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기야의 타락
히스기야의 타락
  • 이구영
  • 승인 2016.02.19 0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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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왕기하 20장에 보면 히스기야 왕의 타락이야기가 나옵니다.
처음에 히스기야는 대단한 믿음과 위용을 뽐내던 사람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남쪽 나라 유다의 왕이었습니다.
지금부터 2700년전에 예루살렘에서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히스기야 당시 국제정세는 앗수르와 애굽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히스기야가 다스리는 유다나라 아래쪽으로는 애굽 이라는 강대국이 있었고, 위쪽으로는 북이스라엘이 있었고, 또 그 위쪽과 옆으로는 앗수르라는 강대국이 있었습니다.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는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불행하게도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점령당해서 수도 사마리아가 폐허가 되고, 그 여세를 몰아서 앗수르는 계속 남진정책을 펴며 남유다를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아래로도 위로도 엄청난 위협아래에서 살던 사람이 히스기야입니다.
보통의 경우 그런 상황이 되면 약자인 히스기야는 눈치를 보면서 누군가와 동맹을 맺게 됩니다.
북쪽에 붙든지 남쪽에 붙든지 상황을 보아가며 눈치외교를 펼치는 것이 전례이었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늘의 이 힘든 상황이 자신들의 죄와 조상들의 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꾸지람임을 알았습니다. 앗수르가 공격해 들어와서 나라가 망하게 된 이 위기가, 애굽이 언제 공격해 들어올지 모르는
이 위기가, 군사력으로 해결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모든 것의 최종결재권자는 오직 하나님 뿐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회개부터 시작합니다.
앗수르의 위협이 심해질수록 히스기야왕은 신하들과 함께 굵은 베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서서 하나님을 부릅니다.
이것을 성경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왕하 19:1-3]
1 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2 왕궁의 책임자인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장로들에게 굵은 베를 둘려서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매
3 그들이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이 오늘은 환난과 징벌과 모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을 때가 되었으나 해산할 힘이 없도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앗수르의 진영에 무서운 전염병을 일으키십니다.
하루 아침에 185000명이 죽습니다.
그리고는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고 전쟁을 일으켰던 왕 산헤립은 부하들에 의해서 암살을 당하게 됩니다.

이런 엄청난 경험을 하는 사람이 역사상 몇 명이나 있겠습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을 몸으로 체험하는 것이고, 간증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참 묘한 일은 그 엄청난 기적도 금방 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점점 약해집니다.

이제 히스기야가 나이가 들었습니다. 몸에 병이 생겼습니다. 죽게 되었습니다.
죽음의 위기앞에서 사형선고를 받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선포합니다.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히스기야는 갑자기 답답해졌습니다.
그리고는 오래전에 그렇게 기도해서 앗수르와 앗수르의 왕 산헤립을 물리쳤던 때처럼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나를 좀 살려달라고!! 심히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또 들어주십니다.
히스기야의 죽음을 선언한 이사야 선지자가 성읍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성경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왕하 20:4-6]
4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6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자 이제 병이 낫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멘! 할렐루야!’ 뭐 이래야 되는거 아닙니까?
아마 히스기야가 젊었을 때면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이제 많이 타락했습니다. 의심이 들었습니다. 진짜일까?
교회 다니면서 참 힘든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믿음 가지는 것입니다. 의심이 자꾸만 생깁니다.
천국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꾸 죽는 것이 두렵고 안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알면서도 여전히 죄를 회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줄 알면서도 사랑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용서도 구하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믿음이 없으니까..

과거 같으면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에 아멘하고 감사합니다!! 했을 텐데 자꾸만 의심이 생깁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이사야 선지자에게 어떤 징조를 요구합니다.
못 믿겠으니.. 아니면 말씀만 가지고는 안 되니까 어떤 확실한 징표를 보여 달라고 합니다.
물론 믿음 없고 연약한 히스기야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께서는 해시계를 뒤로 가게 하는 징조를 보여 주시면서 까지 히스기야에게 믿음을 주시려고 하셨지만 여전히 히스기야는 의심가운데 서게 됩니다.

타락해가니 믿음도 사라졌지만 겸손함도 잃었습니다.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것!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좀 겸손해지고 남을 섬기고 뭐 이런 것인데 교회는 다니면서도 여전히 교만하고 자랑이 많고 우쭐대고, 남 얕잡아 보고. 비교하면서 우습게 여기고...
너 직장이 어디야?
너 학력이 어떻게 되?
너 무슨 대학 나왔어? 너 아파트 몇 평에 살아?
그게 뭐 다 자기가 한 일인가요? 하나님이 해 주신 것이쟎아요.
남 섬기고 남 보살피며 살아가라고 하나님께서 해 주신 것이쟎아요.
그런데 자꾸 내가 한 것처럼 자랑이 되고 교만해집니다.
큰 교회 다닌다고 작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나 목사님 전도사님들 무시하고. 막 대하려하고, 나이 좀 많다고 젊은 사람들 우습게 막 대하려고 하고..
작은 교회도 교회 라는거 아십니까요?
어쩌면 천국 갈 사람들, 큰 상급 받을 사람들이 거기에 더 많을 수도 있다는 거 아십니까?
내가 큰 교회 다닌다고 내가 큰 것은 아닌데,
내가 큰 교회 목사라고 내가 큰 것도 아닌데..
하나님께서 다 해주시는 것인데 왜 그렇게 내가 잘난 것처럼 자랑 질을 해 대고 남을 우습게 여기는지.. 히스기야가 그랬습니다.
병이 나았으면 고쳐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배드리고 더 겸손하게 살아야 할 텐데 교만해졌습니다.
바벨론이라는 신흥강국의 대사들이 찾아왔습니다.
앗수르를 무너뜨리게 되는 엄청난 강대국입니다.
그 대사들이 찾아와서 히스기야를 만나고 병에서 고침 받은 것을 축하하는데 갑자기 히스기야가 우쭐해집니다. 그러더니 자기의 업적과 나라의 부유함을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나라의 보물창고를 열어서 보여줍니다. 성경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왕하 20:13]
 “ 히스기야가 사자들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의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다 사자들에게 보였는데 왕궁과 그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히스기야가 그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 “

그 모든 병기구들과 군사들이 히스기야가 이루어 놓은 업적입니까?
하나님께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채워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스기야는 자랑하고 픈 마음, 겸손보다는 거만해짐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타락하게 되니 점점 자기중심적으로 변해갑니다.
하나님도 안 보이고 이웃도 안 보이고 교인들도 가족도 부모님도 안 보입니다.
그냥 자기 밖에 안 보입니다.
거만해지는 히스기야를 꾸짖으며 선지자는 재앙을 이야기 합니다.
그랬더니 회개한 것이 아니라, 겸비한 것이 아니라 내 살아 있을 동안에는 참아주실 것이니 다행이라고 안도의 숨을 쉽니다. 자기중심성이 너무 커진것입니다. 이웃과 후손을 잊어가고 있습니다.

선줄로 생각하는 자 마다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히스기야 같은 성군도 노년에 타락하게 됩니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집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오늘 나는 믿음의 사람입니까?
오늘 나는 겸손한 사람입니까?
오늘 나는 이웃과 후손들을 향한 사랑의 사람입니까?
그래서 또 기도합니다. 성령님!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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