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나무 열 여덟번째 이야기
큰나무 열 여덟번째 이야기
  • 이형연
  • 승인 2020.11.19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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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여물어 수확을 마쳐가고 있다. 가을의 경계를 넘어 겨울의 문턱을 지난지가 한참이 되었는데 몸으로 감지되지 않을 만큼 따듯하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던 해 겨울은 지금과 달리 유독 추위가 심했다. 강바람이 스치는 동네는 아침이며 쌀가루를 뿌려 놓은 듯이 흰 서리가 세상을 덮었고 여울을 지난 강물은 맑은 얼음 옷을 입었다. 땅속의 습기가 얼어 흙을 들어 올리면 갈라진 틈으로 보석처럼 아름답게 빛을 냈다. 좁은 골짜기를 지나는 바람은 날카로운 칼날이 스치는 소리로 모든 이의 옷깃을 여미는 겸손을 강요했다. 교회 중앙을 차지한 석유난로는 메케한 연기를 토하고서야 열기를 발했지만 밤새 냉동고로 변한 교회건물을 덮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사택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컨테이너에 지붕을 씌워 만든 오두막은 방안의 걸레가 얼을 만큼 단열이 되지 않았다. 만삭의 아내는 태어날 아이의 배냇저고리조차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서 산달을 맞이했다. 태어날 아이를 위해 옷가지를 마련하는 것은 어머니들에게 행복이고 해산의 불안감을 감소시키는 정서인데 격고 있는 가난은 이마져 허용하지 않았다.

싸라기눈이 내리던 날 아내는 산부인과 병원에 입원을 하고 도시의 거리에 우두커니 서서 한없이 무능한 자신을 탓하며 도움을 줄 사람들을 기억해 내기 위해 애를 썼다. 무작정 찾아간 선배 목사님에게 사정을 이야기 했지만 믿지 못하는 표정으로 웃고만 계셨다. 심각한 표정으로 한참을 이야기하고서야 한 뭉치의 돈을 발려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내는 이미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았고 회복실에 있었다. 달려온 형제들은 환자를 병원에 두고 어딜 쏘다니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차마 형제들에게 사정을 말하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간호사가 포대기에 아이를 안고 왔다. 아이와의 첫 대면은 눈물이었다. 참으려고 그렇게 애를 써는데 소용없는 짓이었다. 아이를 형제들에게 인계하고 밖으로 나와 어느 골목에선가 소리 내어 울었다.

아내의 수술비는 매형이 몰래 지불해 놓아서 아이에게 필요한 용품을 구입할 수 있었고 형제들과 친구들이 건 내준 축하 금으로 나머지 병원비를 해결 했다.

가족 수가 늘어난 컨테이너 속은 서로의 체온을 의지하여 차가운 겨울밤을 한 덩어리가 되어 보냈다. 간난아이는 내 배위를 침대 삼았고 아침에 살며시 아이를 이불 위에 놓고 자리를 비우면 나를 찾아 방안을 돌아다니다 커다란 쿠션을 나 대신했다.

목사의 삶은 스스로 선택한 가난이다. 일용할 양식은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란 믿음이 있다. 그것이 주어지지 않을 지라도 삶의 모든 순간은 주인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총이다.

목사에게 특별한 은총이 있다며 주어진 목회적 상황에서 성도들과 다른 특별한 삶을 선택하지 않을 권리이다. 나의 아이들은 전혀 특별하지 않은 시골아이로 자랐다. 그 흔한 학원도 한번 가본일이 없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 학원을 보내야 할 것 같다고 아내가 제안했지만 월 칠만원하는 학원비가 부담돼 다니던 학원을 그만 둔다는 교인의 푸념을 듣고서는 아예 아내의 입밖에도 내지 못하게 했다. 옷도 시골 장날에서 골라 입었고 먹는 음식도 그들과 같았다.

고등학생이 된 아이는 도시유학을 제안했지만 시골학교에 남기를 원해서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다. 내게 남들이 모르는 아주 특별한 것이 있다면 교회에서 운영하는 지역아동센터에서 비빕밥이 저녁 메뉴로 나오는 날 밥하시는 집사님이 계란을 한 개더 밥 밑에 깔아주시는 건데 집사님과 나만 아는 비밀이다.

종교인의 치부가 언론에 보도 될 때 마다 하지도 않지만 할 수도 없는 상황에 있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다. 하나님으로 만족하지 못하면 세상을 얻고자하는 것이 사람이다. 반대로 세상을 비워내야만 하나님으로 포만감을 얻을 수 있다. 둘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아직 나는 모른다. 다만 가난한자가 복이 있다는 주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길 뿐이다.

눈 대신 밤새 겨울비가 내린다. 양철지붕을 때리는 빗소리가 정겹다. 산이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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