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뜨거운 날, 20대 여성분이 교회 마당으로 들어왔다. 필리핀 말(따갈로그)을 하고 있는데 여느 필리핀 사람들과는 달랐다. 얼굴과 느낌이 꼭 한국 사람 같았다. 귀로는 따갈로그를 듣고 있으면서도 한국어로 물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20대 여성분은 전혀 알아 듣지 못한는듯 했다. 외모는 한국사람과 같은데 필리핀사람이었다. 좀 더 부연하면 코피노였다. 나는 한인목회를 시작하진 채 두달이 안되었던 때였고, 코피노를 처음 만난 것이었다. 코피노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20대 여성분은 사람을 찾는 듯 하였다. 사진 한장과 한글로 적은 이름 쪽지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찾는다고 했다. 난감한 일이었다. 무슨 재주로 이름과 사진만 가지고 아버지를 찾을 수 있겠냐고 반문하였다. 20대 여성분은 한인교회를 찾아서 1시간 30분 정도 왔다고 하였다. 한인교회에서는 한국에 가서 연락 두절된 아버지를 찾을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왔다고 한다. 그녀는 아버지를 본적이 없단다. 단지 사진과 이름만 필리핀 어머니로부터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를 찾고 싶단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버지의 이름, 필리핀에서의 직업, 그녀가 알고 있는 것을 주섬주섬 듣고서는 인터넷 검색을 해 봤다. 사진은 상당히 오래전 사진이었다. 놀랍게도 검색이 되었다. 이름과 중년의 얼굴이 화면에 떠올랐다. 신기하고 놀라웠다. 분명 그녀의 아버지였을 것 같다. 하지만, 그녀에게 검색된 결과를 보여줄 수 없었다. 순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아버지는 검색만하면 나올 정도의 인물이었는데, 그녀가 찾게 된 후의 문제가 복잡하게 떠올랐다. 그래서 모르겠다! 하며 돌려보냈다.
과장된 코피노
누군지 모르겠으나 ‘필리핀에는 많은 코피노가 있는데 약 3만명 정도이다’라는 주장을 한 적이 있다. 충격적인 숫자이다. 코피노는 한국인 아버지, 필리핀 어머니 사이의 자녀를 말한다. 그러나 코피노라고 할 때 아버지가 없는 정확히 말하면 아버지가 떠나고 필리핀 어머니가 키우는 자녀이다. 결국 필리핀 어머니는 싱글맘이 된 것이다. 코피노가 3만명이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한 한국인 아버지가 그토록 많다는 것을 뜻한다. 부끄럽고 당황스런 숫자이다. 그러나 3만명은 과장된 숫자이다. 어디에도 그 비슷한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 필리핀에 코피노는 마닐라, 앙헬레스, 세부, 바기오, 다바오 등지에 다수가 있을 것으로 추산한다. 통계를 내기 위해 전수조사를 한 적은 없었다. 단지, 경험에 의해 불명확한 숫자만 떠돌아다닐 뿐이다.
코피노는 이용을 당하기도 한다. 후원을 얻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기도 하고, 아버지를 찾아주겠다고 하면서 접근하여 보상금을 나누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로 인해 코피노는 두 번, 세 번 고통과 상처를 떠 안을 수 있다.
