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는 오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위로는 오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 이구영
  • 승인 2016.03.04 0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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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가 필요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삶이라는 것이 늘 긴장과 불안 스트레스의 연속이고, 혹은 과로 때문에 혹은 미숙함 때문에라도 모든 사람은 위로를 필요로 합니다.

바울 목사님도 위로가 필요했고, 또 위로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물론 위로를 받지 못한 적도 많았겠지만 데살로니가전서 3장 7절에 보면 바울 목사님이 위로 받았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살전 3:7]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가난했는데, 당장 먹을 것 입을 것 때문에 걱정이 많았는데 또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풍랑을 만나면서 많이 힘들었는데, 아무리 가르쳐도 선포해도 변화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답답했는데, 데살로니가교인들이 보내주는 선교헌금과 물품과 따뜻한 편지 때문에 많이 격려가 되고 힘이 났었다고 고백합니다.
또 빌레몬 이라는 사람을 통하여도 위로 받았음을 고백합니다.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많은 성도들에게 늘 위로가 되어주는 빌레몬이 있음에 감사하며,
바울 목사님 스스로도 빌레몬을 통해 많은 기쁨과 위로가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힘든 삶에, 갈증나는 삶에 무더운 여름철 시원한 냉수 한 그릇 같은 남자 빌레몬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자랑을 합니다.
[몬 1:7]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

예수님께서도 위로가 필요하셨습니다.
힘들다는 말씀, 피곤하다는 말씀 안하셨는데 얼마나 한계에 부닥쳐 있으셨었는지 한번은 제자들! 그중에서도 특별히 가까이 아끼셨던, 애정을 쏟으셨던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만 이런 하소연을 하십니다.
[마 26:37-38]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그렇다고 제자들이 예수님을 위로해드린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예수님께서도 위로가 필요할 만큼 힘드신 때가 있었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생각해 봅니다. 위로가 월까? 왜 사람은 위로를 필요로 할까?
사전적 의미에서 위로는‘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거나 슬픔을 달래 주는 것’을 말합니다. 방법이야 여러 가지 있겠지만 한 개인에게 혹은 집단에게 일어난 괴로움이나 슬픔을 달래 주는 것, 나아가 없애주는 것, 해결해 주는 것을 위로라고 표현합니다.

성경에도 보면 전체적으로 위로의 이야기들이 고르게 나오고 있습니다.
이삭의 어머니인 사라가 죽자 이삭은 아주 많이 슬퍼합니다.
그의 마음에 밀려드는 슬픔과 좌절과 외로움은 이삭의 삶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의욕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 아브라함은 이삭의 결혼을 서두르게 되었고, 리브가라는 여자를 이삭의 아내로 맺어주게 됩니다. 그리고 그 후에 이삭은 다시 삶에 역동성을 회보하게 되고, 성실하게 가정을 돌보며 가장으로서의 삶을 출발합니다. 어머니의 장막에 자신의 아내를 살게 하면서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이겨냅니다. 이것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창 24:67]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그의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그의 어머니를 장례한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

요셉의 형들에게도 큰 걱정이 있었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살아계실 때는 동생 요셉이 자신들의 생계를 도와주고 자녀들의 용돈과 학비를 대 주었지만 이제 아버지 야곱이 돌아가신 후 동생 요셉의 마음이 변할까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오래전부터 형들은 동생 요셉을 미워했고 괴롭혔고 노예로 팔아버리기까지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반면 동생 요셉은 그 모든 박해를 이겨내고 애굽이라는 큰 나라의 국무총리에까지 오른 거물이 되었습니다. 역전된 위치에서 형들은 동생의 박해와 냉대와 무관심이 걱정이었습니다. 그동안은 동생덕분에 잘 지내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동생의 태도가 달라질까봐 걱정이 된 것입니다.
그때 동생 요셉은 오히려 먼저 형들을 위로합니다.
[창 50: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성경에는 많은 위로자와 위로받은 자들이 이야기가 있습니다.
- 룻이 보아스를 통하여 위로를 받고 어머니가 되고, 다윗의 조상이 됩니다.
-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나를 위로하시는 이”[시 86:17] 라고 표현합니다.
- 또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사 40:1]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이사야 49장 13절에 이사야 선지자는 선포합니다.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은즉 그의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 포로생활에서 돌아와 이제 막 기쁨으로 살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스가랴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읍이 다시 넘치도록 풍성하여질 것이고, 다시 예루살렘 성을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실 것이라고!
[슥 1:17] “그가 다시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 여호와가 다시 시온을 위로하며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 하라 하니라“

- 바울 목사님도 로마서 15장 5절에서 하나님을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 이라고 표현합니다.
또 고린도후서 1장 4절에서는 이미 예수님께서 환난 중에 있는 우리를 위로하셔서 삶에 소망과 믿음과 사랑이 넉넉하게 하셨으니 이제 너희도 누군가를 위로하는 자의 삶을 살아가라고 권면하심을 읽게 됩니다.

오늘 우리들의 사는 삶 가운데는 따뜻한 말 한마디와 들어줌, 혹은 함께 있어줌, 알아줌, 도와줌 등에 너무 인색함을 느끼곤 합니다. 그래서 자꾸 떠오르는 단어가 “위로함”입니다.

이 위로는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의 아픔 후에 오랜 세월의 기도 후에 오랜 세월의 뜸들임 속에 찾아오는 선물들입니다.
제 주변에 힘들게 목회하시는 목사님들과 선교사님들이 계십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육신이 아픔으로, 사모님의 질병으로, 교인들로부터 말미암은 상처로 아주 많이 힘들어하시던 분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그 오랜 시절을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말씀대로 살려고 애 썼더니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통해서 나를 위로해 주신다고.. 별로 공부 많이 못 시켰는데 일류대학에 합격을 했다고.. 그렇게 돈 들여 과외 시켜도 들어갈까 말까한 대학들에 의외로 개척교회하시는 목사님들이나 해외 선교사님의 자녀들이 척척 붙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난주에 만났던 목사님께서는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힘들게 살아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시는데 물질을 채워주셨다고..
20대 중반의 딸이 사업에 벌써 성공을 해서 일 년이면 몇 억을 버는데 한번은 ‘아빠! 나 이렇게 돈이 잘 벌리면 금방 재벌이 될 것 같애!’ 하더랍니다. 참 기운이 나면서 하나님께 참 감사했답니다.
힘든 세월 믿음으로 말씀대로 살려고 애 썼더니,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며 살려고 애 썼더니 이런 날이 다 온다고.. 20대 초반의 아들이 연봉이 2억 정도 된답니다.
가수한데요.. 참 많이 감사했습니다.

오늘 위로 받으려고 하면 힘이 들고 짜증납니다.
그런데 믿음을 가지고 견디고 또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나아오다 보니까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당장은 힘들었지만 세월이 지나보니까 명문대학이, 일류직장들이, 그 어려워 보이던 재물들이, 엉키고 설키었던 인간관계들이 한꺼번에 혹은 서서히 풀어지고 쏟아지면서 큰 위로를 받게 됨을 보고, 듣고,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위로는 오늘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은 참 힘듭니다.
그렇지만 믿음으로 버텨내다 보면 반드시 큰 위로의 손길이 임함을 믿게 됩니다.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시니까요. 당신의 백성을 반드시 위로해주시는 하나님이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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