케 하는 자 유다
화평케 하는 자 유다
  • 이구영
  • 승인 2018.04.13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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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넷째 아들 유다에게는 두 가지 큰 업적이 있습니다.
첫째는 요셉과 형들 사이의 갈등 구조 속에서 죽음을 앞에 둔 요셉을 살려냅니다.
형들은 배다른 동생 요셉을 미워했고 요셉을 죽이기 위해서 큰 구덩이에 던져버렸습니다.
이제 배고픈 맹수의 밥이 되든지, 그 속에서 굶어 죽든지 요셉의 목숨은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그때 유다는 형제들을 설득하기 시작합니다.
[창 37:26-27]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제들이 청종 하였더라“
유다는 죽을 고비에서 형들과 요셉 사이를 중재함으로 요셉을 살려냅니다.

둘째는 애굽의 총리와 형제들 사이의 오해로 동생 베냐민과 아버지 야곱이 모두 죽게 되었을 때 유다는 그 둘 사이의 오해를 풀어내고 동생 베냐민은 물론 아버지 야곱과 형제들 모두를 살려냅니다. 애굽의 총리는 야곱의 아들들을 정탐꾼으로 몰아 죽이려고 했습니다. 모두 죽이지 않으면 적어도 막내아들인 베냐민 하나라도 죽이려고 합니다.
만약 베냐민이 죽는다면 그를 사랑하는 아버지 야곱의 죽음도 당연한 듯 받아들여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때 유다는 애굽 총리 앞에 나아갑니다.
그리고는 그 엄정하고 공의롭게 일을 처리해 나가는 애굽 총리에게 감히 건의를 합니다.
내 아버지가 제일 사랑하는 아들이 바로 이 막내아들 베냐민이고, 이 베냐민의 죽음은 곧 아버지의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차라리 나를 죽이라고 자신의 목숨을 담보합니다.
아버지와 막내 동생을 살려내려고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는 유다!
그 유다의 중재와 헌신 앞에 애굽 총리 요셉은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고 형들과의 화해를 시작합니다.
전쟁과 다툼이 끝나고 화해와 평화의 관계를 시작하게 됩니다.
이 엄청난 관계 개선의 일등공신이 유다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창 44:33-34]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그 아이가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내가 어찌 내 아버지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버지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유다는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면서 아버지 야곱과 베냐민을 살려내려고 합니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요셉은 결국 큰 감동의 울음과 함께 형들과 화해를 시작하게 됩니다. 음식을 차려 놓고 함께 먹으며 지난날을 이야기 하고, 오해를 풀고, 한 하나님의 자녀요, 한 아버지의 자녀임을 강조하면서 그들 모두를 책임져줍니다.

문득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화평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창세기 49장에 보면 죽음을 앞 둔 야곱이 아들 12명을 세워 놓고 축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축복할 사람은 축복하고 저주할 사람은 저주하는 자리입니다.
그날 야곱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형제들 중에 제일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온 사람,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사람은 유다임을 알았습니다.
야곱은 다른 아들과 다른 차원으로 유다를 축복합니다.
자녀들의 머리에 손을 얹어 일일이 안수기도를 하는데 그 내용이 다 다르고 그 길이와 깊이가 달랐습니다.
르우벤 에게는 77글자로 축복과 저주를 뿜어 냅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함께 146글자의 기도를 해 줍니다.
그런데 넷째 아들 유다에게는 무려 242글자의 축복만을 쏟아 놓습니다.
스불론에게 32글자, 잇사갈 65글자, 단 57글자, 갓 23글자, 아셀 29글자, 납달리 23글자입니다. 요셉 조차도 239글자, 베냐민 35글자입니다. 특히 아버지 야곱은 유다에게 형제들의 찬송이 될 것이고 형제들의 지도자가 될 것임을 예언하며 축복했고, 야곱의 기도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요셉과 베냐민을 제외한 다른 동생들에게 쏟아부은 모든 복을 다 합쳐도 유다의 것보다 못합니다.

형제들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려고 손해 봄을 감수했던 유다입니다.
형과 동생을 살리고 형제들의 목숨과 재산을 지키려고 자신의 목숨마저 포기하려던 유다입니다. 그런 유다를 하나님께서는 보고 계셨고 아름다운 축복으로 장식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고, 그를 통해서 다윗 왕이, 그리고 예수님이 오시게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에 11명의 경쟁자를 뚫고 당당하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화목제물, 평화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의 갈등과 멀리함을 이어주시려고 당신의 목숨을 포기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의 죽으심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죄 값으로 벌써 죽었어야 할 우리들이 그분의 죽으심 덕분에 아직 살아 있고, 천국에 대한 소망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표현합니다.
관계가 깨어 졌을 때 그 관계의 이어짐을 위해서 드리는 화목제물!
아무 죄 없이 목숨이 사라짐으로 누군가와 누군가를 연결하는 화목제물!

유다는 평화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유다의 혈통에서 나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나 사이를 이어주신 화목제물이십니다.

화평케 하려면 많은 손해가 있습니다.
힘듬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이어지고 있고,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참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릅니다.
오늘도 화평케 하는 자의 사명을 생각해 보며, 나는 화평케 하는 자인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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