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잔 하시겠어요?
차 한잔 하시겠어요?
  • 신상균
  • 승인 2016.03.23 08: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산골교회의 시골목사 이야기 2016년 3월 23일

“장로님 1시 20분입니다. 1시 20분까지 제 사무실로 오시기 바랍니다. 차 값은 제가 낼테니 꼭 오시기 바랍니다.”

나는 반 강제적으로 장로님들에게 말했다. 다행히 장로님들은 매주 1시 20분까지 내 사무실로 오시기 시작했다.

어느덧 이곳에서 목회한지 14년이 지났다. 교회는 부흥했고, 그 만큼 나는 바빠지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만나서 차 한잔 할 여유도 없었다. 예전 같으면 예배가 시작되기 전 교회를 돌아다니면서 성도들과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이것 저것 살펴보기도 했는데, 어느날부터인가 목양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게다가 항상 토요일 밤 늦게까지 설교를 준비하다 보니 몸은 피곤했고, 주일 새벽부터 시작한 설교와 또 진행해야 할 모든 일들은 잠시나마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도 허용치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장로님은 물론 성도들과 그저 악수하는 것 이외에는 교제의 시간을 나눌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갑자기 내가 너무 멀리 온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의 생각을 몰라주는 성도들이 야속했고, 장로님들이 못내 서운하기도 했다. 갑자기 외로움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지내온 세월들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물론 성도들은 나를 사랑해 주었고, 기도해 주었고, 잘 따라 주었지만, 이상하게도 나 혼자 경기장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러던 중 좋은 생각이 떠 올랐다.

“ 차 한 잔 하시겠어요?”

나는 교회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회자들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
“밥 먹어. 밥 먹으면 돼.”

사람이 친해지기 위해서는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목욕을 하면 된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늘 밥 먹으라고, 목사가 먹사라고 했는데, 정작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밥도 아니 차도 먹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결심을 했다. 아무리 바빠도 차 한잔은 해야 하겠다고.

그리고 장로님들에게 말한 후 매주 1시 20분부터 2시 예배전까지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특별한 이슈도 없다. 교회 문제를 상의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함께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다. 그런데 믿음이 흐른다. 그런데 정이 흐른다.

목회란 결국 성도들과 하나 되는 것 아닐까? 바쁘다는 핑계로 집안을 돌보지 않는 가장처럼, 목사도 바쁘다는 핑계로 성도들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닐까?

성도가 멀어졌다고 느낄 때, 장로님들에게 섭섭하다고 느낄 때, 혼자서 목회한다고 느낄 때,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 차 한잔 하시겠어요?”

아마 성도님들은 아무리 바빠도 꼭 차를 마실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