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는 문턱도 힘들다
어린아이는 문턱도 힘들다
  • 민돈원
  • 승인 2016.06.11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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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옛날 집들의 구조상 특징 중의 하나는 방마다 문턱이 높은 것을 들 수 있다. 게다가 문 높이도 낮아 방에서 방으로 이동하다 예사롭게 벌어지는 경험, 그것은 이마를 찍는 고통이었다.

애기가 걷기직전 타는 놀이기구중의 하나가 보행기이다. 대체로 돌이 되기 전까지 애기는 배로 기어 다니다 이어서 보행기를 발로 신나게 굴리며 이곳저곳을 이동한다. 문제는 옛날 집의 경우 문턱이 있는 곳은 어린아이에게는 고통이다. 그 문턱에 막혀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목회하면서 시골 전통적인 교회에서부터 서울 대도시 교회까지, 갓 개척한 교회에서부터 1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교회까지, 문턱 있는 오래된 낡은 사택에서부터 문턱 없이 현대식으로 잘 지어진 사택에 이르기까지 두루 교회를 거쳐 경험해 오고 있다. 그런 교회 사택에서 애기를 키워 보았다. 어린 아이 때는 이렇듯 걷기시작하면서 문턱도 넘기 힘들다. 잘못하면 그곳에 발 부리가 걸려 넘어지기 일쑤이다.

이제 아장아장 걷는 늦둥이가 걷기를 즐기기에 외출하여 신발을 신겨 걷게 했더니 몇 번을 넘어진지 모른다. 혼자 걷겠다고 하지만 불안하여 손을 잡으면 못내 뿌리친다. 그러자 혼자 걷는 데로 두었더니 조그만 장애물에도 걸려 넘어지고 만다.

마치 초보운전자의 특징과 같다. 사고의 위험성이 많다. 방어운전은 더더구나 안 된다. 그러나 운전이 숙련되면 자기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난폭 운전하는 자들에 대비한 방어 운전할 수 있는 실력이 된다. 경기하는 선수도 마찬가지이다. 세계적인 선수는 자기 기량이나 테크닉만 출중한데 그치지 않는다. 상대방의 반칙을 뛰어넘어 자신을 방어하고 나아가 심판의 오심까지도 극복할 수 있을 정도에 이르는 것을 본다. 왜냐하면 반칙이나 오심도 경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런 원리가 목회하면서 경험하는 현장에도 거의 비슷하게 들어맞는다. 성도들 중에는 어른이어도 보행이 어려운 돌 지나기 전의 어린아이 같은 신앙수준에 머물러 있는 이들도 있고 설사 걷는다손 치더라도 문턱을 넘기 힘들만큼 잘 넘어지는 이들도 보게 된다.

그러나 신앙이 자라서 성숙하게 되면 이런 저런 영적 돌부리 같은 장애물들에 걸려 넘어지던 단계를 능히 넘는 것은 물론 더 큰 벽도 스스로 넘을 수 있는 실력을 지닌다. 이런 과정을 잘 통과하면 비로소 좋은 일꾼이 되는 것을 본다.

흔히들 경제는 심리(心理)라고들 말한다. 어렵다고 저축만이 능사가 아니다. 어렵다고 여행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정작 못가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갈만한 사람은 다 간다. 경제는 의외로 심리가 많이 작용한다.

신앙생활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분위기이다. 어떤 분은 한때 아무리 예배 중요성을 이야기해도 자기 스타일을 고집하고 편한대로 하는 것을 보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새벽기도회에도 잘 나오는 것을 보게 된다. 내가 그 분에게 나오라고 한 두 번 지적한 것은 있다. 그러다 어느 예전에 없이 수요 밤 예배 나온 그분을 한번 칭찬 했을 뿐이다. 아마도 최근 어느 연세 드신 성도님이 새벽기도회 나오신 이후 그렇게도 아팠던 다리가 말끔히 나아 새벽에 나오신 이후 그 분의 좋은 자극을 받아서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권면을 잘 수용해서인지 모르나 이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도 예배 참여하기 힘든 분이었는데 최근 들어 모든 예배를 성실하게 드리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교회는 분위기를 무시하지 못한다. 교회가 잘 되려면 여러 구성요건이 있겠지만 앞서 언급한 교회분위기가운데 이런 것들이 아닌가 싶다. 예컨대 예배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예배에 나온다거나, 말하기가 두려우리만치 이런저런 핑계로 궁색하게 변명하던 사람이 더 이상 그 핑계가 사라지고 말없이 봉사한다거나, 목사가 말하지 않아도 교회 필요한 일들을 지명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남모르게 스스로 앞 다투어 알아서 하는 이들이 나타날 때 목사와 성도의 관계는 더 말할 나위 없이 행복해 하는 것을 보게 된다.

돌 지나기 전 어린아이에게는 문턱도 넘기 힘든 큰 장애물이라고 여겨 그 앞에서 징징 짜고 운다. 그러나 조금만 자라면 문제도 아니다. 도리어 그것을 넉넉하고도 기쁘게 넘고도 남는다. 마찬가지로 성숙하고 좋은 신앙이 되면 이런 저런 장애물들을 잘 넘을 뿐만 아니라 행복지수가 높은 사람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좋은 교회 나아가 행복한 교회 이상적인 교회란 반드시 사이즈가 아니라 내부 구성력과 목회자와 그 구성원 개개인의 높은 행복감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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