코피노에 대한 오해
앙헬레스에는 많은 코피노가 있다.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는 한인 아버지, 필리핀 어머니의 가정도 많다. 그리고 아버지가 떠난 가정도 많다. 코피노에 대한 오해를 한 적이 있다. 코피노 어머니는 대부분 불명예스런 직업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부정적인 인식이 있었다. 분명, 그런 경우도 있다. 그러나 여러 코피노 어머니를 만나면서 오해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한인과의 사이에서 자녀를 낳게 된 것은 몇 가지 경우가 있다. 제일 많은 경우가 유학생이다. 한인 유학생과 살면서 자녀를 가지게 되자 갑자기 말도 없이 떠난 경우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가 생기자 감당이 안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필리핀 어머니는 갑자기 싱글맘이 되고 경제적 궁핍으로 인해 빈민으로 전락을 하게 된다. 또 다른 경우는 사업체를 가지고 있던 분들의 자녀이다. 현지처로 삼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귀국하게 되면서 이름도 남기지 않고 떠나버린다고 한다. 필리핀 어머니들이 알고 있는 것은 가장 흔한 성에 영어 이름뿐이다. 예를 들면, 스티븐 김. 이런 경우에도 남은 어머니는 빈민 싱글맘이 되어 생계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
다행인지. 필리핀 가족들과 친척들은 싱글맘이 된 어머니와 코피노를 가족으로 받아 돌봐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코피노는 필리핀 사람이 된다. 하지만 경제적인 위기는 해소가 되지 못한다. 위기의 가정이 되는 것이다.
동방아동센타
한인목회를 하면서 코피노를 돌본다고 하는 선교사, 단체를 만날 수 있었다. 열악하고 제한적인 상황에서 코피노를 위해 뭔가를 하는데 어려운 점이 많아 보였다. 후원이 필요한데 부정적인 인식이 많다고 하였다. 그리고 지속적이지 못하였다. 몇달 후에는 지원이 끊기거나 연락을 안 되는 경우가 있었다. 지속적이고 사심 없는 지원이 필요한 일로 여겨졌다. 2014년 여름, 한국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어느 날 한국으로부터 급한 연락이 왔다. 서로 다른 두 분으로 소개를 받고 연락을 했단다. 앙헬레스에 코피노아동센타가 있는데 도와줄 수 있겠냐는 것이다. 코피노아동센타의 이름은 동방아동센타였고, 한국의 동방사회복지회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현지에 사는 한인 이사를 구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동방사회복지회와 동방아동센타에 대해 알지를 못했다. 그리고 코피노에 대한 막연한 부정적인 생각이 있기도 하였었다. 그러나 소개한 분들이 있으니 찾아가 보았다. 동방아동센타는 시작한 몇 년 안 되었을 때였다. 2013년에 시작하였으니 일 년 남짓 될 때였다. 몇가지 어려운 점이 있어 현지 한인 이사를 필요로 하게 되었고, 한인목회자에게 연락이 온 것이다. 이것이 코피노사역이 발을 딛게 된 시작이 되었다.
필리핀 빈민아동과 코피노
동방아동센타는 코피노와 빈민아동을 돕기 위한 해외복지시설이다. 중심사역에는 코피노가 있고, 빈민아동을 같이 지원한다. 처음 동방아동센타에서 접한 코피노는 눈이 크고 얼굴이 희고 밝으며 똘똘해보였다. 나만 그렇게 본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코피노에 대한 인상이 그러하다고 한다. 무엇을 할수 있을까. 무엇을 도와야할까. 많은 생각이 필요하였다. 동방아동센타는 아동에 대해 교육, 장학, 보건, 영양의 직접적인 지원사업을 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가정환경개선사업과 싱글맘인 필리핀 어머니들의 직업교육을 시도하고 있었다. 동방에서 돌보는 아동은 100여명이다. 그중 코피노는 60여명이다. 유아부터 초등학생, 중고등학생, 30대 중반이 된 사람도 있다.
지금은 30대 초반이 된 코피노를 의대에서 공부하게 하도록 전적인 지원을 한 사례로 있다. 이 사례는 지금 다른 코피노와 빈민아동에게 모범사례가 되어 ‘나도 할 수 있다’는 도전이 되고 있다. 동방아동센타의 아동에게 꿈을 물으면, 몇년전만 해도 말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의사, 변호사, 경찰, 승무원, 가수, 요리사 등 다양해졌다. 잘 키운 한 사람이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한국어교육과 합창교실
동방아동센타에서는 이미 사역을 잘하고 있었다. 오랜 역사를 가진 동방사회복지회의 노하우가 녹아진 사역이었다. 코로나는 이러한 사역의 걸림돌이 되었다. 필리핀은 코로나에 대응하기 위해 100% 봉쇄를 하였다. 출입, 이동이 불가능하였다. 동방아동센타는 봉쇄 되었고, 어떠한 모임도 허용되지 않았다. 즉, 교육, 장학등의 지원은 불가능하였다. 그리고 위기에 놓인 것은 보건과 영양이었다. 그래서 코로나 기간에 한달에 두 차례 쌀과 식료품, 유아를 위한 음식과 의료품등을 공급하였다. 좋은 것을 공급하는 것보다 오랫동안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다행히, 코로나 기간을 잘 넘어갈 수 있었다.
