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순환보직 제도
목회자 순환보직 제도
  • 민돈원
  • 승인 2018.07.17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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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내가 속한 이 지역 연합회 이대위원들과 함께 활동하는 최대 이슈중의 하나인 신천지 교주기념관 반대를 위해 나의 중재로 한기총 임원을 초청한 활동 기사가 교계방송에 보도 된 적이 있다. 이에 그 기사를 몇몇 목사님들에게 이 지역을 위해 관심 갖고 기도해 달라는 마음으로 카톡을 보냈다. 그러자 그 중에 충남 서산에서 중증 장애를 가진 어르신 수 십 명을 20년 이상 섬기다 보니 이제는 유급 직원도 수 십 명에 이른 사업장이 될 만큼 사회복지 목회를 매우 큰 규모로 하고 있는 동기목사님으로부터 답신이 왔다. 요지는 이런 내용이었다.

‘적 그리스도 신천지의 외부 공세를 격퇴하는 일도 시급한 일이오나, 교회 내부를 정화하는 것도 이단에 대처하는 바른 방책입니다. 무엇보다 교회 사유화의 적인 분열을 극복하고 공교회가 요구됩니다. 그러기위해서는 교회 담임목사 임기제가 시행되어 개체교회에 머물지 말고 공익적 관심으로 전환 되어야 합니다... ’
등의 교회 애정을 가지고 염려하는 조언이었다.

평소 그 동기목사님은 신학교 다닐 때부터 줄 곧 늘 현재 감리교회 시스템과 한국교회 구조적 결함에 대해 질타를 하면서도 스스로의 갱신과 의식변화를 통한 교회 바르게 세우기에 대해 매우 관심과 열정을 가진 깨어있는 동기이다. 그래서 지금도 종종 어떤 일로 만나게 되면 그와의 대화 주제는 대부분 위에서 언급한 그런 대화가 주된 관심사이다. 비록 그가 처한 목회 현장과 내가 속한 현장의 목회적 실무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감리교회와 한국교회 전체라는 숲을 바라보는 관점과 최소한 목회자 자신이 가져야 할 본질적 패러다임 측면을 고려하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공감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에 그의 의견에 동의하면서 어느 사회적 갈등의 문제가 늘 그렇듯이 한가지만의 원인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기에 가장 확실한 해결책과 정답은 없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적어도 최소한의 차선책을 강구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대한 한 지금의 목회 현장을 돌아볼 때마다 온 몸에 고통이 끊이지 않을 만큼 절실함으로 다가온다.

