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해가는 사울왕
망해가는 사울왕
  • 이구영
  • 승인 2015.06.19 07: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무엘상 13장에 보면 사울왕의 몰락이야기가 나옵니다.
겸손하고, 배려심 깊고, 효성 깊고, 관용을 베풀 줄 알던 영웅 사울의 몰락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우선은 공격적이 되어가는 사울을 보게 됩니다.
블레셋의 침입이 있을 때, 암몬 사람들의 침입이 있을 때 군사들을 모집해서 방어위주의 전술을 펴던 사울이 군사의 수를 헤아리고 적극적인 공격을 시도하게 됩니다. 몇 번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교만해지기 까지 해서 3000명의 정예병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생업의 현상으로 돌려보낸 후, 블레셋 사람의 수비대를 공격합니다.
망해가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지출규모가 커지는 것입니다. 수입에 비해서 지출이 늘어나면 부도납니다. 일단 쓰고 봅니다. 일단 공격하고 봅니다. 일단 험담하고 봅니다. 일단 정죄하고 봅니다.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화를 내고 목소리가 점점 커집니다. 망해가는 징조입니다.

둘째는 자기가 살려고 법을 어깁니다.
이스라엘의 공격에 위기를 느낀 블레셋 진영에서는 총 동원령을 내렸고 그들은 해변의 모래같이 많이 모여 진을 치고 전쟁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섣부른 공격이 이렇게 크게 번질 줄 몰랐던 어리석은 사울은 다급해지자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과거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사람들을 모아 하나님께 예배드렸을 때, 전쟁에 개입하사 승리를 주신 대 역사를 기억하면서 사람들을 다 모아 예배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높이기 위한 예배가 아닙니다. 나 살자고 드리는 예배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을 이용해서 자신이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어갑니다. 드디어 사람들은 모여 들었는데, 그들은 많이 겁을 먹고 있었습니다. 블레셋의 위용 앞에 기가 죽었습니다. 하나둘 흩어지기 시작하고 도망치는 사람, 숨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다급해진 사울은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을 전쟁에 초대하고 싶었는데 예배 인도자인 사무엘 목사님이 약속시간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다급해진 사울왕은 스스로 제사장의 역할을 대행합니다. 제사장만이 집례할 수 있는 제사를 집례한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월권이요 교만이요 무지요 죄악이었습니다. 그저 자기 살겠다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질렀습니다. 철저히 준비되어야 할 예배가 소홀히 여겨졌습니다. 무시당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불법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지식이 많은 자들은 그 지식을 이용해서, 돈이 많은 자들은 그 돈을 이용해서, 외모가 그럴듯한 사람들은 그 외모를 이용해서, 힘이 있는 사람들은 그 힘을 이용해서 그렇지 않은 자들을 멸시하고 약탈합니다. 하나님도 나를 위해서만 필요하고, 하나님의 말씀도 내게 도움이 될 때에만 순종하려고 합니다. 망해가는 징조입니다.

셋째는 끝까지 자존심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핑계를 댑니다. 분명한 잘못을 지적하는 사무엘에게, 그리고 보호자이신 하나님께, 어떤 용서도 구하지 않고 끝까지 변명을 하며 자신의 불의를 정당화 하려고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후 회개하지 않은 것처럼, 사울도 회개하지 않고 자신을 변명합니다.
자존심은 때로는 패망의 주요 원인이 됩니다.
부모의 꾸지람을 듣는 자녀들이 자존심을 내세워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하나님의 자녀들도 회개하지 못하고 숨어 들어갑니다.
망해가는 징조입니다.

수입을 늘리는 것도 좋지만 불황과 위기의 시대에는 우선 지출을 줄이는 것이 좋습니다.
공격적 경영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다지기도 필요합니다. 험담하기 보다는 입을 다물어야 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분노를 표출하기 보다는 분노를 다스릴 수 있는 믿음과 사랑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뒷문이 열려 있으면 아무리 들여보내도 다 빠져나감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중요해지만 이게 지나치면 하나님이 작아 보입니다.
반대로 내가 너무 커 보이면 하나님조차 무시하게 됩니다. 예배의 회복, 정의의 회복, 법의 수호가 그래서 더 귀하게 느껴집니다. 나 하나 살자고 내 뜻 관철시키려고 하나님의 법을 어길 수는 없는 일입니다.
위기의 시대일수록 더욱 더 겸손함으로 섬기고 사랑해야 함을 기억합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그립습니다.
충분히 높아지셔도 되는데 끝까지 낮아지십니다.
이제는 대우 받으셔도 되는데 끝까지 섬기십니다.
월권, 초법적 존재이셔도 되는데 그 법 안에서,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위해 십자가를 선택하십니다.

망해가는 사울의 모습과 대조되는 예수님의 삶입니다.
나는, 우리는, 오늘 우리의 교회 속에는 망해가던 사울의 모습이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의 모습이 있습니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