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밤
아름다운 밤
  • 신상균
  • 승인 2016.11.23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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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교회의 시골목사 이야기 2016년 11월 23일 수요일

11월 20일은 우리교회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날이다. 이곳에 부임한 이후로 추수감사절마다 선교회별 발표회를 했는데, 금년에는 처음부터 불안했다. 벌써 10년 이상 발표회를 하다보니 예전의 열정도 찾아볼 수 없었고, 어떤 선교회원들은 오히려 귀챦아 하기도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2달전부터 선교회별 발표회를 준비하라고 광고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여서 연습하는 선교회는 하나도 없었다. 모이는 시간조차 힘들다는 것을 안 나는 주일 오후 예배 시간을 짧게 하고, 그 이후에 선교회 발표회 준비를 하도록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열심히 연습해야할 오후 예배 시간에 어떤 선교회장은 아예 참석도 하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얼마나 하기 싫었으면 선교회장도 오지 않았을까 생각을 하니 더욱 더 걱정이 되었다.

일년에 한번 맞이하는 추수감사절, 가장 기쁘고 즐겁게 하나님께 감사하며, 춤과 노래와 연극을 해야 하는데, 수준 이하의 발표회를 할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아예 예배 시간에 광고를 하면서 이번 추수감사절 행사를 잘 준비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갈수록 점점 불안해져갔다. 그러면서 내 마음속에는 내년부터는 선교회별 발표회를 하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힘들게 준비해서 초라한 발표회를 할 바에는, 전문적인 사람들을 따로 모아 우리가 예전에 했던 문학의 밤처럼 수준 높은 발표회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8개 여선교회와 3개 남선교회를 합쳐서 5개 여선교회와 2개 남선교회로 만들어야 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추수감사절 발표회에 대한 불안이 내년의 불안으로, 목회의 불안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추수감사절을 일주일 앞두고 각 선교회가 발표할 제목과 내용을 알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순간 나는 또 한번 절망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정말 특별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과거에 했던 비슷한 것들 뿐이었다. 게다가 한 선교회는 수중발레를 한다고 하는데 바닥에 누워서 발을 올렸다 내렸다 할 생각을 하니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추수감사절을 앞둔 마지막 주일오후, 연습을 마치고 나오는 선교회원들이 ‘이번주에 모여서 연습해야 하겠다’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다시 희망이 생겼다. 그런데 웬걸 주중에 모여서 연습하는 팀은 보이지 않고, 시간만 흘러갈 뿐이었다. 다행히 토요일 한 팀이 모여서 연습하는 것을 보고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위안을 삼았다.

추수감사절 낮 예배를 드리고, 저녁 발표회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동안 기도로 단련된 나는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 우리 성도들도 힘들겠지. 직장다니랴 가정돌보랴 교회일하랴. 그래 그동안 준비한 것 그저 마음 편안하게 지켜보자. 그리고 수고했다고 말해주자. 절대 실망하지 말자.’

다짐하고 다짐하면서 추수감사절 저녁 7시 발표회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나의 모든 예상은 다 무너지고 말았다. 우선 내가 짜 놓은 순서대로 진행이 되지 않았다. 수중 발레를 발표하는 선교회가 무대 셋팅을 해야 하는데, 나중에 하면 하기가 힘들다고 제일 처음에 해 달라는 것이었다. 좀 기분이 상했지만 다 받아들이기로 한 나는 그러자고 편안하게 대답했다.

드디어 음악이 흐르고 첫 번째 선교회가 발표회를 시작했다.

“수중 발레”

수중발레가 물에서 하는것이지 교회 무대에서 가능하겠는가? 그런데 놀라운 일이었다. 교회 무대에서 수중발레가 가능한 것이었다. 물속에 첨벙, 호흡을 가다듬고 수영을 하면서 춤을 추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물속으로 고개를 집어넣고 발을 들어서 모양을 만들며 수중발레를 하는 것이었다.

충격! 충격! 충격! 이었다. 내 평생 사는 동안 처음으로 교회 무대에서 수중발레를 보았다.

그 다음 순서 ‘세라밴드체조’ 이미 인터넷 유투브를 통해, 세라밴드체조에 대하여 알고 있었던 나는 그저 체조로 생각했다. 그런데 밴드를 잡고 찬양을 하며 하나의 협동심을 일어내는 데 아름답게 생각했다. 그 다음 ‘천국은 마치’ 율동, 워낙 우리교회에서 많이 부르고 함께 율동을 했던지라 정말 기대감이 없었다. 그런데 이건 완전히 다른 무대였다. 발표하는 선교회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뒤로 자빠질뻔 했다.

그렇게 그렇게 한순서 한순서가 진행되었다. 그런데 그때마다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수가 없었다. 어떤 것은 재미있어서, 어떤 것은 아름다워서, 어떤 것은 거룩해서, 어떤 것은 코끝이 찡해서.

모든 순서가 다 끝났을 때는 나의 눈은 너무 따가왔다. 그러면서 내 가슴속에는 벅찬 감동이 몰려왔다. 그러면서 나는 새로운 감정을 깨닫게 되었다.

‘어리다고 생각한 자녀가 멋지게 발표회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모의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느끼는 감정’

모든 것이 너무 아름다웠다. 모든 것이 너무 감사했다. 모든 것이 너무 행복했다. 마치 깜짝 쇼를 하듯 추수감사절 발표회가 내 목회의 아름다운 결실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마지막 모든 순서가 마치고 나는 추수감사절 오행시를 지어 성도들에게 들려주었다.

추 – 추수감사절입니다.

수 – 수고하셨습니다.

감 – 감사합니다.

사 – 사랑합니다.

절 – 절 받으세요.

그리고 나는 성도들을 향하여 큰 절을 했다. 너무 감사해서, 너무 사랑스러워서, 너무 감격해서.

그동안 걱정하고 두려워하던 마음이 완전히 떠나가면서 새로운 기쁨과 새 날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아니 목회 최고의 결실을 맛보는 기분이었다.

정말 고맙고 감사하다. 목사가 하라는 말에 두 말 않고 따라준 성도들, 그리고 분에 넘치도록 잘해서 감동을 준 발표회.

그래서 목회는 힘든 것 같지만 행복한 것 같다.

정말 아름다운 밤이었다. 하나님과 성도들에게 감사한 밤이었다. 내 목회중 가장 감사가 넘치는 추수감사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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