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의 마침은 섬김의 시작
예배의 마침은 섬김의 시작
  • 정택은
  • 승인 2017.07.20 08: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느 교회를 가 보아도 예배 후에 재미있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예배를 마치자마자, 목사님의 축도가 끝나기가 무섭게 성도들은 뭐가 그리 바쁜지 출구 쪽으로 우르르 몰려들어 정체가 일어난다.

예전에는 예배가 끝나도 남아서 조용히 기도하는 성도들을 흔히 보았는데,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예전에는 예배 후에 교회 청소를 기쁨으로 여기며 곳곳에 섬기는 손길이 많았는데, 지금은 예배 후의 예배당의 모습을 보면 참 해도 너무한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전에는 곳곳에 섬기는 손길들이 많았다. 하얀 수건을 들고 강단 청소를 하시는 할머니 권사님의 정성스런 손길이 있었고, 예배 후에는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예배당의 곳곳을 청소하며 섬기는 손길이 있었다. 또한 찬양대나 성도들의 주일 점심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성도들도 많았는데, 지금은 봉사자가 없어 주일식사를 위해 아르바이트 주방봉사자를 고용해서 하는 교회들도 늘어가고 있다.

이처럼 언제부터인가 교회에서 섬김이 사라져가고 있다. 그와 동시에 나타난 현상이 교회 밖 섬김도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사랑의 공동체인 교회에서 조차도 섬기지 않는데 교회 밖 세상 사람들을 위한 섬김이 줄어드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은 ‘섬김’의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 후에는 사람들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의 모습은 섬김의 삶보다는 자기를 높이는 데에만 열중하고 있다. 예배 시에는 하나님은 없고 자기의 이야기에만 열을 올리는 설교자나, 자기의 공덕이나 자기의 문장력을 과시하려는 기도자나, 또는 인간적인 기교로 잔뜩 무장한 찬양대나, 멋진 옷을 입고 고상한척 주위의 시선을 사로잡아 보려는 중년부인의 옷차림 등은, 우리들의 교회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 없이 드려지고 있는 예배의 모습이다.

예배의 주인인 하나님은 잊고, 그 자리에 자신이 앉으려는 사람이 어떻게 주위의 이웃을 섬길 수 있겠는가! 여전히 섬김을 받으려고 안달인 우리들의 몸짓이 꼴사납게 느껴지고, 그 마음의 높음이 가히 가관이라 아니할 수 없다.

교회의 직분은 섬김을 위한 직분이지 섬김을 받으라고 주는 직분이 아니다. 교회에서 가장 섬겨야 할 사람들이 섬김의 중심에 앉아서 섬김을 받으려한다면, 어찌 섬기는 것을 배울 수 있으며 섬김의 기쁨을 느낄 수 있겠는가!

이제 다시 섬김의 중심의 자리에 하나님과 우리의 어렵고 소외된 이웃을 모셔야 한다. 예배 후 교회 문을 나설 때, 한 주간 내가 섬겨야 할 대상이 누구이고, 무엇으로 섬길 수 있는지를 고민하며 교회의 문을 열고 나왔으면 좋겠다.

감히 바래본다. 예배 후 세상과 이웃을 섬기기 위해 앞 다투어 출구 쪽으로 몰려나왔으면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다. “예배의 끝마침은 섬김의 시작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