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세례와 불세례
물세례와 불세례
  • 이구영
  • 승인 2014.09.26 0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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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식민통치에 시달리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잊어버렸던 하나의 단어를 떠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도’라는 단어입니다. 구약성경에 예언되어 있던 단어이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늘로부터 보내신다는 구원자이었습니다.
백성들은 제발 어서 속히 ‘그리스도’가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3장 15절에는 백성들이 바로 그 ‘그리스도’를 바라고 기다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던 중에 세례 요한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세례요한은 먹는 것과 입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고, 그의 외침은 너무나 시원했고 통쾌했습니다.
자신들을 괴롭히던 세리들과 군인들을 향하여 돌직구를 날려주었고, 바리새인들과 헤롯왕에게까지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세례를 베풀기 까지 하며 상쾌함을 주는 새로운 부흥사 세례요한에게 몰려들었고 그의 외침을 들으며 속으로 내심 기대를 하며 다가와 물었습니다. 혹시 당신이 구약성경에 예언해 놓으신 바로 그 ‘그리스도’가 아니시냐고!

그때 세례요한은 오실 그분을 소개하면서 여러 가지 표현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내 뒤에 곧 오실 바로 그 그리스도는 여러분에게 불세례를 주실 것입니다
- 나는 그분의 종에도 미치지 못할 사람입니다
- 나는 그분에 비하면 너무 능력이 모자라는 사람입니다
- 나는 이렇게 설교만 하지만 그분은 말씀뿐 아니라 심판도 행하실 분이십니다
세례요한은 이런 일련의 소개를 하고는 무대 밖으로 사라졌고 드디어 ‘그리스도’ 이신 예수님께서 등장하시게 됩니다.
그리고 그분은 세례 요한의 외침처럼 불세례를 주셨고, 능력을 행하사 많은 병든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도살리셨고, 세례요한 보다도 더 상쾌하고 통쾌하게 죄인들을 혼내주셨고, 명쾌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주셨습니다.

특히 그분의 불세례는 많은 이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이 행했던 물세례는 신분의 변화에 대한 공식적인 선언적 의미가 강했습니다.
- 죄 가운데 살았음을 인정하며 이제는 죄와 단절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겠다고 하는 공식적인
선언식이 세례이었습니다.
- 내가 죄인이기에 내 죄를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는 증표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 새 사람이 되어 살겠다고 하는 자기 자신과의 약속이 세례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옛사람은 그대로 살아 있고, 욕심과 욕망과 허영과 헛된 자존심은 여전히 남아 있었고, 하나님의 뜻 보다는 내 주장이 여전히 우선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물은 씻는 기능을 하기 때문입니다.
물로 깨끗이 씻었지만 그냥 두면 여전히 때가 끼고, 녹이 슬고, 찌든 때 묵은 때가 덕지덕지 붙기에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물은 겉은 씻지만 속 까지 씻을 수는 없었습니다.
겉모양의 청결은 가능했지만 내부의 죄까지 씻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죄는 남아 있고 죄를 사랑하는 본성 또한 점점 더 강해졌습니다.

물세례를 받고도 죄를 반복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물은 결코 본질의 변화를 이루어 내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불은 태워버립니다. 욕심과 욕망도 허영심도 낮은 자존감과 헛된 자존심도 다 태워버립니다.
한번 불이 나면 흔적이 없어지고 본래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됩니다. 그 불이 강할수록 원형은 완전히 회복이 불가능해집니다. 집에 불이 나면 집안에 있던 집기들이 형제를 알아 볼 수 없게 되고, 특히 인형이나 장갑이나 작은 장난감들은 그 형체를 완전히 잃게 됩니다. 원형복귀가 불가능해집니다.

그래서 불세례가 필요합니다.
물세례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오셔서 내 안을 다 태워주셔야 합니다.
죄의 본성을, 그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자아와 이기심을 태워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새 사람도 되고 그 태워 없어진 자리에 새로운 성령의 사람이 태어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큰 산불이 나도 이듬해 봄이 되면 새순이 올라옵니다. 아주 싱싱한 것들이 올라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의 고백이 있고, 용서의 확신이 있고, 삶의 결단이 있을 때 그 사람은 불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물 가지고는 안 됩니다. 불로 태워버려 형체를 없애고 새로운 창조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외친 것입니다.
나는 겉만 청소해주지만 그분은 네 심장과 폐부까지도 완전히 태워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해 주실 것이다.
욕심에 이끌리는 옛사람이 아니라 성령에 이끌리는 새사람이 될 것임을 선포하였습니다.

불세례의 경험이 있으십니까? 아니면 아직도 물세례에 머물고 계십니까?
의지적 결단이나 감정만 가지고 새로운 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내 안에 있는 죄를 이길 만큼 그렇게 강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날마다 죽어야 했던 이유는 내가 죽어 완전히 태워지지 않고서는 하루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과 온전함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불을 던지로 오셨습니다.
내 안을 완전히 태워주실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창조해주실 것입니다.
이제 남은 일은,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례요한을 찾아가 물세례를 자원했던 것처럼, 예수 앞에 나아와 불세례를 자원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기도합니다.
주여 나를 태워주옵소서!
내 안의 온갖 더러운 육체의 소욕들을 태우시고 새롭게 성령의 열매가 맺히는 나로 창조하여 주시옵소서!

이 기도가 오늘 우리의 기도가 되기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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