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도 내 식구입니다.
그 사람도 내 식구입니다.
  • 이구영
  • 승인 2016.04.21 2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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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람도 내 식구입니다.

느혜미야 8장에 보면 초막절을 지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단순히 초막절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사전 준비작업이 있습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받는 때를 회상하며, 조상들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축제이고, 오늘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축제입니다.
조상들의 고난을 생각하고, 앞으로 나를 인도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는 축제입니다.
동시에, 초막절에는 아주 중요한 의미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함께 산다는 공동체의식입니다.
초막절 축제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한 가족임을 확인하는 기간입니다.
그래서 하루가 아니라 적어도 일주일 이상을 초막생활을 하게 합니다.

느혜미야가 파사왕국에서 예루살렘에 와서 엄청난 일을 하였습니다.
100년 동안 누구도 해 내지 못한 성벽을 50여명의 동역자들과 그들의 가족들과 함께 이루어 냈습니다.
그러자 아마도 시끌시끌한 소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성벽공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공로자들과 방관자들 사이에 갈등과 대립이 자연스러웠을 것입니다.

교회를 지어보면, 헌금을 한 사람과 하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헌신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들과 새로 오신 분들도 있습니다.
이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고 서로에 대한 공통점 보다는 차이점이 부각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시험을 줍니까? 공로자들이 방관자들이나 소극적 참여자들을 정죄하게 됩니다.
누가 누구를 시험 들게 합니까? 힘 있는 자들이 힘없는 자들을 시험 들게 합니다.

교회에도 새신자 때문에 시험 드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목회자들과 사모들과 장로님들과 권사님들 혹은 교회 오래 다닌 집사님들이 그 범인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연자 맷돌을 메고 물에 빠져 죽는 편이 차라리 낫다고 가르쳐주신 대상자들은 초신자들이나 약한자들이 아니라 힘 있는 자들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전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일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이 전도해도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빠져나가는 오늘의 현실 속에 느혜미야 8장은 큰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서울 남연회에서만 2014년에 비해서 2015년에 10%가량의 성도들이 줄어들었습니다.
다른 연회도 그리 큰 차이는 없어 보입니다.

이제는 전도보다 더 우선시해야 하는 일이 내부를 단속하는 일입니다.
입조심, 행동조심을 통해서 시험 드는 사람들을 줄여야 합니다.
사랑하고 관용을 베풀고 겸손히 섬기면서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과 섬김을 몸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더불어 살아가려고 하는 공동체의식을 강하게 심어주어야 합니다.

느혜미야는 그 분열과 자기 공로 사상의 팽배와 혼돈의 때에 몇 가지 특단의 조치를 취합니다.
우선은 알아들은 만한 사람들에게 에스라를 통해서 말씀을 낭독하게 합니다.
긴 가르침이 아닙니다.
잔소리가 아닙니다.
그냥 낭독입니다.
스스로 깨우치도록 했다는 말씀입니다.
이미 교만해진 사람들은 누구의 소리도 듣지 않습니다.
스스로 꺠우치도록 말씀만 전했다는 대목이 참 대단하게 큰 지혜라고 여겨집니다.
모든 사람을 초청하지 않았습니다.
알아들을 만한 사람만 초대했습니다.
새신자라기 보다는 공로사상과 교만이 들어가 있는,
성경에 대하여도 해박한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한참동안 성경을 읽자 사람들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하나님을 송축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 소리가 줄어들었습니다.
기도만 하다 보면 공로자들은 억울한 생각과 비교 우위속에 교만이 싹트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도보다는 그저 말씀을 읽고 찬양만 합니다.
알아들을 만한 사람들에게는 뜻을 풀어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슬퍼하거나 억울한 생각 없이 함께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제안합니다.
성벽 공사에 공로가 있던, 없던 한 공동체임을 확인하며 서로 나누며 기뻐하자고 제안합니다.
그러자 텃새를 부리는 사람들도, 자기 공로를 내세우고 싶었던 사람들도, 원님 덕에 나팔 불고 싶었던 사람들도 잠잠해 졌습니다.
그리고 나서 초막을 지으러 갑니다.
함께 초막을 짓고 함께 그곳에 거하며 함께 먹고 마십니다.
시간 나는대로 그저 성경을 낭독하기만 합니다.

대단한 지혜와 리더쉽입니다.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가르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억울한 생각이나 손해 보았다고 하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그저 성경을 읽었습니다.
말씀이 살아서 움직이도록 도왔습니다.
함께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였습니다.
공동체성의 회복!!!

이 과정을 통해서 느혜미야는 온 백성의 회개를 이끌어내고 충성에 대한 선언식을 이루어냅니다.
교회 안에 입술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들고 교회를 떠납니다.
오래 다닌 중직자일수록 더 입술을 조심하고, 더 겸손히, 더 넉넉한 사랑으로 섬기며 살 때, 교회에서 떠나는 자들이 줄어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중 온 사람도, 공로가 전혀 없는 사람도 다 하나님의 자녀요, 내식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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