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장례와 관련해 떠오르는 단상 03
죽음, 장례와 관련해 떠오르는 단상 03
  • 안양준
  • 승인 2023.08.16 12: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황혼의 반란」 속에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소설 모음집 「나무」가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것이 2008년이었으니 벌써 15년의 세월이 흐른 셈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기발한 착상이 담긴 이야기들은 오래지 않아 다가올 미래에 대해 정확히 예측하고 있는데 이번 더불어민주당 김은경 혁신위원장의 노인비하 발언이 이슈가 되는 상황에서 18개 단편 중 ‘황혼의 반란’이 갑작스럽게 더 주목을 받게 되었다. 책에서 저자가 밝혔듯이 황혼의 반란은 어느 양로원을 방문한 뒤 쓴 글이다.

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해 본다.

초인종이 울린다. 늙은 프레드와 뤼세트 부부는 집 밖에 서 있는 닭장처럼 철망을 쳐놓은 ‘휴식·평화·안락 센터’(CDPD: Centre de Détente Paix et Douceur)라는 이름과는 달리 악명 높은 대형 버스를 바라보았다. 잠시 전 그들은 “우리 자식들은 절대로 그들이 오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라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나 자신들이 사랑하는 아들딸마저도 부모를 CDPD에 넘기고 말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몇 년 전부터 노인을 배척하는 운동이 노골화되고 있었다. 정부는 처음에는 노인들을 지지했지만 얼마 안 가서 여론의 심판에 넘겨 버렸다. 한 사회학자가 뉴스에서 사회보장의 적자는 70세 이상 노인들 때문에 생긴다는 것을 증명하였고, 정치인들이 공격에 가세하여 대폭적인 예산 삭감이 이어졌고 정부는 인공심장의 생산을 중단시켰다.

75세부터는 소염제에 대해 환급을 받을 수 없게 되었고, 80세부터는 치과 치료에 대해, 85세부터는 위장 치료에 대해, 90세부터는 진통제에 대해 환급을 받을 수 없고, 100세 이상은 누구를 막론하고 무료 의료 서비스를 일체 받을 수 없게 되었다.

흐름에 편승하여 ‘반노(反老) 캠페인’이 늘어났고 레스토랑 입구에 ‘70세 이상 출입 금지’라는 팻말을 흔히 발견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자기들 몫이 끝났음에도 회전목마를 떠나지 않는 노인들 탓이 되어 버렸다.

지난 토요일 풀트랑 씨 부부 집에 놀러 갔을 때 “노인들에게 여행을 시켜 준다고 하는데 그건 공식적인 선전일 뿐 센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뭔가 짚이는 게 있어요. 그들은 우리를 없애 버리기 위해 독극물 주사를 놓고 있어요.”라는 말을 들었다.

직원들이 문을 걷어차는 중에 두 부부는 창에서 아래 쓰레기 더미로 뛰어내려 CDPD 버스 운전석에 올라 차를 산 쪽으로 몰고 갔다. 버스에 타고 있던 스무 명 가량의 노인들이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프레드가 말했다.

“압니다. 우리는 어쩌면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CDPD는 정말 갈 곳이 못 됩니다.”

다들 얼떨떨한 표정으로 있을 때 풀트랑 씨가 갑자기 ‘만세!’하고 소리쳤다. 서둘러 산 속으로 피신하였고 프레드는 자연스럽게 지도자가 되어 있었다. 현장을 탐사하러 갔던 사람들이 제법 큰 동굴 하나를 발견했고 전직 과학 저널리스트가 동굴의 연기를 배출하는 시스템을 제안하였다. 

사냥을 하기로 결정했지만 활도 총도 없었다. 며칠 후 도주했다는 소식을 듣고 센터에서 탈출한 노인들이 찾아왔다. 나날이 많은 노인들이 찾아와 반란자들의 진영에 가세하였다. 왕년에 전기 기술자는 풍력 발전기를 세우는 일에 몰두했고 덕분에 동굴 안에 전등을 달게 되었다. 처음 동굴과 근처의 다른 동굴에 결집한 노인들이 곧 백여명에 달했다. 프레드와 뤼세트는 CDPD가 두려워하고 70세 이상 노인들 모두가 찬양하는 신화적인 인물이 되었다. 

