앓아 보니
앓아 보니
  • 윤미애
  • 승인 2019.02.13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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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시끄러워 꼼짝도 하기 싫었습니다. 흩어졌던 가족들을 만나는 것이 좋기는 하지만 이번 명절엔 그냥 조용히 쉬고 싶었어요. 생각을 말하자 딸아이가 반대합니다. 엄마의 복잡한 마음과 달리 얼마나 기대하던 명절인데요. 세뱃돈도 중요하고 쇼핑도 해야 하거든요. 저 또한, 맘과는 달리, 집에 있기를 선택할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일일이 설명하는 것이 더 귀찮을 것 같아서요.

명절이라고 일을 많이 하지도 않습니다. 시댁이든 친정이든 어머니들이 음식을 거의 다 준비하셔서 설거지 정도만 해요. 가족들과 차 마시러 가거나 놀이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곤 하죠. 하지만 이번엔 가고 싶지 않았어요.

미적거리며 마지못해 집을 나섰습니다. 어차피 나선 길, 시댁에 도착해서는 즐겁게 지냈는데 밤이 되자 속이 불편하기 시작했어요. 체기가 느껴집니다. 꾹 참고 잠을 청합니다. 설날 아침, 마치 입덧하는 것처럼 음식 냄새가 불편합니다. 아~ 정직한 몸! 명절에 움직이기 싫다던 저의 말을 다 듣고 기억하고 있었나봅니다. 어찌어찌 시간을 보내고 친정에 도착하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습니다. 본격적인 시련이 시작되었습니다. 화장실에 들락날락합니다. 너무 힘들어 약을 먹어 봅니다. 하지만 별 차도를 보이지 않습니다.

다양한 명절 음식들이 있지만 그림의 떡입니다. 처음엔 몸에서 받지 않아서 못 먹고, 나중엔 체기가 더 심해질까 두려워 먹지 못합니다. 어머니께서 괜한 고생을 하십니다. 끼니때마다 죽을 끓여 먹이십니다. 딸이 앓고 있으니 속상하신가봅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딸의 이마에 손을 얹고 한참을 앉아 계십니다. ‘엄마 손은 약손’이라며 배를 계속 문질러 주십니다. 아픈 덕에, 죄송하지만,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았습니다.

명절 내내 죽만 먹고 또 며칠을 쉬니 몸이 회복되어갑니다. 앓아 보니 별 것 아닌 일상이 참으로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먹는 것이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있음이 정말 감사한 일이네요. 비정상적으로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고생을 하고, 또 집에 와서는 먹었던 약의 부작용인지 화장실에 가서 허탕만 치며 알아갑니다. 잘 누는 것이 엄청난 축복이라는 것을.

갑자기 배가 아프다는 딸아이를 보며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아무 일도 없는 것은 아무 일도 없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일의 연속인 거라고. 그런데 평소엔 그걸 잘 몰라요. 그러니 자꾸 하나님께 떼를 쓰지요. 좋은 일 좀 달라고...

최고의 도는 효도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어요. 효도가 무어라 말하긴 힘든데 철들기 전과 후는 분명 다른 것 같아요. 철들기 전에는 부모님에게 바라는 것이 많지요. 부모님이 무엇을 해주시느냐가 중요합니다. 부모님의 뜻을 묻지도 않아요. 하지만 철들고 나면 달라집니다. 무엇을 해주셔서가 아니라 부모님이시기에 감사합니다. 그제야 부모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비슷한 것 같아요. 철든 신앙인, 하나님이 무엇을 해주셔서가 아니라 그저 하나님이기에 감사합니다. 그저 하나님이기에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그러고 보니 사도 바울이 말한 하나님의 뜻이 생각이 나는군요.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말해주었지요.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요. 하나님은 우리가 반복되는 일상에서 기뻐하며 일상에 감사하기를 원하시네요. 쉼 없이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말이지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 저는 멀고도 멀었습니다. 일상에서 감사를 발견하지 못하고 자꾸 이것저것 바라니까요. 멀고도 먼 그 길, 그래도 연습하며 걸어가 보려고 합니다. 너무나 당연히 여기던 것들에 대해서 감사하면서요.

“오늘도 이렇게 숨 쉬며 살게 하시니 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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