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면서 최후통첩
떠나면서 최후통첩
  • 민돈원
  • 승인 2016.02.06 21: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상을 살면서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사람을 만나든 흐뭇하고 보람 있는 일이 있는가 하면 지내놓고 보면 마음 한 켠에 연필로 쓴 지우개가 아닌 이상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후회스런 일들이나 어이없는 사람들이 중복되어 삶의 족적(足跡)으로 남는 기록들도 종종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한 무수한 일들 가운데 목회하는 만큼 다양한 사람들을 오랜 시간 만나는 경우가 그렇게 또 많이 있을까 보다!
회자정리(會者定離)란 말처럼 영원히 함께 하고 싶다고 원하는 사람이 마냥 내 곁에 있어주는 것은 아니다. 그런가 하면 생전에는 영원히 보지 않으리라 장담한다고 안보고 살 수 있는 건만도 아니다.

만남이 기쁨이요 행복인 사람이 있고, 반면에 만남이 도리어 아픔이요 불행인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또한 헤어짐이 자유요 평안인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반면에 같은 헤어짐이라도 아쉬움이요 슬픔인 사람이 있다는 양면성을 전제한다면 불특정 다수에게 주어지는 일들을 놓고 호 불호를 지나치게 단세포적으로 평가하기에는 무리한 면이 없지 않다.

특별히 목회자가 담임하는 목회 임지를 이동하는 경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예컨대 은퇴자 후임내지는 어느 교회에서 자신을 청빙하기에, 아니면 너무 오래 있다 보니 타성에 젖어 이제는 새로운 곳에 대한 도전정신 때문에, 목회자 자신이 젊고 자녀교육문제가 있기에 가능하면 농촌보다는 도시목회를 꿈꾸는 마음에서, 이와는 달리 실제 목회 현장에서 부인할 수 없는 목회자의 소신, 말하자면 목회자가 지닌 코드(cord)내지는 마인드(mind)와 기존 임원들과의 주장에서 지속 되 오던 엇박자로 인해, 간혹 교회내의 원치 않는 시비와 분쟁 때문에, 더러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실제로 현재 교회보다 더 조건이 나은 곳을 원하기 때문에, 그 외에도 건축문제 때문에, 목회자끼리 갈등 때문에 등 등 아마도 속사정을 조사해 본다면 헤아릴 수 없이 목회현장에 산적해 있는 문제들이 덮어 놓고 넘어가니 그렇지 실상은 천태만상으로 많으리라 짐작된다. 물론 한가지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가 중첩되어 이동하는 일 역시도 많을 것이라 본다.

결국 이런 저런 이유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더욱이 자녀에게 교회를 물려주는 시대가 지났으니 한 번 담임한 교회는 은퇴 전까지 불퇴전의 심정으로 영원한 교회라고 하는 시대만도 아닌 듯 싶다.

한편으로는 이전 우리 선배목사님들의 한 교회에서의 줄곧 30~40년 이상의 성역이 존경스럽기만 했다. 가히 인간의 힘만으로는 쉽지 않았으리라. 그런데 공직생활 하는 사람도 한 직장에 30~40년 다니다 퇴임하는 사람들도 꽤나 볼 수 있다.

하지만 오랜기간 목회하는 목회자들은 한 교회 안에서 출생에서 장례까지의 애경사를 적어도 3대~4대까지 그들의 영혼을 돌보고 책임 맡으니 실로 다른 공직생활과 비교할 바가 못 된다.

그러는 동안 목회자가 다른 임지로 교회를 이동할 때 가장 마음 아픈 것 중의 하나는 지금까지 교회 중요한 직책을 말없이 충성되게 맡고 있던 이들과 담임자의 목회 방침에 힘이 되고 잘 따르던 분들이 이동하는 목사님과 함께 떠나겠다면 이명 증서를 써 달라고 할 때이다.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임하는 목사의 입장에서는 한 사람의 미동도 없이 계속적으로 지금까지 섬겨 온 교회에서 변함없이 잘 해주기를 원하는 마음이 최고의 고맙고 좋은 선물인 것 같다.

