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좋은 동역자 마가(딤후 4:1; 벧전 5:13)
37. 좋은 동역자 마가(딤후 4:1; 벧전 5:13)
  • 주성호
  • 승인 2015.09.15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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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라는 이름은 '큰 망치' 라는 뜻으로, 그의 출생지는 구로섬이며 예루살렘에서 성장한 레위 족속이다. 요한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요한은 히브리식 이름이며 그의 본명이며 마가는 그의 로마식 별명이다. 그는 마리아의 아들이었으며, 초대 안디옥 교회 선교사였던 바나바의 조카로 신앙적인 영향은 삼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초대교회 당시 바울의 제1차 선교 사역에 동참했으나 도중 탈락하므로 문제도 되었지만 후에는 바울을 위해서도 충성하였고, 바울이 사망한 후에는 베드로와도 동역하며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복음도 기록했다.
마가는 그의 사역 초기에 문제도 있었지만 실패를 통해 10여 년 이상 자기 정립을 하는 기간을 보냈고, 그 후 그의 사역은 동역자로서 시작보다 끝마무리를 잘한 전도자였다.

첫째: 실패했던 마가

1) 선교여행 도중 탈락사건(행 13:13: 15:38)
마가는 본래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였다. 그런데 안디옥 교회에서 사역하던 바나바와 바울이 예루살렘 모 교회가 어려움을 당한다는 소식을 듣고 헌금을 모아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하고 헌금을 전한 후 돌아갈 때에 바나바의 조카인 마가를 데리고 갔다. 그 이유는 그를 훈련시켜 이방선교의 일꾼으로 삼기 위함이었다.
그 후 바나바와 바울이 소아시아 지역에 1차 선교여행을 할 때 마가를 동행케 하였는데 밤빌리아에서 갑자기 탈퇴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말았다(행 13:13). 이유는 분명치는 않다. 이교도 세계에서의 어려움 때문인지, 이방 전도 의회의 때문인지 확실치 않으나 사도행전 15:38에서, 2차 전도여행 때 바울이 마가를 데리고 가는 것을 반대한 것으로 보아 개인적인 문제로 관한 낙오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2차 전도여행은 바나바와 바울은 서로 갈라져 육로와 해로를 택해 전도여행을 떠났다.
여기서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다. 전도인의 길이란 평탄치 않고 더구나 생소한 지역의 첫 전도의 길에 장애 요인이 많음으로 고난도 각오하면서 인내로 극복했어야 하는데 마가는 실패했다. 이것은 흔히 젊은이들이 실패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그 후약 12년간 그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는데 후회도 하고 준비의 기간도 되었으리라 본다.

2) 도망가는 젊은이(막 14:51~52)
막 14:51~52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오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 하니라."
이것은 4복음서 중 마가만의 독특한 기록으로 보아 마가가 직접 경험한 바를 기록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왜 자기의 수치스러웠던 사건을 기록했을 것인가? 당시 예수께서 모든 사람들은 물론, 사랑하는 제자들까지, 특별히 베드로를 보아도 세 번이나 부인, 맹세, 저주하면서 부인했는데 성경은 그것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마가 자신도 형편없는 몰골이었음을 회개하는 심정으로 솔직히 기록했다고 볼 수 있다.
유월절 만찬을 잡수시던 곳이 마가의 다락방이었고 만찬이 끝난 후 예수님은 감람 산으로 향하셨다. 마가는 자기 집에서 잠들었다가 후에 예수께서 잡혀 집 앞을 지나가실 때 잠에서 깨어 덮고 있던 베 홑이불만 걸치고 무리들을 따르게 된 것이다.
베 홑이불이란 세마포를 가리키는 것으로, 당시는 인도산 수입품으로 부유한 집 아니고는 구하기가 힘든 것이고 수의로도 썼다. 예수님을 따라온 무리들이 자기를 알아보고 잡으려 하자 베 홑이불을 버리고 알몸으로 도망갔다.
암 2:16에 "용사 중 굳센 자는 그 날에 벌거벗고야 도망하리라"고 했는데, 마가가 용사이거나 굳세서가 아니라는 것은 명백하다. 다만 인간의 연약함으로 인해 생명을 위협 앞에서 비굴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모습을 솔직히 회개하는 마음으로 기록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성공한 마가

1) 마가의 다락방(행 1:12~14)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는 지중해 구브로 섬 출신이다. 구브로 섬은 북으로 터키, 남쪽엔 이집트, 서쪽은 그리스, 동쪽으로는 팔레스틴이 인접해 있으므로 국제적으로 교류가 활발했고 교육,상업, 문화 등이 발전한 곳이었다.
그리고 이방 선교 기지였던 안디옥 교회로 예루살렘에서 첫 선교사로 파송했던 바나바는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와는 오누이 사이여서, 마가가 삼촌 바나바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리라 본다.
마리아는 예루살렘에 기거하면서, 독신이었지만 비교적 부요한 생활을 누리며 일찍 예수님을 영접하고 극진히 일을 보살핀 여인이다. 최후의 만찬도 자기 집에서 하도록 준비했고(눅 22:12) 그 후 첫 예루살렘 교회가 탄생될 때도 마가의 다락방에서 시작되었다.
흔히 교회는 가정 교회에서 태동된다. 빌립보 교회는 루디아의 집에서(행 16:40), 에베소 교회는 아굴라 부부의 집에서(고전 16:19), 라오디게아 교회는 눔바의 집에서(빌 4:15) 가정 교회로 시작되었다.

마가의 다락방은 기독교 교회의 모체라 할 수 있다.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주님의 분부와 약속의 말씀, 즉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 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 1:4~5)는 약속을 믿고 예수의 모친 마리아, 예수의 형제들, 예수의 제 자들과 그를 따르던 자들 약 120여명이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할 때 성령의 충만을 받고 능력 받아 담대한 주의 종들이 되었다. 믿음과 기도는 어느 시대나 성령의 충만을 받는 직접적인 요인이 된다.

2) 동역자로서의 마가(딤후 4:11: 벧전 5:13)
바울의 일차 전도여행 시 중도에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린 마가를 바울은 못마땅하게 여겼으며, 이후 제2차 전도여행 때에 마가의 동행을 거부하였다. 그리하여 결국은 바나바와 결별하였다. 그 후 10여 년간의 기록은 없으나 아마도 바울이 그러했듯이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며 재기를 위한 준비의 시간들을 가졌으리라 짐작된다.
그런데 바울은 말년에 로마에 있으면서 마가를 불렀다. 딤후 4: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바울이 얼마나 마가를 신뢰하고 있는가 알 수 있다. 바울의 측근 중 데마는 끝까지 배신하였으나, 마가는 비록 1차 여행 때는 배신행위를 했지만 바울의 말년에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다. 시작은 신통치 않았으나 끝마무리를 보다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가는 바울의 순교 후에는 베드로를 적극적으로 도운 동역자가 되었다. 벧전 5:13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빌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 하느니라." 사도 베드로는 마가를 내 아들이라고까지 했다.
여기서 아들이란 바울이 디모데를 아들이라 한 것처럼(딤전 1:2, 18) 영적으로 맺은 아들이라는 의미인데, 이러한 호칭으로 부른 것을 보면 마가가 얼마나 열심이었던가를 알 게 된다. 마가는 한 번 실패했을지라도 믿음으로 재기하여 처음보다 끝마무리를 잘하므로 하나님의 사역자들의 귀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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