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고 병들면 다 애달픈가?
늙고 병들면 다 애달픈가?
  • 민돈원
  • 승인 2017.01.14 1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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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가 들어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될 때 가장 힘들고 애달프고 고통스럽다고 여기는 것이 무엇일까? 예컨대 나이가 많아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에 대한 무료함?, 몸에 기력이 없어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거동할 수 없는 신세?, 늘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질병의 고통?, 가진 돈이 없어 지내야 하는 물질의 빈곤?, 배우지 못하고 살아온 것에 대한 한?, 자식이 없는 외로움?, 높은 벼슬자리에 한번 오르지 못하고 살아온 아쉬움?, 더 살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 등등...

아마 이런 것들이 전혀 없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나 꼭 그렇지만 않은 상대적인 요소들이라는 것을 지난 주간 4분-70대 한 분, 80대 세 분-들을 만나본 경험을 통해 내가 느낀 판단이다.

금년 84세라고 밝히신 원로목사님은 지방 목사님들이 모인 금년 신년하례식 초청 설교에서 연세에 비해서는 힘 있게 말씀 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육체의 강건함은 물론 정신적, 영적 관리를 잘 해 오신 분으로 비쳐졌다.

은퇴하신 이후에는 설교할 일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설교를 적고 계시다는 말씀 속에서 자기관리를 잘 하시는 분이기에 건강도 함께 유지하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두 분은 우리교회 연세드신 분들로서 병원에 입원하여 심방을 통해 또 다른 측면을 보았다. 두 분 모두 몸이 오랫동안 지병을 안고 살아온 몸이 편찮으신 분들이다.

각각 다른 병원에 입원해 계신 이 분들을 문병했다. 한 분은 평소에는 그렇게도 밝은 성도였는데 그날 심방했을 때는 첫 번째 심방과는 몹시 달랐다. 자녀들도 곁에 있지 못하는 분이었다. 어떤 일인지는 몰라도 식음도 전폐하고 한 마디 말씀도 않고 눈도 뜨지 않은 상태였다.

이에 교회로 돌아와서 이 사실을 수요예배. 새벽기도회 때도 성도들에게 알린 후 합심기도하면서 4일 후 다시 전화했더니 놀랍게도 전화통화로 그 성도님의 밝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다시 예전의 모습을 회복한 듯 보여 감사했다.

또 80 넘으신 성도님을 몇몇 분들과 함께 심방 갔더니 그 성도님도 그렇지만 따님들도 그렇게 내게 부담될 정도로 고마워했다. 그 성도님은 따님들이 집에 계실 때나 입원할 때나 극진히 잘 모시는 분이었다. 질병에다 연세 드신 것만으로 외로움은 아닌 것으로 비쳐진 가정이었다.

그리고 팔순을 맞으신 내 부모님 역시나 어머니의 경우 공항에서 제공한 휠체어를 자녀들 손에 이끌려 원하는 구경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 가지 감회가 깊은 한 주간이었다.

가족들에게 고마운 것은 그래도 가족 모임에 예배를 드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첫 날 저녁 시간에 우리 가족이 모이면 세상 여느 모임처럼 단순히 먹고 마시고 즐기는 시간으로 소비하지 말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함으로써 교회와 이 민족을 위해 섬기는 다음세대 자녀들로 키워야 할 사명이 우리세대에 있음을 증거 했다.

그러면서 연로하신 부모님을 잠시 생각해 보았다. 어둡고 가난하고 온 몸 희생하며 먹고사는 일과 대가족 시대를 지켜온 빈곤속의 빈곤을 살아온 우리 부모님 세대, 그 대가족의 후예들로서 대부분 사회 전반의 지도자층을 형성하고 있는 나를 비롯한 샌드위치라 할 수 있는 빈곤속의 풍요를 살고 있는 중간 연령층세대,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인 이른바 1-2명, 아니 1명의 자녀들, 이들에게는 풍요속의 풍요이지만 상대적 박탈감을 더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이 신세대들 모두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힘이 되고 우리 마음과 사회를 밝게 하는 희망이요 위대한 자원으로 여겨지는 세상이었으면 한다.

그리고 난 다음세대에 비쳐지는 이른바 샌드위치 세대인 기성세대로 인한 2-30년 후의 다음세대가 이 나라 요직에 주역이 되어 있을 모습은 어떤 나라가 되어 있을까 자못 궁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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