바울이 목회를 잘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내가 보는 관점에서 바울을 해석한다면 적어도 성경에 제시하는 인물만 어림잡아 세어도 50여명의 충성된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롬16장에 36명 , 그 외 고전 16장 바울서신 등 종합)

나에게도 바울 주위의 그런 충성스런 사람 못지않게 목회 협력자인 부부를 비롯한 두자녀를 가진 가족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분들이 그렇게 결정하게 된 입장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이명증서 떼 줄 수 없고 안 된다고 단호히 거절했다. 그리고 지난주일 그들 부부와 약 4시간 가까이 마라톤협상을 했다. 아니 협상이라기보다는 간곡히 부탁했고 마음을 돌이키기를 권유했다. 왜냐하면 너무 완강할 만큼 본인들도 다른 교회로 옮겨 신앙생활을 하겠다고 가족회의에서 이미 결정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부인 집사님은 인계인수까지 다 해놓은 상태였고 주보장에 있는 부부이름까지 모두 떼서 지워버렸다. 지금까지 이들 부부 자녀들까지 한번도 ‘아니오’를 해 본 적이 없는 분들이기에 더욱 마음이 아팠다.

이들 부부가 이렇게 되기까지 직접적인 이유는 몇몇 중직을 맡은 임원이 중요한 이유였다. 그러나 내가 떠나니 그들 가족도 가겠다고 했으니 내 잘못도 피할 수가 없었다. 이에 지난 1월 마지막 주일 두 장로님과 함께 그들 부부와 장시간 대화를 나눈 후 확실한 답을 얻지 못한 채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사하는 날 일부러 우리 가족 셋은 부임하게 될 교회에서 오신 분들의 차편에 먼저 보내고 나는 그들 부부 중 남자 권사님이 그날 근무였지만 연가를 낼 수 있다고 하기에 부임하는 교회에 단 둘이서 같이 가자고 했다. 이유는 그 승용차 안에서 마지막 최후 통첩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승용차 안에서 약2시간 이런 저런 이야기중의 다시 마지막 부탁 “권사님, 우리가 서로 윈-윈 하는 길을 모색합시다. 떠나는 내 입장이나, 그곳에 부임하는 목사님이나 그리고 권사님 모두가 최상은 아니나 이후 후유증도 없는 결정을 해야 합니다. 주위사람들에게 괜한 오해의 미끼를 만들 필요 없습니다...” 라고 하면서 상식과 정과 의분을 가진 권사님이기에 오히려 그런 나의 이 부탁에 마지막 부임한 교회에 도착하여 식사 후 다시 그 권사님이 귀가하기 직전 예배당에서 그 주간 수요예배도 그리고 주일예배도 가족이 다시 나가기를 부탁 드리며 다짐을 받았다. 그랬더니 주일까지의 태도와는 달리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 소식을 전임지인 장로님에게 전화해서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 드리겠노라 했더니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리는 헤어졌다. 이후 곧 바로 전에 있던 교회 장로님에게 전화를 하여 교회에 이들 부부가 나올테니 염려 말라고 안심시켜 드렸다.

몇 일 사이 피 말리는 긴장된 시간이었다. 그 한 가족이 변함없이 그 교회를 섬기도록 했다는데 대해 안도의 한 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마지막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는데 대한 뿌듯함과 함께 더욱더 고마운 것은 결정에 따라 준 그 권사님이었다.

그러나 그 일이 있고난 이후 내 두 입술은 지금까지 과정이 얼마나 애가 탔는지에 대한 증거라도 해 주듯 부르터서 새로 부임한 첫 교인들 앞에 열꽃이 핀 얼굴을 보이기는 조금은 민망스럽고 당황스럽다.

이 구구절절한 내막을 아는 이라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처럼 자기의 목이라도 내 놓을만큼(롬16:4) 대변하겠건만, 그런 까닭을 알 리 없이 남겨진 내 얼굴에 그려진 상처들을 보게 될 그들의 선입견은 어떤 말들이 그들 각각의 일성(一聲)일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