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가들이 주목한 성서의 핵심 본문들과 영성학적 의미
영성가들이 주목한 성서의 핵심 본문들과 영성학적 의미
  • 김수천
  • 승인 2017.01.18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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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에는 영성적 삶과 관련된 수많은 구절들이 있다. 여기에서는 관상 기도자들에게 가장 주목 받아 온 신구약의 두 구절만 고찰해 보고자 한다. 아가서 8장 6-7절과 마태복음 5장 8절이 그것이다.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아가서 8장 6-7절)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8절)

아가서는 전통적으로 영성가들에게 주목 받아 온 책인데 대표적으로 끌레르보의 베르나르(St. Bernard of Clairvaux)가 그러하다. 비록 아가서를 해석하는 견해는 다양하지만 구약학자들은 아가서 8장 6-7절이 아가서의 주제에 해당한다고 동의한다. 신과 인간 사이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사랑이다. 그것은 신과 인간이 지향하는 사랑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 이기적 사랑을 지향한다면 신은 이타적이다. 이기적 사랑을 추구하는 인간은 그러하기에 구원이 필요하다. 온전한 구원은 신의 사랑 안에 있다. 영성가들은 온전한 구원을 위해 예수를 닮아가는 성화에 관심을 가졌다. 성화란 다른 말로 신의 사랑에 압도되어 신적인 사랑의 존재가 되어 가는 것이다. 그들의 관심은 신적인 사랑의 존재가 되기 위해 어떻게 영적으로 성장하는가에 있었다. 그러한 영적 성장의 길의 핵심은 갈망이었다. 그래서 남녀간의 사랑과 사랑에 대한 갈망을 노래한 아가서는 신의 사랑을 향한 갈망에 좋은 유비가 된 것이다. 죽음의 세력만큼이나 강한 사랑, 그래서 홍수로도 끌 수 없는 사랑의 불을 가진 아가서 주인공의 마음이 신과의 관계에도 필요하다는 영감을 준 것이다. 이처럼 영성가들은 성서 전체에서 갈망이라는 주제에 집중하였고 그들에게 아가서는 강력한 모티브를 제공하였다.

관상 기도자들은 신약에서는 마태복음 5장 8절을 주목하였다. 신약학자들은 이 구절을 대체로 유일신 신앙과 종말론의 빛에서 해석한다. 유일신 신앙적 해석이란 본문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것이며 종말론적 해석이란 후반부에 해당하는 것이다. 오직 여호와만을 섬길 것을 요구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녀야 하는 것은 마음의 청결이다. 마음의 청결이란 두 마음을 품지 않는 것으로 동기와 행위가 일치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 그러한 신자는 종말 때에 하나님을 대면하는 지복(至福)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영성가들은 왜 이 본문을 주목했을까? 대부분의 영성가들의 관심은 종말이 아니라 현재였다. 대부분의 영성가들은 종말에 관하여 거의 언급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살다 죽었기 때문이다. 죽음조차 그들에게는 비극이나 두려움의 대상이 못 되었다. 그런데 그들에게 언제나 문제가 있었다. 청결한 마음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성부를 창조자로 그리고 성자를 구원자로 고백하고 살았지만 그들의 내면은 종종 혼탁했고 혼란스러웠다. 성령의 임재만을 갈망하고 기다린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마음의 청결에 이르는 각고의 훈련으로 마침내 하나님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의 얼굴을 물리적으로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확신했다. 하나님이 자신들의 면전보다 더 가까운 영혼 안에 찾아 오셨다는 것을...
끌레르보의 베르나르는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 체험을 이렇게 말한다. “나는 주께서 임재하심을 느꼈다. 후에 되돌아보니 그는 나와 함께 하고 계셨다. 그리고 때때로 그가 오
실 것이라는 예감이 든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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