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나타난 죽음과 관련된 기록들 32
성경에 나타난 죽음과 관련된 기록들 32
  • 안양준
  • 승인 2023.02.22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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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보시기에 악을 행한 자의 결말

역사를 통해 어떤 한 인물이나 어느 한 국가의 존망에 대해 쉽게 엿볼 수 있다. 물론 사가에 따라 약간은 진술이 다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있었던 사실들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남유다의 므낫세 왕에 대한 역사의 기록도 이와 별반 다를 게 없다. 그가 남유다 뿐 아니라 전 이스라엘을 통틀어 가장 오랜 기간 통치한 왕이라는 사실과 그가 부친인 히스기야와 달리 극도의 악행을 저질렀다는 사실, 그럼에도 열왕기서와 역대기에 그에 대해 서술한 부분이 조금의 차이를 보이는 것은 사가의 기술 방향이 다른 까닭이라 할 수 있다.

즉 열왕기서는 므낫세가 남유다의 멸망을 제공한 왕으로 규정하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기술한 반면, 역대기의 경우 그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 돌아온 후 회개하고 종교개혁을 단행한 점을 부각시켜 긍정적인 시각으로 기술한 것이다. 물론 두 가지가 객관적 사실을 기반으로 쓰여진 것이라는 점은 사실이나 사가에 따라 기술 방향이 약간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

므낫세는 유다의 14대 왕으로 BC 697~642년까지 55년간 왕위에 있었는데 그 가운데 10년은 히스기야와 공동으로 통치한 기간이라 할 수 있다. 

므낫세라는 이름은 요셉의 장자의 이름으로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창 41:51)는 의미이다. 간략하게 표현하면 므낫세는 ‘잊어버림’이라는 뜻인데 어떤 의도로 그렇게 지었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으나 이름처럼 그의 부친 히스기야의 선행이 그에게는 잊혀진 바처럼 되었다.

히스기야가 죽을 병에 걸렸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여 15년이라는 생명을 연장받은 것(왕하 20:16)에 대해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므낫세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십이 세라(왕하 21:1)고 하였는데, 유추해 본다면 히스기야가 15년의 생명을 연장받은 후 3년 후에 므낫세가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2세에 왕이 되었지만 10년은 공동 통치를 하고 22세가 되어서야 단독 통치를 하게 된 것이다.

자신의 생명이 그리 길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 히스기야가 아들에게 지도자 훈련을 시키기 위해 노력했을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래서 공동 통치를 통해 왕으로서의 통치 전반에 관한 것을 배우게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므낫세는 히스기야와 달리 극히 악한 왕으로 평가받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므낫세 당시 앗수르는 그 세력과 영광이 절정을 이루었다. BC 681년 산헤립이 살해되자 메소포타미아에서 새로운 혁명의 불길이 일어났고 앗수르 제국은 몰락하는 듯 했지만 다음 왕 에살핫돈이 혁명 세력들을 진압한 후 BC 671년경 애굽을 침공하여 멤피스를 점령하고 애굽과 이디오피아의 왕 디르하가를 포로로 잡음으로 전세를 회복시켰고 그 다음 왕인 앗수르바니팔이 애굽의 더베를 함락시킴으로 앗수르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제국을 이루게 된 것이다.

므낫세는 당시 주변의 정세를 보며 앗수르의 충성스러운 속국이 되는 것만이 유다의 살 길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로 인해 전례없이 오랜 통치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앗수르 왕의 군대 지휘관들에 의해 바벨론에 잡혀간 것은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앗수를 의지한 것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점을 깨닫게 되고 그로 인해 회개하고 종교 개혁을 단행하게 된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므낫세가 저지른 악행에 대해 성경은 네 가지로 제시해 주고 있다. 

첫째, 부친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산당들을 다시 세움
둘째, 아합의 행위를 본받아 바알과 아세라는 물론 천체도 숭배함
셋째, 여호와의 성전에 바알의 단을 쌓고 아세라 목상을 세우고 성전 뜰에 천체 숭배를 위한 단을 쌓음
넷째, 자식을 불태워 드리는 몰렉 숭배에 빠지고 미신을 행하는 자들을 신임함

하나님의 성전에 바알의 단을 쌓고 아세라 목상을 세우는 일은 누구도 자행한 적이 없는 심각한 범죄이다. 더구나 자식을 불태워 몰렉을 숭배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는 일이다.

열왕기와 역대기에 자주 등장하는 ‘여호와 보시기에’라는 표현은 각 왕들을 평가하는 기준이 부의 축적과 같은 경제적 측면이나 전쟁에서의 승리와 같은 군사적 측면에 있지 않고 각 왕들의 신앙 노선과 종교 정책 등 하나님을 향한 태도에 따른 것임을 부각시켜주는 것이다.

구체적 사례로 산당에 대한 왕들의 정책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1. 산당을 세우는 경우로 남왕국 왕들 중 르호보암과 므낫세가 대표적 인물이다. 
2. 기존의 산당을 제거하지 않은 경우로 아사, 여호사밧, 요아스, 아사랴, 요담 등으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산당을 제거하지 않은 미온적인 태도로 인해 온전함에는 이르지 못한 것이다.
3. 산당을 제거한 경우로 히스기야와 요시야가 대표적 인물이다.

그런데 므낫세는 산당이 아니라 성전에까지 이방 신상을 세우고 그들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단을 쌓는 악행을 저질렀다. 심지어 몰렉 숭배를 자녀를 불태우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고 하는데 남유다에서 이런 악행을 저지는 유일한 왕으로 그로 인해 멸망을 예언받게 된 것이다.

성경에 므낫세가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득하게 하였더라”(왕하 21:16)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러한 표현은 대부분 종교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것으로 당시 므낫세가 우상 숭배를 강행하기 위해 반대자들인 경건한 신앙인들, 좀더 좁혀 표현한다면 선지자들을 죽였다는 것, 얼마나 많은 수를 죽였는지 예루살렘의 한쪽 문에서 반대편 문까지 그 피가 흘러 가득했다는 것이다. 전승에 의하면 이사야 선지자도 므낫세에 의해 톱으로 잔인하게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이 백성이 듣지 아니하였고 므낫세의 꾐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여러 민족보다 더 심하였더라”(왕하 21:9)

지도자가 중요한 이유는 그들의 영향력이 크다는 점에 있다. 성경은 ‘므낫세의 꾐을 받고’라고 했지만 당시 정황은 백성들에게 자신의 정책을 제시하였을 것으로 볼 수 있다. 민족주의를 강설한 히틀러가 국민들 앞에 나와 웅변을 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어리석은 국민들은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기에 지도자가 제시하는 대로 따르게 되고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이방 나라들보다 더 심하게 악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결국 므낫세의 결말은 어떠한가?

“므낫세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궁궐 동산 곧 웃사의 동산에 장사되고”(왕하 21:18)라고 기록하고 있다. 

유다의 왕이라면 누구나 죽은 후 들어가게 되는 왕의 묘실에 장사되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빍히고 있다. 이는 그의 악행에 대한 역사의 심판이라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죽음 이후 들어갈 곳은 천국이지만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그가 행한 일에 따름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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