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몸살 주님의 몸살
아이의 몸살 주님의 몸살
  • 민돈원
  • 승인 2016.01.30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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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중에 누군가가 몸이 아프면 당사자는 물론 모든 가족이 함께 몸 사리지 않고 돌보느라 더불어 몸살을 앓는다. 더욱이 말로 표현 못하는 어린 아이를 둔 부모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15년 만에 얻은 둘째 늦둥이가 2주전인 1.16일 첫돌을 지난 이후 지난 27일(수요일)부터 지금까지 그렇게도 잘 먹고 밝게 잘 놀기에 활동량이 왕성했던 아이였는데 39도~40도를 오르내리는 고열이 멈추지를 않는다. 그러기를 4일째이다. 목소리도 변했고 활동량도 대폭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하게 울거나 보채지는 않는다. 밥도 예전처럼 속도가 빠르진 않지만 그래도 주어진 분량 한 그릇씩은 먹는다.
대신 정상일 때 쉽게 자려 하지 않던 잠을 몸 컨디션 때문에 쉽게 잠이 드는 것은 평소와 달라진 점이다. 이런 저런 일로 입원까지는 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다.

병원에 데려갔더니 전문의의 진단도 바이러스 감염이란다. 열과 싸우면서 자라는 것이니 지켜보자는 식으로 크게 염려 하지 말란다. 하지만 조제한 약을 먹여도 소용없다. 또 다른 항생제 처방전에 따른 약을 먹이고 해열제등을 쓰고 있는데도 잠시 정상이 되었다가 다시 고열의 연속이다.

의학적으로는 바이러스 침입, 염증, 독감의 현상, 어린이가 자라면서 커가는 일환 등 이런 원인으로 규정한다. 그래서 약을 투여하는데도 낮이면 다소 나았다가도 저녁이면 열이 오르며 쉽게 진정이 되지 않는다.

이에 믿는 입장에서는 의학적인 진단을 넘어 공관복음서에 동일한 본문으로 등장하고 있는 주님께서 시몬의 장모 집에 들어가서 열병 앓던 그 여인의 열병을 꾸짖자 그 열병이 떠나고 여인이 일어나 주님을 섬겼다라고 기록된 말씀을 근거로 주님 이름 의지하여 믿음으로 꾸짖으며 기도에 의지했다. 그렇게 하면 아이가 금새 눈을 감고 잠이 든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1년 지나도록 둘째를 키우는 동안 이 정도로 심하게 앓는 일이 없던 어린 아이의 아픔을 보면서 몇 일 전에 일어난 일을 떠 올려본다.

그것은 이번 주 23일(화)아침 아내와 장남이 늑장 부리다 제 시간에 가야 할 곳을 가지 못하고 뒤늦게 가는 일이 있었다. 이를 두고 그들에게 호되게 나무랬던 잘못이 자책이 되어 떠올랐다. 동시에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회를 주님의 몸이라고 하는 말씀이 이 둘째의 아픔과 관련 되어져 보였다. 주님의 몸이 아프니 가장 사랑하고 손길이 가장 많이 가고 애지중지하는 귀여운 내 늦둥이 아이 몸을 통해 나에게 교훈함이 역력한 듯 보였다.

언급한 그 주님의 몸이 아프다 라 함은 이번 주 본인이 담임하는 교회에 대한 임지이동 문제 논의가 있음을 일컫는다. 이처럼 자식을 통해 경험한 일은 비단 이번만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게 스스로 해석 해보는 이유이다.

수년전 11년 넘게 개척하여 목회했던 그 교회에서 다른 교회로 임지를 옮기고 난 후 지금은 중3이 된 장남 5살 때 일어난 일이다. 새로운 임지에 부임하자마자 교회 주변 사람 중에 정신장애 가진 학생이 내 아들 손에 녹슨 못을 박아 급히 응급실로 가야 될 가슴 쓸어내렸던 일, 또 이웃 어른이 애들끼리 여럿이 놀던 중에 우리 아이가 자기볏단에 올라 논다고 스케이트 날을 던져 머리가 깨진 섬찟한 일 등이 오버랩 되었다.
이에 대해 그 교회 신고식을 톡톡히 치른 셈이라고 그 때 일을 떠 올릴 때면 아내와 함께 입을 모은다.

그런 이후 어린 둘째아들 육체의 몸이 고열로 몸살이하는 아픔이 주님의 피 값으로 사신 영적인 몸이 똑같이 고통을 당하시는 것이 아닌가? 내심 읊조리며 주님의 마음을 읽는 시간을 어느 때보다 더 세밀하게 보내고 있다.

교회와 더불어 살아오고 있고 앞으로 교회와 더불어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 아니 생명공동체이기에 내게 일어나는 일, 내 가족 중에 일어나는 일, 주위에 일어나는 일 등을 고려할 때 이는 교회와 결코 무관하게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그러기에 교회의 건강은 목회자와 성도의 건강과 직결되고 교회의 건강은 그 시대가 처한 사회의 건강을 가늠하는 바로미터 라고 말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 지금까지 목양적 관점에서 조심스럽게 내려 보는 목회적 소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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