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아브라함의 행위(창 22:1~3; 히 11:8)
7. 아브라함의 행위(창 22:1~3; 히 11:8)
  • 주성호
  • 승인 2015.02.17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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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도 나아갔고 그 후에도 아브라함의 생활은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순종하므로 믿음의 조상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신앙이란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믿음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믿음을 행위로 나타내 보임으로서 그의 신앙이 확증된다. 은혜는 받았으면 은혜의 생활이 되어야 하고 성령을 받았으면 성령의 열매 또한 맺어야 한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위대성은 100세에 얻은 아들 독자 이삭조차도 하나님의 명 령에 따라 온전히 드림으로 그의 신앙은 인정되었고 신앙의 조상다운 면모를 행위로 보임으로 그의 신앙이 공인되었다.

첫째: 아브라함의 신앙행위

1) 십일조 드림(창 14:17~24)
창세기 14장은 가나안 땅의 남북전쟁 기록으로 성경에 기록된 국가간 첫 연합 전쟁 장면이다. 즉 가나안 북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4개국(시날, 엘라살, 엘탐, 고임)과 가나안 남부 사해지역 5개국(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소알)이 관련된 전쟁기사이다.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은 가나안 남부의 5개 사해 동맹국 들이 12년 동안 조공을 바치며 섬겨오던 엘탐의 맹주 그돌라오멜을 반역했기 때문인데, 결과는 5개 동맹국의 패배로 이때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다.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집에서 훈련된 사병 318명을 거느리고 그들을 추격하여 쳐서 피하고 빼앗겼던 재물과 조카 롯과 부녀와 포로들을 다 찾아왔다.
아브라함이 승리하고 돌아올 때에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그를 영접했다. 멜기세덱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였을 때 아브라함은 전리품 중 십분의 일을 감사한 마음으로 바쳤다.
십 분의 일 즉 십일조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히브리어로 마아세르 미콜(lKomi rce[}m) 열 번째 부분이라는 뜻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드려졌다. 호멜이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로는 소산이나 소, 양을 드리는 십일조(레 27:32) 등이 있고, 본문의 십일조는 아브라함이 축복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드리는 십일조였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은 자로서 마땅히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데 말라기는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임으로 하나님께 바치지 않을 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라 강조했다. 십일조도 온전히 드리는 것이 바람직하고 그럴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물질적 축복의 통로가 된다.

2) 이삭을 제물로 드림(창 22:1~3)
이 일 후 아브라함이 언약에 근거해 가나안 땅 블레셋 족속의 지경에 정착한 후 갖가지 경험을 하면서 안락하게 살고 있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여기서 시험이란 유혹이 아닌 테스트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상식을 초월한 가혹한 요청이요 아무리 시험이라고 하지만 지나친 명령이었다. 성경에는 이성을 초월한 하나님의 명령이 많은데 신앙 문제까지도 이성으로 해결, 해답을 얻으려고 하는 현대인들에게도 끊임 없이 도전해 오는 시험들이다. 이럴 때 신앙인의 바른 태도는 하나님은 이성이나 상식에 호소하지 않고 신앙에 호소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제자를 부르실 때,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시몬의 배를 보시고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다. 밤이 맞도록 수고했으나 한 마리도 못 잡은 곳이었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했더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잡힘으로 결국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다(눅 5:1~11).
본문의 아브라함은 그가 겪은 시험 중 가장 크고 가혹한 것이었으나, 갖가지 장애요인, 아내, 종, 이삭의 질문 등에도 믿음으로 순응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므로 여호와 이레 즉 하나님이 준비하시는 은혜를 체험케 되었다.
하나님께서 가장 귀히 여기는 이삭을 시험의 조건으로 삼듯이 오늘도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으로 우리를 시험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아브라함의 신앙태도를 승리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둘째: 아브라함의 성품

1) 말씀의 순종자(히 11:8)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고 히브리 기자는 증거했다. 이 같은 일이 가능했던 것은 믿음 때문이었다. 성도는 진정한 믿음을 가지기만 하면 아무런 조건 없이도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할 수 있다.
믿음과 행함에 대해 강조한 야고보는 구체적이면서도 실제적 권면을 하였다(약 2:14~26).
17절~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22절~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24절~ 사람이 행하므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26절~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그러므로 믿음과 행함은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다. 언제나 성도들의 믿음의 평가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의 순종 여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때에 비로소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에 내리신 축복의 후손이 된다.

2)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창 17:4~8)
본래 이름인 아브람은 높은, 존귀한, 큰 아버지란 뜻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약속한 축복들을 이루시려는 의지의 외적 표현으로 언약을 갱신하신 이후 그의 이름을 "아브라함이라 하라"고 하셨다. 이것은 아브(ba;) 많은, 충분한 그리고 라브(br') 풍부한,다수의 다른 두 낱말의 합성어로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성경에는 아브람과 사래, 야곱, 시몬이 아브라함과 사라. 이스라엘, 베드로 등으로 개명된 대표적인 인물들인데. 하나님께서 친히 그리고 베드로의 경우는 예수께서 친히 개명 시켜준 경우들이다. 이름은 한 개인의 성품이나 인격과 생애를 규정지어 주는 것임으로 아브라함의 개명은 그의 삶에 놀라운 변화가 있었음을 가리켜 준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목사들이 임의로 자기 이름을 성경의 인물로 개명 하는 경우와는 다르다(조다윗, 김바울, 이베드로 등).
적어도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그의 개명은 개인적인 삶의 전환을 넘어서 타락한 인간에게 새로운 소망을 갖게 하는 큰 사건이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장차 이루게 될 대속 사역의 예표가 된다.
오늘 우리는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이 주어지듯 자연인에서 그리스도의 것이란 뜻인 그리스도인이 된 것으로도 만족해야 되고 감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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