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버지의 그 아들
그 아버지의 그 아들
  • 신상균
  • 승인 2016.11.2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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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학교 1학년인 딸과 초등학교 3학년이 아들이 있다. 그러다보니 아내와 함께 집을 비우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멀리 출타해도 아이들이 돌아오기 전까지 집에 돌아와야 했다.

얼마전 아내와 함께 서울에 볼 일이 있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누나보다 먼저 오기 때문에 아들이 집에 오는 시간에 맞추어 집에 도착하려고 서둘렀지만 시간이 늦어지고 말았다. 노심초사 걱정하면서 집을 향하여 오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아빠!”

아들의 목소리였다. 아이가 혼자 있는 것이 겁이 나서 전화한 것 같았다.

“아빠, 이상한 사람들이 교회 왔어요.”

아들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오늘 교회에 전기공사를 위해 사람들이 온 것임을 알았다. 나는 아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말했다.

“걱정하지마, 그 사람들 오늘 전기 공사 때문에 점검하러 온 거야.”

그러자 아들 목소리를 낮추며 말한다.

“아빠, 그런데 저 사람들 교육관에 들어가요. 어떻게 열고 들어가는거죠?”

“응, 아빠가 교육관 비밀번호 알려줬어.”

“아, 아빠가 알려준거예요.”

“그래. 아빠가 알려줘서 문 열고 들어간거야.”

“그럼, 저 신경 안써도 돼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갑자기 머리가 띵하고 울리는 것 같았다.

아들이 전화한 것은 무서워서 전화한 것이 아니라, 낯선 사람들이 교회에 침입했기 때문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문을 열고 교육관에 들어가니 아들이 생각하기에 도둑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아들이 갑자기 대견하게 생각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누가 와도 모른척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혹시 나에게 해꼬지 할까봐 두려워하는데, 아들은 그 사람들이 교회 물건 훔쳐갈까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누가 목사 아들 아니랄까봐!’

그랬다. 아들은 교회 누가 오면 아빠가 나가서 그들을 만나는 것을 보았다. ‘누구시냐고, 어떻게 오셨느냐고’ 묻는 아빠의 모습을 보았던 아들은, 차마 나가서 누구시냐고 묻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행동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교육관에 들어가는 순간, 그대로 두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아빠에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아들이 다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의 모습을 아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과연 멋 훗날 아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교회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할까?

난 어렸을 적에 부모님이 신앙생활 하는 모습을 보았다. 의도적으로 본 것이 아니라 그냥 보고 자랐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내가 부모님의 모습을 살아가고 있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속회를 지도하고, 교회 성가대를 하시고, 기도하고 성경을 읽는 모습. 굳이 배우려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모습은 내게 심겨졌고 나는 지금 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만약 부모님이 다른 모습으로 사셨다면 나도 지금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장 좋은 교육은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교회 목사님에게서 본 것, 집에서 부모님들에게 본 것, 세상에서 선배들에게 본 것, 결국 우리는 우리가 본 모습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목사는 많은 설교를 한다. 그러나 그 설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다시 한번 내 모습을 되돌아본다. 아이들에게는 보여지는 아빠의 모습, 성도들에게 보여지는 목사의 모습.

그 모습이야 말로 참된 교육이요, 우리의 미래일 것이다.

한국교회 미래의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요, 가정의 미래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더 바른 모습으로, 더 인자한 모습으로, 더 사랑스런 모습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우리교회 성도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 목사의 그 성도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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