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지 않는 이유
기도하지 않는 이유
  • KMC뉴스
  • 승인 2012.10.26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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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도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가치를 아는 자만이 그 물건을 사고, 가치를 아는 자만이 그것을 소유하고 싶어합니다. 가치를 아는 자들이 그 일에 참여하고 가치를 모르는 이들은 철저하게 방관자나 비난자가 됩니다.공부의 가치를 알고, 보물의 가치를 알고, 그 사역의 가치를 아는 자들만이 취할 수 있습니다.
기도가 무엇인지 알면 기도를 하게 됩니다. 기도에 대한 정의는 여러 가지 있지만 제가 아는 한 가지 정의는 ‘살려내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살아납니다.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기도가 생명을 살립니다.
아브라함이 기도할 때 멸망하는 소돔과 고모라에서도 롯은 살아났습니다. 모세가 기도할 때에 전쟁에 임했던 여호수아 장군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의 손에서 살아났습니다. 사무엘이 기도를 쉬지 않을 때 블레셋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에스더가 기도할 때에 모르드개와 포로로 잡혀있던 많은 이스라엘 민족이 살아났습니다.
기도하면 살아납니다.
반대로, 엘리제사장이 기도하지 않을 때 이스라엘은 패배했고, 사울이 기도하지 않을 때 이스라엘의 운명을 기울었습니다. 기도하면 살아납니다. 교회도 학교도 가정도 국가도 이 지구촌도 기도하면 살아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살려내고 싶어하십니다. 단지 우리의 기도가 없을 뿐입니다.

2. 우리의 교만입니다.

인본주의의 맹점은 사람이 스스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물론 할 수 있는 일도 많지만 한계가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교만하다는 것은 하나님 없이도 내 스스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고 겸손하다는 것은 내 무지와 무능력과 연약함과 한계를 알아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고 그분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절대자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께 나아가 조아려 도움을 구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내가 다 할 수 있다고 하는 착각은 우리의 기도를 막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크심을 인정하며 나의 작음을 고백하는 사람은 저절로 기도하게 됩니다. 교만했던 사울은 기도하지 않았지만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다윗은 늘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3. 우리의 무관심입니다.

언제부터인가 기도제목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이만하면 됐다고 하는 자족에서 온 것은 물론 아닙니다. 감사에서 온 것도 아닙니다. 그냥 무관심해졌습니다. 내 가족의 문제나 교회나 이웃의 문제 뿐 아니라 내 문제에서 조차도 그냥 그렇게, 대강 대강, 적당히 하다 보니까 간절한 기도제목이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문제를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문제가 문제로 보이지 않으니 사고가 터집니다. 영적인 감각이 떨어지고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도 듣지 못합니다.
내 문제도 잘 모르는데 이웃의 문제나 교회의 문제, 하나님의 마음을 어찌 헤아리겠습니까?
기도제목도 서서히 없어져 갑니다. 그 많던 기도제목이 다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기도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교만도 있지만 어떤때는 철저한 무관심이 있습니다. 세상 살이를 바쁘게 하는 마귀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과 하챦은 것을 구분하지 못하게 합니다. 만나야 할 사람과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을 구분하지 못하게 합니다. 만나야 할 때와 만나지 말아야 할 때를 구분하지 못하게 합니다. 분별력이 떨어지면서 계속 바빠집니다. 바쁘다 보면 많은 일에 무관심해집니다. 이 무관심과 헛바쁨이 우리의 기도를 막고 있습니다.
사랑하며 살리며 살아야 할 우리들이 생명에도 관심이 없고, 천국에도 관심이 없고, 삶의 방향을 잃고 있습니다. 그러면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가을에 내가 채워야 할 기도의 자리가 비어있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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