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군의식
아군의식
  • 이구영
  • 승인 2012.12.21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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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주적이 누구냐? 하는 문제로 시끄러운 적이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북한이 적군이라고 하고, 또 다른 편에서는 북한은 적군이 아니고 주적은 미국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누구와 싸우고 있습니까? 왜 군인이 필요하고, 왜 경찰이 필요합니까?

간첩들도 많이 있습니다. 북에서 온 간첩들도 있고 외국에서 산업스파이로 와서 아주 중요한 정보들을 빼내어 훔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나아가 더 무서운 것은 내부의 간첩들입니다. 원래는 친구이었는데, 아군이었는데 적군에 매수된 사람들입니다. 협박에 의한 것이든 보상에 의한 것이든 아군인데 적군의 노릇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모든 이들이 우리의 삶을 혼란케 하고 두려움과 불안속으로 끌어당깁니다.

믿음이 있는 증거 가운데 하나가 아군의식입니다.
동질성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고, 동료애 혹은 같은 편이라고 하는 정체성을 지닌 것을 말합니다.
성경적 표현으로라면 함께 죽고 함께 사는 사람들(고후 7:3)이라는 믿음입니다.

연말이 되니까 교회마다 직장마다 내년 새로운 임원을 뽑는데 신경을 많이 씁니다.
실력도 있어야 하고, 매너도 좋아야 하고, 가정환경도 생각하고, 평소의 품행이나 실적도 고려합니다. 십일조생활은 잘 하고 있나, 주일성수는 어느정도 하는가, 기도회에 참석하는 날은 몇일이나 되나, 온 가족이 다 교회에 나오는지 등을 꼼꼼히 살핍니다.
그런데 꼭 잊지 말하야 할 아주 중요한 기준 가운데 하나가 아군의식입니다. 건달들 말대로라면 의리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자신의 이익 앞에서 공동체를 배반하면 간첩이 됩니다. 하루 아침에 적군이 되어서 무서운 파괴능력을 발휘합니다. 아무리 온순하고 품행이 좋았던 사람도 매수가 되거나 협박을 받으면 적군이 되어서 아군에게 큰 폐해를 가져옵니다. 그러나 좀 모자람이 있어도 아군의식이 강한 사람들은 절대로 고의적인 해악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헤어짐이 잦은 시대는 이기적인 시대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시대입니다.
내가 강조되기에 공동체성이 무시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한 공간에 만들어 놓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홀로 일하지 않으시고 그 전능하신 분이 12명의 팀을 만들어 내십니다. 바울 목사님의 전도에도 늘 동행자들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그들 가운데 배신자들이 있었습니다. 가룟 유다가 그랬고, 데마가 그랬습니다. 그러나 11명의 제자들과 마가나 누가, 디모데 같은 사람들은 끝까지 아군의식을 가지며 함께 죽어간 사람들입니다.

아군의식이 있는 사람들은 포용성과 배려과 용서와 참음이 가능합니다. 같은 편이기에 그의 힘듬이 곧 나의 힘듬이 되고 그의 죽음이 곧 나의 죽음이 되고 그의 실패가 곧 나의 패망이 됨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장과 사원 모두에게 아군의식이 필요하듯, 교인들과 목사들 사이에, 그리고 임원들과 임원들 사이에는 경쟁의식(적군의식)보다는 아군의식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내가 죽으면 그도 죽습니다. 그래서 내가 더 열심히 살아야 하기도 합니다. 내 약함이 동료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이 연말에 내 주변에 아군이 있는가? 나는 또 누구의 아군인가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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