그러면 차선책중의 첫 대안이 무엇일까? 이에 대해 나 역시도 그 동기가 내게 제안한 것에서 용어를 조금 달리하는‘목회자 순환보직제도’신설 방안을 오래전부터 마음에 두어왔다.
누구도 현재 제도권에 있는 기득권 가진 자들의 행정시스템이나 특정인에게 집중된 교회권력구조 프레임으로는 교회부패나 교단의 부패 척결은 아무리 근사한 법을 만들지라도 요원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현실적인 이권이 결부되어 있고 거기에 교회나 지방, 연회 안에서 자기 사람 만들어 선거에서 유리하게 선점하려는 악순환이 오랫동안 고질병처럼 번져가는 기존 제도권속에 깊이 암약되어 있는 구조적인 메카니즘 때문이다.따라서 나는 우선 감리교회에서만이라도 초 개혁적인 시도가 일어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아직은 시기상조라든가 아니면 근거 없다고 시약불견할지 모르나 지속적인 공청회 등의 진지한 여론의 제목으로 채택하여 의견을 수렴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바로 그것이 개체 교회에 담임목사 순환보직제도 실시이다 모든 교회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교회가 부패하지 않고 목회자가 타성에 젖지 않으려면 늘 새로운 변화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순환보직제이다.
마치 우물물처럼 들고 나가야 한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는 점에서 그러하다. 한 교회를 오래 목회 하는 분들을 훌륭하게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이쯤에 와서는 주요 공직사회에서 시행하고 있는 순환보직제도 하나 만큼은 개신교에서 논의해 볼 때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현대 사회가 잘살고 문명의 이기로 편해지면서 상대적으로 부패해져 가는 교회 모습과 목회자 자신의 타성에 젖은 누적된 딜레마('생존경쟁의 목회'라고 부르고 싶다)가 결국 성도들에게 건강한 교회 모습을 만들지 못하게 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그렇다.나아가 이것은 곧바로 그런 교회는 한낱 종교시설로 존재할 뿐 사회에 그다지 영향력 없는 무력한 교회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예컨대 경찰공무원이나 법조계는 1년 단위로 전보 발령하는 것에 착안해 보면 어려운 문제도 아니다. 시, 군 경찰서장의 경우 매년마다 인사이동이 발생한다. 전혀 모른 지역에 치안 수장이 되는 것이다. 그 치안과 주민을 잘 알고 가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지방자치단체 기관장을 거뜬히 수행해 나간다. 그것은 조직내에 현장을 잘 아는 실무경험을 가진 직원들이 업무를 보좌해 주기 때문이다. 교회도 이런 장치 외에 목회적 특성을 수정보완하면 지금처럼 '내 교회' '내 사람' 등을 해소할 수 있다고 본다. 흔히들 '내 사람' 잘 만드는 분들이 조직력이 강해서 그 조직을 장악하는 것을 본다. 불행하게도 목회자의 성공기준이 언제부터인가 교회사이즈가 잣대가 되어 버린 이 시대이다.
이렇게 가치 전도된 프레임을 깨기 위해서라도 순환 보직제도는 서둘러 시행해야 한다. 비록 초기에 빈번한 시행착오를 거치는 수고가 따르더라도 이 시스템을 잘 운영하는 것이 우리 스스로의 자정 능력의 길이라고 본다. 성도들의 많고 적음, 교회 사이즈의 크고 작음, 결산의 많고 적음, 심지어 임원 중 장로 등의 측근들을 등에 없고 내 존재감과 야망을 드러내려고 한다면 세상에서야 당연히 통하는 방식일지는 모르지만 주님이 보실 때 얼마나 우스운 일이 되겠는가? 그런 것들이 내가 누구인지를 대변해 주는 정체성도 아니고 더군다나 배경이 될 수 없지 않겠는가? 하는 염려 때문이다. 세상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언필칭 마키아벨리의 그런 군주론이 통할지 모른다. 그러나 교권은 '내 사람'이 없을 만큼 힘이 없어야 교권에 대한 욕심도 사라질 것이다. 그 대신 지독히도 외롭고 고뇌하는 삶이어야 한다. 그러기에 '주님만이 힘입니다' 라고 심연에서 우러나오는 고요한 영적 함성도 있지 않겠는가?그래야 힘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고 덕 있는 지도자가 되어 간다고 본다. 이런 일이 기득권을 가진 분들 입장에서는 용납이 잘 되지 않는다. 당장 눈앞의 내 사사로운 이익이 사라지고 내 명예를 다른 사람에게 잃는다고 여기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러다보니 지금이야말로 지도자 홍수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본받고 따를만한 존경하고 신뢰할만한 지도자를 찾기 힘든 책임적인 지도자 빈곤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위에 언급한 제안이 우리가 목회하고 있는 갑갑한 현장만 탓하지 말고 스스로의 자정능력을 위해 열외가 아닌 그 중심의 대상이 된다면 비록 작은 나비 몸짓에 불과할지라도 머지않아 조금씩 공감대가 형성되어 깨끗하고 의식을 가진 실천적 삶으로 우리 다음세대에 만큼은 자랑스러운 감리교회, 나아가 한국교회가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값진 유산을 물려줄 수 있으리라.

그렇게 여기는 마음을 모아 그 소망의 연을 저 위로 힘껏 띄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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