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
뒷모습
  • 윤미애
  • 승인 2019.03.13 08:5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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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에 가면 음식을 사진으로 남기려는 사람들이 주변에 꽤 많아요. 그래서 가끔은 음식을 앞에 두고 군침을 삼키며 기다려야 하지요. 허나 저는 음식사진 찍는 것을 별로 즐기지 않아요. 제가 사진 찍기 좋아하는 것은 따로 있는데 바로 사람들의 뒷모습이랍니다. 특히 제 아이들의 뒷모습 찍는 것을 저는 좋아합니다. 그중 제가 아끼는 사진이 하나 있는데, 험하지 않은 언덕을 둘이 걸어가는 뒷모습을 찍은 거예요. 큰 아이가 여섯 살 쯤 되었을까요? 두 살 많은 오빠를 여동생이 따라 걷고 있어요. 그 사진은 평화로움을 전해주며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어 줍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찍은 것들은 주로 나란히 걸어가는 뒷모습입니다. 제 아이들이어서 그렇겠지만, 남매가 나란히 걸어가는 뒷모습이 그렇게 좋아 보일 수 없어요. 얼마 전에도 타지에 있는 아들을 기숙사에 데려다주고 식사를 하러 가는데, 아이들이 장난을 치며 걸어갑니다. 그 기회를 놓칠 수 없죠. 얼른 사진을 찍습니다. 이젠 엄마보다 더 커버린 딸과, 아빠보다 더 커버린 아들의 뒷모습. 왠지 모를 뿌듯함으로 마음이 꽉 차오릅니다.

이렇게 사람들의 뒷모습은 참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들의 관계와 감정의 정도에 따라 걸어가는 뒷모습이 다르지요. 걸음걸이도 다르고, 걷는 간격도 다르고, 그래서 만들어내는 풍경도 다르고요.

잔잔한 감동을 주며 인기리에 상영된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혹시 보셨나요? 촬영당시 76년을 함께 사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영화의 주인공이시죠. 어딜 가시든 예쁘고 고운 한복을 커플룩으로 맞춰 입으시고, 손을 꼭 잡고 다니시는 두 분의 일상을 담담하게 담아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죠. 영화의 배경이 저희 동네여서 그분들을 오일장에서 여러 번 뵈었답니다. 눈에 띄는 화사한 색깔의 옷차림으로 손을 잡고 걸어가시는 두 분을 처음 뵈었을 때, 말없이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뒷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져서요.

두 분만이 아니죠. 아주 오랜 세월을 함께 사신 노부부의 뒷모습은 그 자체로 참 큰 감동입니다. 사실 저에게도 아름다운 뒷모습을 가진 부부로 늙어가고 싶은 바람이 있어요. 나보다 한 걸음 앞서서 걷곤 하던 남편, 지금은 저의 부단한 잔소리 덕에 나란히 걸어가거든요. 나란히 걷는 우리 부부, 그래도 사이좋게 늙어갈 가능성이 엿보이지 않습니까? 제가 남편을 지팡이 삼아 걷는 불순한 의도가 있지만, 우리의 뒷모습이 더 아름답게 익어가면 좋겠습니다.

막 걸음마를 배운 아이와 그 뒤를 따라가는 젊은 엄마의 뒷모습은 또 어떤가요? 이제 걷기 시작한 아이는 세상이 무척 재미있고 신비합니다. 두 발로 땅을 딛는 것도, 그렇게 마주하는 풍경도 신기합니다. 그래서 뒤뚱거리며 쉼 없이 걸어가지요. 뒤따르는 엄마의 맘은 조마조마합니다. 그렇게 자라서 걸어가는 아이가 신통하고 대견합니다. 하지만 언제 넘어질지 모른다는 초조함에 눈은 아이에게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엄마와 아기가 만들어내는 뒷모습,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하지요.

최근에 만난 아름다운 뒷모습은 예수님과 레위의 뒷모습이에요. 예수님은 세관에 앉아 있는 세리 레위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그 말씀에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일어나서 예수를 따라갑니다.(눅 5:27~28)

부르심에 그저 ‘예’하고 따르는 레위가 참 멋집니다. 예수님과 그 뒤를 따르는 레위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따른다는 것은 뭘까 생각해 봅니다. 따른다는 것은 발걸음을 맞추는 것을 말하겠지요. 따른다는 것은 앞서지 않는 것을 말하겠지요. 따르려면 너무 뒤쳐져도 안 되겠지요. 오직 앞서가신 이를 제대로 바라보아야만 가능한 걸음이겠지요. 그렇게 만들어진 뒷모습이 보기에 참 좋네요.

사순절을 보내며 저도 레위가 되어, 아니 그처럼 되기를 소망하며, 예수님을 가만히 따라가 봅니다. 저의 걸음에 예수님을 맞추지 않고, 예수님의 걸음에 저의 걸음을 맞추면서. 그리고 소망합니다. 예수님과 내가 만들어내는 뒷모습이 아름답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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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기정 2019-03-20 17:43:05
참 감동적입니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 봄이 느껴지는 날, 다시한번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