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좋게 지내기
사이좋게 지내기
  • KMC뉴스
  • 승인 2019.03.27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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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하고 나는 친구 되어서 사이좋게 지내자. 새끼손가락 고리 걸고 꼭 꼭 약속해.”

아이들이 부르는 ‘꼭 꼭 약속해’라는 동요입니다. 친구가 되어 사이좋게 지내자는 다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이좋게 지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어지는 노랫말에서 힌트를 얻어 보겠습니다.

“싸움하면은 친구 아니요 사랑하며 지내자. 새끼손가락 고리 걸고 꼭 꼭 약속해.”

싸우면 친구가 아니랍니다. 그러니 싸우지 말고 사랑하며 지내자는 다짐을 합니다. 친구가 되어 사이좋게 지낸다는 것은 싸우지 않는 것을 포함하는군요.

사이좋게 지낸다는 것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봅니다. 사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았어요. 사이는 ‘한곳에서 다른 곳까지’를 뜻합니다. ‘서로 맺은 관계’라는 의미도 있어요. 사이좋다는 것은 ‘서로 정답다, 서로 친하다.’라는 의미입니다.

노랫말과 사전의 뜻을 합해볼게요. 사이좋게 지낸다는 것, 싸우지 않고 친하게 지내는 것을 의미하네요.

나에게 중요한 몇몇 사이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나와 하나님 사이, 나와 나 사이 그리고 나와 너 사이. 그 사이를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어떤 사이는 때론 좋기도 하고 때론 나쁘기도 합니다. 어떤 사이는 항상 나쁩니다. 항상 좋은 사이는 드물어요.

그렇다면 내가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사이에 무엇인가가 끼어서 훼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하나님과 나 사이를 들여다봅니다. 그 사이에 모양을 달리하고 무게를 달리하는 수많은 막힘이 있네요. 때론 두려움이, 때론 분노가, 때론 욕망이 그리고 때론 하나님에 대한 의심이 사이를 막고 있어요. 말도 안 되지만 때론 신앙생활이라는 이름의 어떤 것들이 그 사이를 막기도 합니다. 생활의 분주함이 훼방꾼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휴대폰이 그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군요.

나와 나 사이는 어떠한가 생각합니다. 내가 나랑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막는 것은 무엇일까요? 지나온 시간에 대한 후회가 있습니다. 자책이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심어놓은 ‘~~해야 한다.’는 음성이 있습니다. 채워지지 않은 기대가 있습니다. 이런 것들에 휘둘리다보니 나랑 친하게 지내기가 어렵습니다.

나와 너 사이는 어떠한가요? 결혼 초기를 떠올려봅니다.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싸움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우리의 내면에는 친정과 본가가 있었습니다. 살아온 시간만큼의 습관이 있었고, 정립된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것들이 막힘이 되니 사이좋게 지낼 수가 없었지요.

많은 경우 우리는 내 생각대로 해주기를 바랍니다. 참으로 터무니없는 일이지요. 때론 너에게 상처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기도 합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이 딱 들어맞습니다. 너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합니다. 색안경을 끼고 너를 바라보니 너와 좋은 관계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아주 중요한 말씀을 선포합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엡 2:14)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을 통해 막힌 담을 모두 허셨음을 가르쳐주네요. 그런데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나에게 여전히 담이 많이 있으니... 부끄럽지만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있지 않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순절을 보내며, 우리 곁에 오셔서 막힌 담을 모두 허신 예수님을 묵상합니다. 그 예수님이 나의 삶에 거룩한 실재가 되기를 소망하며 나와 관계된 사이들을 찬찬히 살펴봅니다. 그 사이에 막힌 것이 무엇인지 알아갑니다. 막힌 것들이 허물어져, 사이좋게 지내는 좋은 친구가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담들이 무너져 그 사이에 시원한 바람이 불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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