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가인
살아 있는 가인
  • 이구영
  • 승인 2016.03.25 07: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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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인이라는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의 아들 가인!
아담과 하와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는 예배에 실패한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예배는 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일입니다. 예배는 단순히 설교를 듣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전능하신 하나님, 엄위하신 하나님,
우리들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와 나 자신을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 온 맘과 힘을 다해서 찬양을 드립니다. 입도 크게 벌려가면서 마치 음악선생님 앞에서 시험을 보는 것 이상으로 열정적으로 찬양을 드립니다.
- 내 시간의 주인이시오 내 생명이 주인이신 하나님께 한주간의 생명을 허락하심을 감사하고, 한 주간의 삶을 인도하심을 감사하며 시간을 드립니다. 깨끗한 옷을 입고 단정한 옷을 입고 와서 예배를 드립니다.
- 기도를 드립니다.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소원을 응답해 주시기를, 이런 저런 감사의 제목을 담아서 기도를 드립니다.
- 또 예물도 정성껏 드립니다. 죄를 용서해주심을 믿고 감사하며 속죄예물을 드립니다. 감사의 제목이 생각나는 분들은 감사예물을 드립니다. 소산이 있었던 분들은 또 십일조예물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모든 소유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고, 내 직장과 내 경제생활화 사회생활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되고 진행되고 있음을 감사하며 모든 예물을 드립니다. 이렇게 우리가 예물을 드리고 마음과 정성을 드리면 모든 것을 받으신 하나님께서 용서를 선포해주시고, 축복을 선포해 주십니다. 설교가 예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는 하지만 예배와 설교가 같은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 그 말씀을 들은 우리들은 늘 아멘 아멘으로 화답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 그런데 언제부터 인가 우리는 가인과 같이 예배를 소홀히 여기고, 사람들이나 만나러 오는 것처럼 착각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예배는 내가 마음먹고 준비하면 얼마든지 잘 드릴 수 있는데 늘 형편없이 제일 소홀하게 여기는 것 같아서 너무 속상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잘 드리라고, 바로 드리라고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지만 우리들은 너무 관심이 없는 것 같아서 참 아쉬움이 많습니다. .
가인은 믿음 없는 예배를 드립니다.
. 주신분이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 축복하실 하나님을 향한 기대와 신뢰도 없었습니다.
.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도 없었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말씀대로 예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첫 것을 드리지도 않았고, 성심껏 드리지도 않았고, 회개도 없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물론 그런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아 주실 리가 없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창 4:3-5)
“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

여기서 참 놀라운 사실 하나를 보게 됩니다.
자신의 예배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저는 이게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자신의 예배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아벨의 예배만 받으신 것이 어디 분노할 일입니까?
누구를 향하여 분노하는 거예요? 내 예배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 회개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될 인간이 감히 하나님을 향하여 분노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인간은 어리석고 어리석습니다. 그래서 망합니다. 대화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와를 유혹해서 에덴동산을 잃어버리게 만든 마귀는 이제 가인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죄를 바로보지 못하게 합니다. 죄를 인정하지 못하게 하고, 억울한 감정, 서운한 감정, 분노의 감정을 집어넣었습니다. 가인이 그 때에라도 정신을 차리고 ‘아! 우리 엄마 아빠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후에 회개하지 못해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셨는데 나도 이러면 안되지!’ 하고 정신 차리고 당장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잘못된 예배를 드린 죄를 회개했더라면 가인은 충분히 잘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인은 회개해야 할 때 회개하지 못하고 오히려 분노했습니다.
그러자 마귀는 가인은 더 세차게 몰아붙였습니다. 절망감에, 자존심이 상해서, 열등감이 생겨서,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패배감에 젖어있는 가인에게 폭력과 살인의 충동을 일으킵니다.

악은 점점 커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마귀는 우리의 약점을 한번 잡으면 절대로 놓지 않습니다.
결국 가인은 시기심을 미움과 증오로 발전시킵니다.
죄를 다스리지 못하고 문 앞에서 두드리는 죄의 소리에 문을 열어주고 맙니다.
이것을 성경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창 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결국 아우 아벨이 들에 있을 때에 그의 아우 아벨을 쳐 죽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다시한번 가인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리고는 물으십니다.
마치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과 하와에서 회개의 기회를 주시느라고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있느냐! 물으셨던 것처럼 또 한번 가인에게 물으십니다. (창 4:8-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회개는 아무 때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타이밍이 있습니다.
회개의 타이밍을 놓치면 그의 죄는 그렇게 묻혀 버리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숨길 수 없이 다 드러나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결국 가인은 회개하지 못하고 죄에 죄를 더하게 되었고, 그의 부모인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듯이 또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있는 세상에서도 또 추방당하고 저주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삶에는 쉼과 안식, 평안이 없어졌습니다. (창 4:12)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또 자신 후손에게도 큰 죄를 물려주게 되고 자손들도 다 죄를 지으며 살게 됩니다. (창 4:23-24)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어느 날 문득 나 자신을 열어보면 내 안에 가인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 예배의 실패자 가인과 나!
- 시기심을 분노와 저주로 발전시키고 있는 가인과 나!
- 회개가 없는 가인과 나!
- 죄에 죄를 더하고 있는 가인과 나!
- 자녀들에게 죄를 물려주고 힘듬과 고통의 지옥은 물려주면서 천국을 소개하지 못하는 가인과 나!

죽은 줄 알았던 가인이 살아 있습니다.
바로 내 안에!!!
회개만이 살 길입니다...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요일 1:8-10)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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