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만 가지고 16일(장춘)
로마서만 가지고 16일(장춘)
  • 주성호
  • 승인 2012.08.13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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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로마서만 가지고 16일(장춘)

장춘에 가게 된 동기는 서울 마포 감리교회에서 Midwest University 교수로 PEP 영성 영어 세미나를 인도하고 있는 정명진 교수가 나를 회원들에게 소개함으로 중국 선교를 하고 있는 권혁봉 선교사를 만나게 됨으로 시작되었다.
권선교사가 우리 집을 방문하고 장춘 동북 신학 강의를 부탁하면서 현지 관리를 탈북자로 과거 북한 인민군 대좌 출신으로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며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다고 하기에 만나 보기도 할 겸 무조건 스케줄을 잡은 것이다.
만나보니 탈출 전 북한에서 고문에 의해 엄지 손 고락이 잘린 상태였다.

장춘은 인구 1,000만의 도시로 작년 고 김정일이 중국 방문을 하면서 하루 투숙한 곳이며 과거 김일성의 활동 무대였다고도 한다.
권선교사가 이미 도착해 나를 맞아주었고 아파트에서 침식을 하며 교육을 해야 되는데 3개월 전에 급습을 당해 갖은 고초를 겪은 지 채 얼마 되지 않아 후유증도 대단한데 막론하고 계획대로 일정을 시작했다.

칠판도 없어 칠판으로 쓸 만한 문을 떼어 세워놓았고, 강사용 책상도 없어 방에 있는 옷상자를 놓고 낮아서 박스처리를 하여 강의를 하게 되었다.
식사 시간이 되었는데 식탁도 없어 맨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밥상을 대신해 밥을 먹어 가면서 강의는 계속되었다.
계절로는 6월 하순인데도 몹시 더웠는데 선풍기도 없어 값을 물었더니 사이즈가 좀 큰 것은 300위안이면 살 수 있다고 하기에 500위안을 주었더니 학장이 직접 나가 100위안짜리 소형을 사왔는데 남은 돈도 돌려주지 않았다.
현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나머지는 여러 곳에서 반복되었다. 호텔비 계산에서, 심지어 다음 여행지인 연길 버스 매표도 예매해야 된다고 하기에 두 사람 분을 넉넉히 주었더니 나머지는 말할 이유도 없었는지 넘어가곤 했다.

그리고 학장은 신학생 사역도 중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돈만 생기면 이유 없이 식량을 사서 두만강 건너 북한에 양식을 보내야만 된다는 것이다.
자기가 북한에 살 때 명색 김일성대학 출신임으로 어느 집단 농장 관리자로 있었는데 자기가 관리하고 있는 여자가 어느 날 자기 아들을 잡아먹고 탄로되어 처형되었다는 말을 해주었다. 사연인즉 어느 날 밖에서 일하고 허기진 배로 자기 집에 들어갔을 때 부엌에 토끼가 한 마리 있기에 잡아 솥에 넣어 삶아 먹었는데 실은 며칠 굶은 엄마의 눈에는 아들이 토끼로 보였던 것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 과연 있을 수 있느냐 반문했으나 실제 경험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1997년 북한에서 겪은 고난의 행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다음 행선지 연길에서 쓸 기본금만 남기고 주머니를 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환인의 주선교사에게 전화해 장춘에 가서 학장을 한번 만나라 했고, 환인 교회에서 매주 가마 솥 누룽지를 말려 북한에 보내는 것을 학장을 통해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3박 4일 동안 짬짬이 북한에 대한 구체적인 소식도 자세하게 많이 듣게 되었고 그가 집필해 놓은 북한의 실상을 400페이지 그대로를 복사해 가지고 와서 다 읽어 보았다. 그리고 탈북자들만 모이는 교회 김목사에게 전화를 하고 원고를 보내주면서 실은 가능하면 출판하려고 담아 왔는데 하고 물었더니 이미 그 분야의 책은 많이 나와 있음으로 하기에 일단 소량이라도 출판하려 했던 계획을 접고 말았다.

학장은 식량뿐 아니라 북한에 선교를 위해 원격 지원을 하고 있는데 전도하는 것도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며 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전도한 상대가 예수를 영접을 아니 할 경우 고발하면 그대로 잡혀 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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