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하나님의 탄식!
왕따 하나님의 탄식!
  • 이구영
  • 승인 2016.03.18 07: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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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관심이라는 단어를 묵상하다가 성경에는 관심이라는 단어가 몇 번이나 나오는가가 궁금해서 찾아보았습니다. 딱 3번 나옵니다.
= 첫 번째 이야기는 모세가 바로 앞에서 10가지 재앙을 보여주며 이스라엘 사람들을 인도할 때 나옵니다.
10가지 재앙중에 첫 재앙은 물이 피가 되게 하는 재앙이었습니다.
애굽이라는 나라의 젖줄인 나일강이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피로 변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애굽의 마술사들도 주술을 부려서 일부 나일강의 물을 붉게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바로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모세가 당당하게 나와서 내가 믿는 하나님, 나를 인도하시고 지휘하시는 하나님이 참 대단한 것처럼 이야기 하지만 사실은 별거 아니구나! 내 주술사들도 저 정도는 할 수 있구나! 하는 착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출 7:23] 바로가 돌이켜 궁으로 들어가고 그 일에 관심을 가지지도 아니하였고
당장 그런대로 견딜만 하니까 바로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처음에 대단한 징벌을 내리지 않으십니다.
그냥 징조만 잠깐 보여주십니다. 그러다가 서서히 강도를 높이십니다.
처음에 깨닫고 돌아오면 수지 맞는 것이고, 늦어질수록 본인에게 손해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도 두지 않았던 바로왕!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국 바로는 자기의 후계자인 왕자가 죽게 되었고, 수 많은 농토가 황페화 되게 되었고, 수 많은 가축이 죽었습니다. 급기야 자신의 신하들에게서부터 이제 애굽은 망했다고 이제 애굽은 망했다고 하는 탄식을 듣게 되었었습니다.
모세가 처음 이야기 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 관심이라는 단어에 대한 두 번째 이야기는 욥기에 나옵니다.
엘리후라는 사람과 욥의 대화가운데 엘리후가 이런 말을 합니다.
[욥 33:14]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사람은 관심이 없도다
참 마음에 와 닿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너무 많으셔서 이런 저런 말씀을 해 주시면서 바르게 살도록, 거룩하고 성결하게 살도록,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도록 이끄시는데 사람들은 관심도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가만히 묵상해보면 오늘날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번 말씀하시고 두 번 말씀하시고 다시 또 말씀하시건만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잘 사는데, 잘 노는데, 잘 먹는데만 관심이 있는 것 같아 아쉬울 때가 너무 많이 있습니다.

최근 사람들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니까 참 다양한 곳에 사람들의 관심이 있었습니다.
-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천재기사 이세돌 9단과 구글에서 만든 컴퓨터 바둑기사 알파고와의 한판승부에 모든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 대회를 위해서 구글은 11억원을 우승상금으로 내 걸었고, 구글의 회장까지 방한을 할 정도입니다.
-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관심은 이번 리오올림픽에 누가 국가대표로 뽑히느냐에도 관심이 있고
-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누가 총선 후보가 될 것이냐? 누가 뽑히느냐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 주식이나 부동산 등 돈에 대한 관심도 많고
- 아파트시세나 전세값의 변동등 자산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 연예인이나 스포츠스타에 대한 관심
- 누가 돈이 많은 사람이냐에 대한 관심!
- 자녀교육에 대한 관심
- 옷이나 가방 혹은 자동차에 대한 관심!
- 외모와 화장기술, 건강과 체형, 내가 앓고 있는 병이나 노후대책에 대한 관심!
- 음식 만드는 것이나 맛 집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많고
- 여행이나 애완견등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우리들의 관심이 세상에 너무 치우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뜻, 사명이라거나 사랑함, 혹은 구제와 선교에도 집중되었으면 좋겠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셔도 여전히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뜻에는 관심이 없어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또 왕따를 당하시게 됩니다.

= 관심이라는 단어에 대한 세 번째 이야기는 구약성경 이사야서에 나옵니다.
역시 하나님의 탄식부분입니다.
[사 5:12]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피리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보지 아니하는도다
잊혀져 가시는 하나님의 탄식입니다.
관심밖으로 밀려나시는 하나님!
왕따 당하시는 하나님의 탄식입니다.
마치 자식들에게 잊혀져가는 부모님들의 탄식처럼, 후배들에게 잊혀져가는 원로들의 탄식처럼 그렇게 참 서글프게 들려지는 쓸쓸한 음성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다시 한번 찾아보았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어디에 있으셨을까?
성령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는 경건하고 거룩한 그리스도인들의 관심은 어디에 있었을까?
물론 여러 가지 답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낮아짐임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내려오신 이야기.. 낮아짐입니다.
-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마리아의 몸을 빌어 태어나실 때도 말구유에 오십니다.
- 예수님의 탄생을 처음 알게 된 사람들도 그 당시 매우 천하게 여기어지던 목동들이었고,
- 예수님 당신도 그리 인정받지 못하고 천대받던 목수라는 직업을 가지셨었습니다.
- 당시 최고의 도시인 예루살렘이나 사마리아에서 살지 못하시고 나사렛이라는 아주 천대받던
촌동네에서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사시던 분이 예수님이셨습니다.
- 제자들을 선택하실때도 교양과 실력과 재력을 갖춘 잘 나가던 사람들이 아니라 어부와 세리등 낮은
자의 자리에서 살던 사람들을 택하셨습니다.
- 가르치심 속에서도 늘 당시 낮은자들의 상징이었던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들, 여성들, 어린이들에게 관심이 많으셨고
- 장애인이나 귀신들린 사람들, 병자들, 외로운 사람들, 소외와 멸시천대속에 살던 사람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 당시 지도자층에 속하였던 사두개인이나 바리새인, 제사장 그룹과는 긴장과 적대관계를 유지 하셨었지만 낮은자의 자리에서 살던 나사로가족, 막달라 마리아등 많은 사람들과는 친구처럼 지내셨습니다.
- 최후의 만찬도 일류 호텔이 아니라 평범하게 사는 중산층 시민의 다락방이었고,
- 돌아가심도 낮아짐의 상징인 십자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고 보면 예수님의 생애는 낮은 곳을 향한 도전이었고 몸부림이셨음을 느끼게 됩니다.

오늘 나의 관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을 왕따 시키고 또 다른 곳으로 몰려가고 있지는 않은지 고난주간에 다시 한번 되돌아 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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