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아버지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아버지
  • 이구영
  • 승인 2014.09.11 22: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책임감과 친근감
- 하나님과 아버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과 참 가깝게 지낸 사람 중에는 에녹이라거나 아브라함이라거나 모세, 다윗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분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높이며 존중히 여기고 사랑하셨던 분들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했고, 하나님의 별명을 지어 드릴 정도로 친숙했습니다. ‘여호와 이레’ 라거나 ‘여호와 닛시’라거나 여호와를 ‘목자’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표현하지는 않았습니다
구약성경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인도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허락하신 바로 그분을 부를 때 ‘여호와’ 라거나 ‘하나님’ 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아버지’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구약성경에 나와 있는 하나님은 나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보호해주시고, 책임져 주시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고, 건져주시고, 승리케 하시고, 평화를 주시고, 안전하게 살도록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풍성한 곡식을 주시고, 성과 민족을 든든히 지켜주시는 분이십니다.
나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 주시는 하나님!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것들로 내 삶을 예비하시고 채우시는 하나님!

그런데 신약성경에 오면서 그 의미가 약간 달라집니다.
제일 중요한 변화가 호칭의 변화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부르실 때 여호와라고 하지 않으시고, 그냥 ‘아버지’라고 하십니다.
구약에 등장하는 위인들이 모셨던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거룩하시고 완전하신 분이시라면 예수님께서 소개하시는 하나님은 그냥 아주 가깝고, 친하고 마음이 통하는 ‘아버지’이셨습니다.
위로자가 되시고, 내 사랑을 요구하시고, 나와 이야기하기 원하시는 가까이 계신 하나님!
그분을 예수님께서는 그냥 ‘아버지’라고 부르십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첫 표현은 구약성경이 아니라 신약 성경 마태복음 7장 21절입니다.
[마 7:21]
‘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
시기적으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처음 부르시는 부분은 12살 되던 유월절 기간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서였습니다. 누가복음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눅 2:49]
‘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

예수님께서는 간절한 기도 중에도 하나님을 ‘여호와’ 로 표현하지 않으시고 아버지라고 간결하게 부르십니다.
[마 26:39]
‘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

더 나아가서 마가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는 최고 친근감의 표현으로도 부르십니다
[막 14:36]
‘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

구약의 하나님이 ‘여호와’라는 전능자, 보호자, 책임감의 대명사처럼 들려진다면,
신약의 하나님은 ‘아버지’라는 친근감과 무언가 동질성이 느껴지는 분으로 묘사됩니다.

이러한 배경은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와 요한에게 이어집니다.
유독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 베드로와 요한만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벧전 1:2]
‘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
[요이 1:3]
‘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 ‘

또 다른 제자들과 달리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인 야고보 형제와 유다 형제가 이 표현을 사용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입니다.
[약 1:27]
‘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
[유 1:1]
‘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받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

물론 신약성경의 최고의 저자인 사도 바울은 너무 많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예수님과 같이 ‘아빠 아버지’ 라고 까지 최고의 친밀감을 붙여 고백합니다.
전능자 하나님이시지만, 보호자와 책임자 되시지만 그분은 또한 나의 마음을 잘 아시고, 내 앞길을 살피시고, 나의 위로자와 힘이시며, 내 효도가 필요하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 나 없으면 못 사시는 아버지!
- 나를 너무 사랑하시는 아버지!
- 늘 나의 사랑을 요구하시는 아버지! 이십니다.
[갈 1:1]
‘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
[롬 8:15]
‘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

신약성경에는 하나님 아버지라는 표현이 총 15번 나오는데 바울 목사님이 사용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만큼 바울 목사님에게는 하나님이 가까운 친근감과 하나됨, 동질성의 하나님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친근감의 하나님입니까 책임감의 하나님입니까?
아버지이십니까 하나님이십니까?
신약의 하나님이십니까 구약의 하나님이십니까?

구약을 넘어 신약으로! 책임감을 넘어 친근감으로!
하나님이 아빠가 되시면 참 좋겠습니다.
딸들이, 아들들이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가깝게 느끼고 그냥 부르기만 해도 좋은 바로 그 아빠!

언젠가 하나님을 그런 ‘아버지’로 고백하게 되는 날이 오게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