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과 느혜미야
요셉과 느혜미야
  • 이구영
  • 승인 2016.02.05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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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보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부담감 때문에 힘든 세월을 보낸 사람들이 있습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 같은 사람!
그는 형들이나 동생 베냐민의 경제적 형편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았습니다. 그는 아버지 야곱과 함께 살고 있는 식솔들의 삶이, 자기보다 많이 못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무시하고 그냥 살려고 해도 자꾸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차라리 부담감이 없었다면 편했을 것을 자꾸만 형수님들을 보면 미안하고, 아버지를 쳐다보면 죄송스러웠습니다. 형편 되는대로 도와드리기는 했지만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형들도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그동안은 아버지가 함께 살아계셔서 요셉 동생이 도와주었지만 이제 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 나니 넉넉지 않은 살림에 자녀들과 함께 살아가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미안해서 동생에도 도와달라고도 못합니다. 그럴 즈음에 요셉이 먼저 말을 꺼냅니다. 걱정하지 마시라고! 형편 되는대로 최선을 다해서 형님들과 조카들을 살펴드리겠다고. 이 이야기를 성경은 이렇게 전합니다.
[창 50:21]
“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저는 이 부분을 읽을 때 마다 참 부담스럽습니다.
요셉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많은 식솔들을 먹여 살리느라 얼마나 불철주야 일을 하며 살았을까? 그래도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마음이 불편해서 내가 못 살겠기에 그렇게 힘들게 살 수 밖에 없었던 요셉! 그들과 함께 죽고, 함께 살고 싶은 거룩한 부담감!!

느혜미야라는 사람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아주 위대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는 지금부터 2500년 전에 살던 사람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이 나라 저 나라에 점령당해서 많은 사람들이 포로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포로로 끌려갔다가 몇 년만에 돌아온 사람도 있었지만 포로로 끌려간 땅에서 정착을 해서 나름대로 힘겨운 삶을 이어가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소외되고, 경제적으로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하며 이방인으로 살아가던 때 느혜미야는 크신 하나님의 은혜와 탁월한 실력덕분에 나라의 관료가 되어 살았습니다. 그것도 보통 직책이 아니라 요즘으로 하면 국정원장이나 대통령비서실장 정도 되는 막강한 파워를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한 가지 마음에 큰 부담이 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조상들의 고향이요 자신의 고향인 예루살렘에 대한 그리움입니다. 특히 어느 날 예루살렘을 다녀온 그의 친동생 하나니 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돌아간 5만 여명의 귀환자들과 그곳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은 물론 정치적으로 너무 약자이기 때문에 그 지방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고 살고 있고, 하나님 임재의 상징인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이 불타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짐승을 막아낼 수도 없고, 도적을 막아낼 수도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떠나버려 폐허로 남아 있는 예루살렘 성!

지금 느혜미야는 엄청난 권세와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 것 그냥 모른 척 하면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부담이 되었습니다.
왠지 그곳에 가야 할 것 같고, 그곳에서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야 할 것 같고, 비록 힘들도 돈도 들고, 많은 대적들 사이에서 마음 아플 일도 많겠지만 그래도 내가 꼭 해야 할 것 같은 거룩한 부담감이 자꾸만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일단 기도를 시작합니다. 무릎을 꿇고 적어도 100일 이상 기도를 하게 됩니다.
때로는 금식기도도 드렸습니다. 때로는 자신과 자신의 동족들과 조상들이 저지른 죄를 회개하는 회개의 기도도 드렸습니다.
그리고 때가 차서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그는 왕에게 자신이 예루살렘에 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재원과 물자를 공급받아 드디어 3개월이라는 긴 기간을 여행하며 예루살렘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랬더니 예루살렘의 기득권 계층들이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어느 정도의 세력을 형성하며 깡패짓하며 살던 사람들이 느혜미야를 모함하고, 암살을 시도하고, 험담을 하며 다녔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협력자일줄 알았던 예루살렘 주민들은 패배 의식 속에 빠져 있었고, 일부 부유한 사람들은 동족들에게 고리대금업을 하면서 부유함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내부적으로 하나 되지 않는 백성들과 외부의 적들!
부족한 노동력과 기술과 장비들 그리고 원수들의 방해공작!

너무도 힘이 들어서 그만두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어떤 것도 느혜미야의 가슴속에 있는 거룩한 부담감을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꼐서 우리와 함꼐 하시고, 하나님께서 이 일을 기뻐하심을 설명하며 백성들을 설득합니다.
부족한 재원의 확충을 위해 아닥사스다 왕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외부의 대적들을 이기기 위해서 한손에는 칼을 잡고 한 손에는 연장을 잡고 성벽재건 공사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52일 동안 그들은 엄청난 공사를 마쳤습니다.
무엇이 느혜미야의 마음에 엄청난 불을 질렀을까요?
거룩한 부담감!

예수님께서 왜 이 세상에 내려오십니까? 그 하늘의 모든 영광과 권세와 안락함을 뒤로하시고 왜 안 내려오셔도 되는 이 세상에 추잡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십니까? 천사들과 함께 하늘에 사셔야 하는 분이 왜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약함과, 아픔과, 배고픔과, 힘듬을 경험하십니까?
당신의 자녀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죄 가운데 살다가 죄와 함께 죽어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마음아파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큰 부담을 느끼십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의 아픈 마음이, 아들 된 예수님에게 큰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신이신 그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천국에 이르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주십니다. 율법을 지킴으로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여십니다.
방황하고 고민하며 불안해 하는 이들에게,
죄와 벌로 인해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진리와 생명의 길을 소개해주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길을 가르쳐주시고, 용서와 화해의 길을 가르쳐주십니다.
성경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사 53:5]
“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

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십니까? 거룩한 부담감입니다. 당신이 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할 것 같지 않고, 당신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요, 당신만이 가실 수 있는 길임을 알기에 그 구원의 길, 그 생명의 길, 그 외로움과 아픔과 모욕의 길을 선택하시는 예수님!

이 거룩한 부담감을 혹자는 사명이라고도 표현합니다.
사명감!
거룩한 부담감!
하나님께로부터 온 막중한 임무!
오늘도 하나님을 생각하며 내게 주신 거룩한 부담감이 무엇인가를 묵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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