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 천국 환송 예식
부친 천국 환송 예식
  • 민돈원
  • 승인 2021.03.09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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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안예식 후 모신 아버님 묘비(평토장)
봉안예식 후 모신 아버님 묘비(평토장)

우리 말에는 똑같은 의미이지만 용어사용을 달리하는 표현방식이 적지 않은데 그 대표적인 예가 죽음에 대한 표현방식이 아닐까 싶다.

예컨대 ‘사람이 죽었다.’라는 말을 표현할 때 직접화법보다는 좀 더 높여 호칭하거나 그 의미를 부각하고자 하는 표현방식에 있어서 그러하다. 즉 일반적으로 사망이란 말을 얼마나 많이 다른 용어로 지칭하는지 보자

운명[運命], 하직(下直), 作故(작고) : 고인이 되었다는 뜻으로, 사람의 죽음을 높여 이르는 말, 別世(별세) : 세상을 하직한다는 말로 죽음을 뜻함. 棄世(기세) : 세상을 버린다는 죽음을 높이어 이르는 말. 죽어서 세상을 떠나다. 는 뜻을 높여 逝去(서거)라고 부른다. 永眠(영면)이란 용어도 종종 쓴다. 이는 永逝(영서), 潛寐(잠매) 와 함께 영원히 잠들다.라는 뜻이다. 他界(타계) : ①다른 세계, ②저승. 어른이나 貴人(귀인)의 죽음 등 이런 용어들이 대표적으로 죽음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종교에 따라 죽음의 표현방식 또한 고유명사처럼 달리 쓰고 있다. 즉 기독교 개신교에서는 召天(소천) 을 주로 쓰고 있다.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카톨릭에서는 大罪(대죄)가 없는 상태에서 죽음을 일컫는 말로 善終(선종)이라고 쓰고 있다.

불교계에서는 주로 열반(涅槃, 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또는 入寂(입적, 불교에서 修道僧<수도승>의 죽음을 이르는 말)을 즐겨 쓰고 있다.

또한 장례식장 분향소에 가도 입구에 즐비한 근조화환에 쓰여진 문구부터 다르다. 분향소 영정 사진 앞에 분향하는 예식 역시 다르다. 종교에 따라 확연히 달라진다.

가장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문구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이다. 물론 오랫동안 국가의 공식행사나 평범하게 쓰이고 있기에 크게 괘념치 않는 듯하다.

그런데 명복[冥福]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사용에 숙고할 일이다. 그 이유는 용어의 의미 때문이다. 명복의 뜻은 1)죽은 뒤에 저승에서 받는 복. 2)[불교] 죽은 사람의 사후 행복을 비는 불사(佛事)라고 기록되어 있다. 대부분 일반적으로 언론 방송에서는 공식적으로 이와 같은 문구를 사용하는 게 통례이다 보니 일반 사람들이 무심코 사용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 용어를 찬찬히 잘 들여다보면 몰라서 그렇지 개신교에서 용어로 도입하기에는 바람직하지 않다. 이번 나의 부친상을 치르던 중에 고등학교 동창 밴드를 운영하는 친구에게 이 용어가 지닌 뜻을 전달해 주었더니 ‘그런 말도 있었느냐?’라고 처음 듣는 얘기라며 당황해했다. 아버님이 소천 되심을 위로하는 대형, 중형, 소형 근조화환이 2층 빈소에는 물론 1층부터 2층까지 양옆에 빼곡히 진열되어 간신히 왕래할 정도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우리 형제들이 3남 4녀나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처 ‘근조화환을 사양합니다’라고 별도 공지를 못한 탓이기도 하다.

그 근조화환에 쓰인 문구들이 이런 주의사항을 고려하지 않는 한 흔히 꽃집에서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로 통일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를 아는 지인들 특히 목사님들이 보낸 경우는 우측 리본에 ‘근조’, ‘소천’, ‘천국입성’, ‘부활’, ‘주님의 위로를 빕니다.’ 등의 익숙한 문구로 새겨져 있었다.

말과 언어는 그 사람의 사상이나 정신이고, 그 민족의 혼이라는 점에서 신중하게 사용할 필요가 있다.

한편 아버님이 지난 금요일(3.5) 85세를 일기로 소천 되셨다. 이에 3일장으로 하는 경우, 주일이기에 4일장으로 치르다 보니 상주인 나에게는 감회가 깊은 새로운 경험을 했다. 빈소를 지키지 못하고 잠시 토요일에 목포에서 강화까지 약 6시간을 들여 주일 낮 예배(11시)를 인도하러 다녀와야만 했다. 물론 교인들은 만류했지만 내 입장은 고마움과 함꼐 생각이 달랐다. 오후 예배는 존경하는 모 교수님이 인도하시도록 부탁을 드렸다. 이 분도 저와 같은 입장이었다. 즉 아무리 멀어도 주일 예배 인도하고 가는 게 좋다는 말씀이었다.

대신 장례식장에 남은 우리 형제들의 주일 예배가 마음에 걸렸다. 이에 마침 우리 부부 결혼 중매자로서 올해 은퇴하여 진주에 계신 원로목사님에게 부탁을 드렸다. 2시간 반쯤 소요되는 거리이다. 끝나고 예배 인도하신 그 목사님 말에 의하면 25명 정도의 가족들 예배를 인도하면서 말씀을 전하는데 우렁찬 아멘 소리, 예배의 분위기 등 하나같이 본인이 큰 은혜를 받은 시간이었다.라고 몇 번이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전국적으로 코로나로 인해 모이기에 쉽지 않은 시기였으나 거의 영향을 받지 않을 만큼 조문객을 받느라 바빴다. 조문객을 비롯해 그 외 모든 게 넘치도록 풍성했다. 인간적으로는 아버님을 잃은 슬픔이 장남인 나로서는 주체하기 힘든 게 사실이고 고향 집에 가서 보니 그 빈 자리가 너무 커서 더욱이 인간적인 슬픔을 가누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아버님이 가시는 천국 길이 너무 아름답고 풍성하며 평화롭게 진행된 것에 대해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 우리 7남매는 4일간 서로 평화가 넘쳐났다. 마지막 결산 때에 둘러앉은 형제들의 모습에서 확연했다. 조의금은 지인들에 대한 빚이니 어느 형제에게 얼마를 주자. 라고 하면서 대접하라고 해도 ‘남아계신 어머니에게 드리자.’ ‘교회에 헌금 하자.’라고 하나같이 동의하면서 모두 극구 사양할 정도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보며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무엇보다 4일간 따뜻한 날씨였고 4일째 고향 선영에 봉안예식 한 그 주변에는 아버님이 수십 년 전 심어놓은 3m쯤 되어 보이는 빨간 동백꽃 두 그루에서 이제 막 핀 꽃 몇 송이가 반갑게 맞이하는 듯했다.

아버님이 찬송가에 가장 많이 표기해 둔 즐겨 부르시던 찬양은 301장이다. 우리 7남매는 이 찬양 3절 가사를 부르며 나의 기도로 모든 일정을 잘 마쳤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찬송을 돌린다.

“주님 다시 뵈 올 날이 날로 날로 다가와 무거운 짐 주께 맡겨 벗을 날도 멀잖네. 나를 위해 예비하신 고향 집에 돌아가 아버지의 품 안에서 영원토록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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