‘우리를 존중해 주십시오. ~ 인간은 서로 연대할 줄 알고 함께 어울려 살 줄 압니다. 만일 인간이 가장 약한 자들을 죽인다면, 인간의 모듬살이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노인을 배척하는 법률들을 철폐합시다. 우리를 제거하기보다 활용할 생각을 하십시오.’

그들은 이 호소문이 전국에 걸쳐 배포되도록 손을 썼다.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도시 게릴라 활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흰여우들’의 행동대원들은 CDPD 중의 한 곳을 일제히 공격하여 노인 50여 명을 해방시켰다. 활이 무기의 전부였던 시절은 가고, 이제 자동소총과 50밀리 박격포로 진지를 방어하고 있었다.

젊은 장관들로 구성된 새 정부는 양보하기를 거부했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노인들의 반란을 종식시키기 위한 대책으로 헬리콥터에서 독감 바이러스를 다량으로 살포했다. 뤼세트가 죽었지만 프레드는 투항을 거부하였다. 반란자들에게는 백신이 필요했지만 정부는 사전에 모든 재고를 폐기하도록 명령하여 사망자의 수가 갈수록 늘어났다.

3주일 후, 경찰 병력이 살아남은 자들을 체포하기 위해 출동했을 때 어떤 저항도 없었다. 프레드는 CDPD 대원들에게 체포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프레드는 죽기 전에 자신에게 주사를 놓은 자의 눈을 차갑게 쏘아보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도 언젠가는 늙은이가 될 게다.”

사실은 끔찍한 시나리오지만 현실 가능하다는 점에서 불편할 수밖에 없는 소설이다. 이미 비하 대상이 되어버린 세대에게는 앞으로의 시간들은 악몽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늙음과 죽음, 두 가지 주제 외에 피할 방법이 없는 한...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특히 죽음에 대한 관심을 갖는 작가이다. 그의 소설 「타나토노트」의 후반부에 편집자와 인터뷰한 내용이 실려 있다.

편집자: 죽음에 대한 그런 특별한 관심은 무엇에 기인한 것인가?
베르베르: 묻고 있는 당신과 모든 독자들을 포함해서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죽게 된다는 사실로부터 나온 것이다.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나름대로 의미를 지니고 있던 하나의 시민이자 소비자이자 유권자였던 사람이 한 줌의 퇴비, 한 줌의 재가 되어 버린다는 것, 그것은 모든 인간의 최소 공배수이다. 따라서 우리가 그것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편집자: 당신은 어떻게 죽기를 바라는가?
베르베르: 죽는다는 걸 모르고 무심코 죽기를 바란다. 그 대신에 죽은 다음에는 관에 들어가지 않고 바로 땅속에 묻히기를 원한다. 내 육신이 평생 나를 먹여 준 이 지구에 거름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내 육신이 포도나무 한 그루를 키우는 비료가 되어, 죽은 다음일지라도 사람들이 즐겁게 취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

죽는 방법에야 전적으로 찬성하지만 죽음 이후에 대해서는 뛰어난 작가라도 종교적 차이를 극복하기는 어려운 듯하다. 그가 말하는 신적 존재에 대한 지식에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이는 까닭이다.

“신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과 믿지 않는다는 것은 둘 다 오만한 생각이다. 그런 생각들은 인간이 신에 대해 뭔가를 잘못 알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나 신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똑같이 주제넘은 일이다. 우리는 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우리의 무지를 인정해야 한다. 나는 굳이 말하자면 불가지론자라고 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확실한 대답이 없다 할지라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말하는 오만한 생각, 주제넘은 일이란 무엇일까? 신이 원하는 방식을 굳이 사양하면서 비추는 겸손은 오히려 엄청난 교만일 수 있지 않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