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등록초본에 24번 이사
주민등록초본에 24번 이사
  • 민돈원
  • 승인 2021.03.23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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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민자치센터에 주민등록 초본을 떼러 갔다. 그 전에도 종종 등본 내지는 초본을 떼 보곤 했지만 이번에 초본을 떼 보고서 깜짝 놀랐다. 보통 초본은 한 장이었던 것 같은데 오늘은 3장이나 되었다. 그 이유는 현재까지 내가 살아온 주소지가 연도별로 1번부터 24번까지 기록된 분량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주소가 중복된 주소를 빼고 살펴보니 자그만치 16번이나 바뀌었다. 이 중에서 4번의 실제 내가 거주하지 않은 주소를 뺀다고 해도 무려 12번이나 이사를 다녔다는 것을 알았다. 예컨대 고등학교 1학년 신입생 때 광주 지산동에서의 첫 자취, 산수동에서의 하숙, 친척집 등에서 공부하느라 4번의 주민등록초본에 기재되어 있지 않은 이사, 그리고 한전 다니면서 대학 다니느라 하숙했던 역시 주민등록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3번의 이사가 있었다. 그 이후로도 2번의 이사 그리고 목회 시작한 전남 영광 개척교회를 하느라 건축하기 전 미리 내려와 근방 어느 식당 방 한 칸을 얻어 6개월 가까이 싱글로 살았다. 이렇게 살아온 거처 등 기억을 더듬어 보니 실제로 약 22번 정도 이사 다닌 것 같다.

내가 태어난 고향은 산수(山水) 좋은 전남 해남군 계곡면 용호리(법곡리 28번지)이다. 이곳에서 우리 부모님과 함께 중학교 때까지 살았으니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여정 가운데 가장 많이 부모님과 같이 산 셈이다. 그 이후로 20여 회 이사 다녔으니 한 마디로 나는 나그네 인생을 살아왔다고 해야 어울리는 것 같다. 그 20여 회는 공부만 하느라고, 또 공부도 하고 직장생활 하느라, 그리고 목회하느라 옮긴 숫자다. 부모님을 떠난 이후 나의 주거 방식은 스스로 연탄 피우고 밥을 해서 먹었던 70년대 자취를 비롯하여 하숙 생활, 잠만 자고 간신히 몸만 들어가는 반 평짜리 독서실의 삶, 친척 집에 신세 지고 살던 생활, 대학교 때의 기숙사 생활, 그리고 식당칸 방 하나에서 살기도 하는 등 내 삶의 방식은 그야말로 다양했다. 어쩌면 목회하는 지금의 삶이 다 낫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주 전 가장 오래 얼굴을 맞대고 살았던 내 부친께서 85세를 일기로 하나님 품에 안기셨다. 사실 돌이켜 보니 약 1/4 정도에 지나지 않는 16년 정도만 아버님과 함께 얼굴을 맞대고 살았다. 그리고 나는 22번 가까이 나그네 인생을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이런 나그네 인생길을 살아가야 한다.

이번 주 내가 섬기는 교회 오후 헌신예배 설교에 전직 감독회장 김진호 감독님을 모셨다. 끝나고 차로 이동하는 중에 이런 말씀을 들러 주셨다. 우리 감리교회 박장원 원로목사님의 미담이었다. 그 분이 가지고 계신 아파트가 재개발되는데 그러면 그 값이 수십억으로 오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것을 아들 목사님에게 주려고 하자 그 아들 목사님이 ‘아버지가 원하시는 데 쓰세요’라고 하면서 거부했다고 하는 일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감동의 스토리이다. 누군들 노후를 편하게 사는 것을 원치 않는 자가 있으리요?

마땅히 가질 수 있는데도 그 재물을 포기할 수 있는 물질관은 이 시대 우리 목회자들에게는 분명히 귀감이 되고도 남는다. 목회자가 은퇴 이후 물질로 고통당한다는 소식을 듣는 것보다 물질 때문에 마지막을 교회에서 명예롭지 못하게 은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아울러 들었다.

현직에 있을 때 설교강단에서 목회자들의 주된 설교 중의 하나가 무엇일까? 아마도 돈, 권력, 명예가 있다고 행복한 게 아니라 예수님 믿는 믿음이요, 복음이다. 라고 말하지 않는 목사가 누구리요? 그런데 막상 그 자리에서 떠나는 순간 믿음이니 예수니 복음이니 하던 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실리와 눈앞의 현실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지극히 이율배반적인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일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지금까지 지내온 수많은 이사의 행적들을 부끄럽게 여긴 적이 없다. 한 곳에 정착하면 돈도 모을 수 있었을 것도 같고 욕심도 생겼을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심리학자 매슬로우의 학설처럼 1차적 ‘안정의 욕구’가 있다. 그러나 그 지난날에 대해 나는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성경 주요인물의 인생관이 나그네 인생관이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모세도 야곱도 다윗도 나그네라고 표현하고 있다. 베드로와 요한도 나그네 된 자들에게 편지한다고 말하고 있다. 더욱이 예수님이 ‘나그네’라고 했으니(마25:35) 우리가 애써 부인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그 마지막 이사 가야 할 곳, 그곳은 이제 더 이상 보이는 주민등록상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겠으나 그 기록 이후에는 집 주소가 그치게 될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인 천국이요,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을 믿는 나를 비롯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주님과 함께 영원히 거하는 삶을 추구하기에 허영과 허세와 허욕을 버리며 살아야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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