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 준비된 자가 상속받는다(마태복음 25장 31-40절)
천국은 준비된 자가 상속받는다(마태복음 25장 31-40절)
  • 이관수
  • 승인 2016.11.02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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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 10주(2016년 11월 6일)

가. 신앙생활은 제대로 준비하는 과정이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31-33절).

본문은 마태복음이 전하는 예수님의 마지막 설교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는 일을 앞두고 자신이 심판주가 되어 다시 오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육신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구세주이십니다. 하지만 부활의 몸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은 다릅니다. 그날 주님은 영광의 보좌에서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최후 심판 때가 되면 모든 인생은 의인과 악인으로 구별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단지 우리에게 무서움을 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최종적으로 심판주 앞에 합당한 삶으로 인정받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며 제대로 준비하는 신앙생활을 하라고 강조하신 것입니다.

그 날은 제대로 준비하며 살았는지가 판가름 나는 날입니다. 예수님의 설교에서도 슬기 있는 처녀들과 미련한 처녀들의 차이는 실제로 준비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의 차이였습니다(마25장). 진짜 깨어있던 처녀들은 신랑 맞을 준비를 제대로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처녀들은 준비가 부족한데도 막연히 기다리기만 했습니다. 신앙생활은 안일하게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영생에 들어가도록 합당하게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나. 심판은 평상시의 삶으로 평가받는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35-36절).

본문에서 예수님은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라고 하면서, 선행의 대상을 자신과 동일시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라고 하였습니다(42절). 오른편에 있던 자들이나 왼편에 있던 자들이나 그 반응이 놀라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떻게 그 사람이 주님이셨냐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그때 그가 바로 나였다”라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게 도움 받아야만 하는 궁핍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했던 선행이 나에게 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는 뜻입니다(40절). 다시 말해 오른편에 선 사람들은 평상시에 어떤 사람이든 예수님 대하듯 대했고, 왼편에 선 사람들은 상대의 겉모습으로 판단하고 대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천국과 지옥을 갈라놓았습니다.

이런 설교를 들었던 유대인들은 아마도 기분이 몹시 나빴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의의 기준은 그런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 선행이고 그러면 하늘나라를 상속 받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 자신도 기억 못하는 평상시의 삶 자체가 의의 기준이라고 평가하셨습니다(요5:29).

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몸에 배어있어야 한다.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37-40절).

본문에서 열거한 여러 가지 선행은 천국과 지옥을 갈라놓는 선행목록이 아닙니다. 더구나 예수님은 선행의 많고 적음도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천국과 지옥을 나누는 의의 기준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한 마디로 천국의 가치관이 몸에 배었는지의 여부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란 약자와 곤경에 처한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을 돕는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이런 선행은 한두 번 가르침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에서 왼편에 섰던 사람들도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이 만약 예수님인줄 알았다면 선행을 베풀었을 것입니다. 그들도 분명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는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몰라서 선행을 못한 것이 아니라 말씀이 체질화 되지 않았기 때문에 행동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머릿속에 두기만 하면 가끔씩 떠오르는 지식일 뿐입니다. 이 말씀이 몸속에 흐를 때에 비로소 ‘레마’(ρημα)가 됩니다. 말씀이 몸 안에 피같이 흘러 레마 차원이 될 때 제대로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전하신 양과 염소 비유는 지극히 작은 자에게 선행을 베풀라는 단순한 교훈이 아니라 우리가 레마로 살 때 지극히 작은 자도 섬길 수 있는 의인이 된다는 천국 복음입니다.

라. 제대로 준비된 자가 하늘나라를 상속받는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34절).

심판주 예수님은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복 받을 자들’이라고 칭찬하였습니다. 여기서 ‘복 받는다’(ευλογεω)는 분사형으로 쓰였습니다. 성도로서 사는 자체는 현재도 복 받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복 받을 자가 됩니다. 따라서 제대로 믿어 말씀이 체질화 되고 있는 생활 자체가 하늘나라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 형식적이고, 안주하는 신앙생활은 매우 위험합니다. 모래 위에 세우는 집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 날 “내가 얼마나 열심히 믿고, 많은 일을 했는지 모릅니까”라고 원망할지도 모릅니다.

날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다 보면 말씀이 체질화되어서 사람들을 대할 때 어떤 의도를 갖지 않고 돕고, 대가를 바라지 않고 섬기게 됩니다. 믿음의 성도는 삶의 방향성도 언제나 하나님의 관심과 같이 갑니다. 이런 사람이 반석 위에 집을 짓고 있는 의인입니다(마7:24). 예수님은 제대로 믿는 성도에게 영생의 복을 약속하십니다(4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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