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이 세 번 반 바뀌었는데...
강산이 세 번 반 바뀌었는데...
  • 민돈원
  • 승인 2016.04.02 14: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목사가 되기 오래전 벌써 지금부터 36년 전 공기업 신입사원 티를 막 벗어났을 때 있었던 일이니 시쳇말로 강산이 3번 반이 바뀐 셈이다.

그 당시 사회는 어수선하긴 했지만 부정부패를 일소한다는 차원에서 이른바 사정의 칼을 들이대던 서정쇄신이란 조치로 주로 간부급들이나 일선 업자들과 밀착관계에 있던 선배 직원들이 추풍낙엽 신세(권고사직 내지는 파면조치))를 당해 회사를 떠난 것을 직접 목도했다. 나도 그 때 업자들과 접하는 실무 부서였기에 늘 업자들이 건네는 지금의 1-2만원 든 봉투를 으레 거부하지만 않으면 쉽지 않게 얼마든지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입사 초년생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그런 청탁성 뇌물을 받지 않으리라는 단호한 원칙이 그 젊은 나이에도 있었다.
내 봉급이 그 당시 10만원이었다.하루에 한건만 업자들과 만나 돈을 받는 맛에 길들여졌다면 어림잡아 한 달 월급에 서 너 배 챙기는 것은 따 놓은 당상이나 다름없었다.그러나 나는 그것을 거부했던 당시의 젊은 날의 초상에 대해 지금 생각해 보니 마음 한 켠 부듯하다.
오랜 세월이 흘러 목사가 되었다. 그리고 심심치 않게 사회정치판의 식상한 이야기를 목회 현장, 아니 그래도 리더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분들로부터 크게 다를 바 없을 만큼의 소식을 접하게 된다. 더욱이 감리교회 선거철이 다가올 때마다 이런 소식들의 원치도 않은 말을 주위에서 듣고 보노라면 마음이 편치 못해 수십 년 전으로 내가 몸담고 있는 감리교회가 전락하는 듯하여 의분이 치밀어 옴을 감출 수 없는 게 사실이다.

그런가하면 성도들 또한 마찬가지로 목사를 난처하게 할 때가 있는데 연말 연초가 되어 기부금 영수증 발부할 때이다. 헌금한 분들이야 당연히 발부하지만 문제는 교회 헌금도 하지 않은 가족이나 친지 누군가의 이름으로 떼 달라고 억지를 부릴 때면 그렇게 할 수 없는 근거를 조목조목 설명해 드린다. 그래도 막무가내인 분들이 종종 있다. 심지어 교회 안 나오겠다고 으름장 놓는 분들도 접해 보았다. 이런 것부터 교회가 앞장서지 못하면 사회에 할 말이 없다.
돌이켜보건대 그토록 혹독하고 앞뒤가 막혔다고 회상하는 36년 전 독재 정권 때도 이미 버렸던 쓰레기만도 못한 일을 이제야 교회는 주섬주섬 미련이 남아 줍고 있는 격이니 시대착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럴 때마다 묻는 질문이 있다. 목사로서 사는 것이 무엇이 부족하기에 그럴까? 목사보다 더 높아지려는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복음이면 전부인 것 같은데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여 그렇게도 욕망의 노예가 되어 마치 권력을 쟁취해 보려고 몇 번의 낙선의 고배를 마시고도 절차탁마(切磋琢磨)라기보다는 절치부심(切齒腐心)에 가까운 심정으로 남에게 돋보이는 자리 오르려고 하는지 목사가 되도 역시 이런 것에는 결코 자유롭지 못하는가 보다.

목적을 위해 방법과 수단이 좋으면야 그래도 낫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기에 하는 말이다. 목사의 자존감과 품위는 이런 것들에서 풍겨 나지 않는다는 것쯤은 모를 리 없다. 이에 크게 관여하고 싶지 않지만 문제는 그런 분들이 ‘내가 리더다, 나를 따르라’라고 자처하여 정책을 펴 나가기 때문에 두고만 볼 일도 아니다.

가장 좋은 선생은 말로나 지식에 앞서 본을 보일 수 있어야 하고 말에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그 점에서 목사라는 호칭 외에 더 이상 덧붙여지지 않고도 그 호칭이 너무 성스러워 아무나 범접할 수 없을 정도의 존경 받는 목사로서의 한 평생이면 족할 것 같다.

이게 안 되기에 그런 것으로 의심되는 목사 외에 무슨 알 수도 없고 검증된 바도 없는 직함이 그렇게도 많은지 포장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아마도 모든 교회 성도들이 바라는 자신이 소속한 교회 목사님은 성도수와 재력을 통해 목사의 지위 확보가 아닌 목사님을 통한 성도 자신의 삶의 가치와 의미의 진정성과 변화된 자신을 발견해줄 수 있는 그런 목사님과의 만남, 이로써 동시대 역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그런 신앙의 힘을 가진 목사님이 아닐까? 최근 목회 현장을 보면서 이런 마음이 더욱 절절하다.

누구이기 이전에 나 또한 그런 목사이길 원하여 부단히 인생 공사중이고 나아가 그런 감리회 존경하는 리더 보기 원하는 마음 간절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