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세리로서 제자 된 마태(마 9:9~13)
36. 세리로서 제자 된 마태(마 9:9~13)
  • 주성호
  • 승인 2015.09.07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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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구약의 인물 34명을 선별해서 살펴보았다. 아담에게서 스가랴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시대를 통해 하나님의 일꾼들을 택해 어떻게 일하셨으며 소명 받은 일꾼들이 하나님의 일을 얼마나 충성스럽게 사명을 감당했는가를 더듬어 보면서 각 개인의 특성까지도 살펴보았다.
오늘부터 신약의 인물 20명을 선별해서 증거하므로 신약 시대에 하나님의 일꾼들이 어떻게 일했는가를 보고자 한다. 오늘은 연대순이 아닌 성경 순에서 마태복음의 저자 마태를 통한 교훈을 얻고자 한다.
마태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선물'이란 뜻으로, 갈릴리 가버나움에서 경건한 유대인 가정에서 알패오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레위라고도 불렀는데 레위가 마태의 본명인 듯하다. 그는 부요한 가정 여건에서 세리로 일하다가 마침 가버나움을 지나고 계시던 예수님의 부름에 즉시 응답하므로 12명의 제자 중 하나가 되었다.

첫째: 소명 받은 마태

1) 소명 이전의 마태(막 2:14~15)
가버나움은 당시 상업과 교통의 중심지로 다메색, 두로, 예루살렘으로 가는 통로였다. 또한 가버나움은 빌립의 영토인 데가볼리에서 헤롯 안티파스의 영토로 들어가는 첫 성이므로 관세를 받는 세관이 있었는데 마태는 그곳의 세관인 이었다.
세리는 로마 정부의 세금 징수 사무를 청부 맡은 유대인으로서 백성들을 착취해서 착복하므로 비교적 부요한 생활을 누렸으나 일반 민중의 미움의 대상이었다. 유대인의 격언에는 "산중에는 사나운 사자가 있고 거리에는 잔인한 세리가 있다"는 말이 있다.
세리는 창기와 더불어 죄인의 대표격이었다(마 21:31). 그러므로 세리는 예배에도 참석할 수 없었으며 법정에 나아가 증인도 될 수 없었고, 세리와는 음식도 함께 먹지 않을 정도로 유대인들로부터 철저히 멸시를 받은 사람들이다(매국노, 앞잡이).

2) 소명 이후의 마태(마 9:9~13)
예수께서 가버나움을 지나시다가 세관에 앉은 세리 마태를 보시고 '나를 쫓으라'고 말씀하셨다. 좇으라(ajkolouqevw)는 말은 현재명령형으로, 주저함이나 지체 없이 당장 쫓으라는 뜻이다. 때때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신앙의 즉각적인 결단을 필요로 하는 많은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럴 때 지체하고, 핑계거리를 만들고 보면 반드시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눅 5:28 "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쫓으니라." 눅 9:59~60 "다른 사람에게 나를 쫓으라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나를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쫓겠나이다마는 나를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나를 좇으라 하신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시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예수님을 쫓으므로, 세리였던 마태가 예수의 12제자 중 하나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마태는 예수님을 자기 집에 초대하고 많은 사람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어 영접했다. 구속함을 받아 예수의 제자 된 마태는 감사한 마음으로 동료 세리들을 자기 집에 초청하여 자신의 변신을 그들에게 보이며 그들도 예수님을 통해서 변화되기를 원했다.
그 후 마태는 예수 부활 승천 후 다른 제자들과 함께 다락방에서 성령 충만의 은혜를 받고 복음을 증거하다가 순교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둘째: 마태의 성격과 신앙적 교훈

1) 마태의 성격(마 10:3)
바울의 경우를 보면 그의 초기 서신들에서 "부르심을 받아 사도 된 나 바울"이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마태는 본문의 12명의 제자들의 명단에 자신을 8번째에 넣었으며, 자신의 이름을 그렇게도 유대인들이 경멸하는 세리 마태라고 기록 하였다. 이것으로 보아 그는 누구보다 겸손의 미덕을 갖춘 제자라 할 수 있다.

그는 마태복음서를 기록한 저자이지만, 마태복음 안에 자신에 대해서는 한 번도 입을 연 기록이 없다. 3년 가까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벙어리가 아닌 이상 기록할 만한 사건이 과연 없었겠느냐 결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한마디로 과묵형 제자임을 알 수 있는 것은, 제자가 12명이나 되고 언제나 베드로가 앞장서서 예수의 말씀에 응수하고 보니 과묵형의 마태의 차례는 오지 않았을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마태의 성격은 자신의 소명의 광경조차 객관적으로 기록한 사람이다. 마태는 유대인들을 위해 복음서를 저술하면서 예수님을 구약 예언의 성취자로 보면서 예수만 높이고 자신은 철저히 그늘 뒤에 감추었던 성격의 소유자였다.

2) 신앙적 교훈
세리인 마태가 양심까지 저버리고서 사람들에게 매국노로 철저히 경멸을 받으면서 지내는 동안, 그에게 구원의 가능성이라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예수의 부르심에 즉시 응답하므로 예수와의 접촉을 통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남을 볼 수 있다.
마태는 자신의 변화로 만족하지 않고 동료들을 예수께 인도하려고 잔치를 배설하고 최선의 노력을 했던 것이다. 아마도 마태가 예수님을 자기 집에 초청하고 잔치를 배설하고 자기 동료들까지 함께 하며 식사하게 했을 것인데, 이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마태의 용기도 대단했지만 집을 떠나 예수의 제자가 되려는 입장에서의 송별연이었고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유대인들의 큰 비난을 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장에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9:11)고 물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12~13절)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역시 멋쟁이다. 예수님에게는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고 상관하지도 않으셨다. 다만 구원받은 생명만을 귀하게 여기셨다.
마지막으로 마태는 자신이 복음서를 집필하면서도 자기를 향한 어떤 변호나 자기 자랑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오직 주님만을 높이고 주님만을 증거함으로 그의 겸양을 오늘 우리도 배워야 한다.
오늘 마태를 통해 예수님을 따르는데 직업이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과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가가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만났느냐? 예수님을 영접했는가? 그리고 그가 예수 영접한 다음엔 겸손. 겸양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 역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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