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하라고 하시네요
위로하라고 하시네요
  • 이구영
  • 승인 2016.04.29 0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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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받으면 살아왔습니다.
어린 시절에 부모님께, 형제들에게, 동네 친구들에게 위로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위로인줄 몰랐습니다.
세월이 지나보니 그 많은 사람들이 나를 위로해주며 함께 걸어와 주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슬플 때, 답답할 때, 대책이 없을 때, 우울할 때, 섭섭할 때를 다 지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강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분들이 옆에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잊어 버렸습니다.
하늘에서 오늘의 내가 뚝 떨어진 것처럼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작은 서운함이 있을 때 문득 과거를 되돌아봅니다.
과거 생각의 언저리 어느 즈음에선가 비슷한 경우를 찾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 나 스스로의 힘으로가 아니라 많은 위로자들을 통해서 살아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로,
배부른 먹거리로
야단치는 꾸지람으로
생각지 못했던 선물로 나를 이끌어주신 분들이 있었습니다.

또 알게 되었습니다.
그 모든 사람들과 사건들이 하나님의 위로의 선물이었음을!

현대인들은 위로가 필요한데 스스로 위로하지 못하고 스스로 위로 받지 못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스스로를 위로하고 또 남을 위로해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살이가 얼마나 힘든지 아시니까요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때는 나라가 아주 많이 힘들 때 이었습니다.
북쪽에 있던 이스라엘 나라는 앗수르라는 나라에 의해서 멸망을 당했습니다.
앗수르라는 나라가 쳐들어와서 3년이나 나라를 쑥대밭을 만들고,
특히 수도 사마리아성을 3년이나 에워싸서 꼼짝도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아주 말라 죽일작정으로 성을 삥 둘러 아무도 못 빠져나오게 막아버리니까 결국 항복을 하고 말았습니다. 북쪽 나라 이스라엘이 건재할 때는 남쪽 나라 유다도 살만했는데 북쪽 나라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당하고 나니까 사람들은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앗수르라는 강대국하고 우리가 어떻게 싸울 수 있느냐고,
다 죽었다고 불안함이 극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불안과 두려움이 사람들에게 일어났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이사야하게 하시는 말씀이 위로하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오늘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좁은 땅 덩어리에 사람은 많고 경쟁은 치열하고, 높은 자리 하나 차지하기 쉽지 않고, 혹 높이 올라갔어도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혹 내가 오늘 기분 좋게 이겼을지 모르지만 언제 또 패배자의 자리에서 슬퍼해야 할지 모르는 시대가 되어 있습니다.
어지간히 노력해서는 도저히 생존경쟁의 윗 그룹으로 나아갈 수 없는 철저한 세대 단절, 양극화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흙수저가 금수저가 될 수 없는 절망의 시대!
그래서 정신적으로 더 약해지고 불안하고 우울해지는 시대!
누가 좀 잘 나간다 싶으면 시기하고 질투하고 끌어내리려 하고,
누가 좀 칭찬 들으면 어떻게든지 그의 이중성을 밝혀내어 주저 앉혀야 시원한 시대!
그래서 더 불안하고 두렵고, 행복을 찾아보기 힘든 시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누가 위로자가 될 수 있습니까?
내가 위로 받고 살아왔음을 아는 사람입니다.
내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사람들 속에서 행복했음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

이제는 위로하며 살고 싶습니다.
따뜻한 말이 필요한 때는 물론,
돈이 드는 일이라 할지라도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일이라 할지라도
때로는 오해를 살 수 있다 할지라도
때로는 힘이 들고 많이 피곤하다 할지라도
때로는 내 자손심이 상한다 할지라도
위로자로 살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내게 그렇게 해 주셨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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