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하게 다양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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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구영
  • 승인 2017.02.10 0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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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내가 선택한 것 보다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에 이끌려 삶을 살아가 곤 합니다.
남자가 될 것인지 여자가 될 것인지를 내가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언제 태어날지, 어디에 태어날지도 내가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성격, 기질도 내가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아이큐와 체력도 내가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시력, 수명, 목소리, 얼굴크기, 키나 몸무게도 내가 선택하지 않았음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성장하면서 약간의 수정은 가능합니다.
그렇지만 큰 틀을 깨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캄보디아 2대도시인 씨앤립에 수상마을이 있습니다.
캄보디아 바탐방주 바탐방씨티에서 수도 프놈펜으로 가는 길 어느 곳 에서도 수상마을을 본 적이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으로 난민이 되어 떠돌다가 1970년대 중반에 그곳에서 정착한 사람들입니다.
배 위에서 태어나고 배 위에서 먹고 자고 일을 배웁니다.
옆 배에 타고 있는 사람과 친구가 되고 함께 고기를 잡고 수영을 합니다.
밑이 보이지 않는 뿌연 황토 물, 혹은 잿빛 물 속에서 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악취와 가난은 도저히 풀 수 없는 난제이고 난민이기에 보호해줄 국가도 없습니다.

또 바탕방 도심지에서 약간 밀림속으로 들아만 가도 상상도 못할 가난가운데 사는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 나무로 지어진 자그마한 마루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지금도 살고 있습니다.
방한 칸 없이 그냥 나무를 이어 만든 마루가 전부입니다. 나무와 나무사이에 해먹이라도 달아 그네를 타듯 잘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닭과 병아리들, 개와 강아지, 고양이.... 어쩌다 삐쩍 마른 소라도 한 마리 있으면 부자입니다.
전기도 없고 수도도 없습니다.
빗물을 받아 씻고, 먹고, 음식을 만듭니다.
파리와 함께 살고, 모기와 함께 살아갑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저 사람들은 스스로 저들의 삶을 선택하지 않았는데 너무 힘겹게 사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참 묘한 일은 그들이 우리들보다 훨씬 더 환하게 웃으며 산다는 것입니다.
얼굴에 미소가, 환한 웃음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핸드폰이나 가전제품이 하나 없어도, 옷이나 악세사리가 거의 없어도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물질적 풍요가 우리들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상황을 살아가는 내 눈이 중요합니다.
익숙하게 구정물로 세수를 하지만, 그 물을 구정물로 정의한 것은 그가 아니라 나 임을 알게 됩니다. 그들에게는 어릴 적 부터 보아 왔던 그냥 물 일 뿐입니다.
손으로 밥을 먹는 것은, 다듬은 채소를 닭과 함께 나누어 먹는 일은 우리의 기준으로 더러운 것입니다.

문득 이 모든 것을 지으시고 결정해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됩니다.
그들의 삶 속에서 함께 하시며 웃음을 주시는 하나님을 또 생각하게 됩니다.
절대로 우위에 있지 않으면서도 돈이 조금 있다는 이유로 거들먹거리는 사람들 역시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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