코로나는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많은 한인이 앙헬레스를 떠났다. 도시는 공허해지고 막연해졌다. 이는 많은 자원봉사자가 사라졌다는 것을 뜻한다. 코로나가 정리되면서 동방아동센타는 빈민아동과 코피노를 다시 추스리는 일이 시작하였다. 그리고 빈민아동과 코피노는 코로나 기간을 지나면서 청소년이 되어 있었다. 한참을 성장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을 더욱 어두웠다. 말할수 없는 어두움과 그늘이 있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일단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였다. 2022년 11월. 코로나 봉쇄가 해제되면서 이제는 청소년이 된 이들을 모아 교실을 열었다. 한글, 전통문화, 합창교실 그리고,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어머니의 한국음식교실이다. 구해지는 자원봉사자에 맞춘 교실이었다. 성탄절 시즌이 될때까지 교실을 운영하였다. 목표가 없이 막연히 뭔가를 하는 것이었다.
한국 입양아들과의 만남
2023년 여름에 한국에 손님이 찾아왔다. 동방사회복지회의 입양가족으로 구성된 합창단이었다. 이들은 필리핀에서 코피노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같이 노래하면 지낸 3일 동안 친구가 되었다. 한국에서 온 합창단은 내년에 꼭 온다는 약속을 남기고 귀국하였다.
그리고 약속은 지켜져 2024년 2월에 콘서트를 열게 되었다. 한국에서 온 입양아 합창단과 빈민아동, 코피노 구성된 합창단이 함께 연주회를 한 것이다. 어설프지만 함께 희망을 만들어 나누는 뜻깊은 일이었다. 가장 감동을 받은 것은 필리핀 싱글맘이었다. 희망 없던 인생에 기쁨과 희망이 생긴 것이다. 코피노는 한국어로 자신을 소개하고 자신의 꿈에 대해 발표를 하였다. 필리핀 어머니들은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자기의 아들딸에 변화가 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한국어, 영어로 노래를 할때 눈물을 멈춰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가족을 떠났으나 자녀는 한국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필리핀에서는 한국어는 직장을 바꾸는 능력이 된다. 한국어를 하게 되면 연봉이 바뀌고 대우가 달라진다. 코피노가 한국어를 하게 되면 한국과 필리핀 사회의 다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경제, 문화 그리고 외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제 그 일이 시작된 것이다.
2024년 7월 코피노와 필리핀 빈민 청소년은 한국에 간다.
동방사회복지회 초청과 기업체 한국교회의 후원으로 코피노와 필리핀 빈민 청소년은 한국을 찾는다. 2024년 7월 15일부터 25일까지이다. 한국 입양아들과 함께 공연하고 한국교회와 기업체를 방문하며 놀랄 것이다. 한국의 거리와 문화를 보면서 K문화를 실감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인생의 소중한 경험과 자원이 될 것이다. 그 경험과 자원은 한국과 필리핀 사이에서 상상하지 못할 선한 영향력으로 꽃 피우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지 기대가 되는 것이다.
필리핀 앙헬레스 이스턴 합창단 한국 방문
- 기간 2024년 7월 15일 - 25일
- 인원 23명 (코피노, 빈민 청소년 19명, 인솔 5명)
- 주요활동
한국 이스턴합창단과 콘서트, 싱글맘 가족과의 캠프
한국교회 방문, 대학체험, 기업체 탐방, 문화체험
- 주관 동방사회복지회, 사단법인 이스턴인터네셔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