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회 양화진 음악회
12회 양화진 음악회
  • KMC뉴스
  • 승인 2013.09.17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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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진에 안장된 셔우드 홀과 웰본 선교사의 후손이 초청

지역사회를 섬기고 우리 사회와 소통하기 위해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100주년기념교회, 담임목사 이재철)가 주관하는 제12회 양화진음악회가 9월 26일(목) 오후 8시에 합정동 소재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야외무대에서 열립니다.

초청된 연주자

양화진음악회는 2008년부터 매년 봄과 가을에 열리고 있습니다. 세계 정상급 클래식 연주자와 대중음악 연주자들이 번갈아 가며 무대에 오르고 있습니다. 이번 양화진음악회는 유럽에서 활발한 연주 활동을 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이미경 뮌헨 국립음대 교수와, 2012년 음악계의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 여왕 메달’을 받은 세계적인 오보이스트 니콜라스 다니엘, 그리고 탤런트 정준 씨가 나레이션을 맡게 됩니다.

연주할 곡과 간단한 해설

이번 연주회에서는 에드워드 그리그가 노르웨이 출신 덴마크 극작가 루드비그 홀베르그(Ludvig Holberg)의 탄생 200주년 기념제를 위하여 현악합주용으로 작곡한 <홀베르그 모음곡>, 최근에 발견된 헨델의 오보에 협주곡,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바이올린과 오보에를 위한 협주곡 D단조, 모차르트의 잉글리시 호른과 현악합주를 위한 아디지오 K 580a, 나탄 밀스타인의 바이올린 솔로를 위한 파기니니아나, 영화 <미션>의 주제 음악으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은 엔리코 모리코네의 가브리엘의 오보에,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의 서사시 메타모르포세스를 음악화한 벤쟈민 브리튼 작곡의 오보에 솔로를 위한 메타모르포세스가 연주됩니다. 특히 바이올린의 이미경 교수와 나레이션을 맡은 탤런트 정준 씨는 꽃을 좋아하는 스페인의 황소 페르디난드의 동화를 주제로 알란 리도우가 작곡한 바이올린과 나레이션을 위한 황소 페르디난드가 눈길을 끕니다. 연주회 마지막 곡은 조지 거쉬인의 오페라 <포기와 베쓰> 중에 나오는 ‘썸머타임’을 가지고 단스워스가 편곡한 바이올린과 오보에를 위한 썸머타임입니다.

함께 초대된 세 분의 양화진 안장 선교사 후손

이번 제12회 양화진 음악회에는 양화진에 안장된 두 분 선교사의 후손이 초대되었습니다. 클리포드 킹 씨는 셔우드홀(1893~1991) 선교사와 그의 아내 마리안홀(1896~1991)의 네 자녀 중 쌍둥이로 태어난 막내딸 필리스 마리안의 외아들로, 셔우드홀의 유일한 외손자입니다.
프리실라 웰본 여사는 양화진에 안장된 웰본(H. G. Welbon, 1866~1928) 선교사의 손녀로, 웰본 선교사 장남의 쌍둥이 딸 중 동생입니다. 프리실라 웰본과 동행하게 된 그녀의 남편은 고든 에비 씨인데, 이분은 세계적인 심장전문의로 알려진 분입니다.

닥터 홀 선교사 패밀리 소개

양화진에는 클리포드 킹 씨의 외할아버지 내외인 셔우드 홀와 마리안 홀, 고조 할아버지 내외인 윌리엄 제임스 홀(1860~1894)과 로제타 홀(1865~1951), 그리고 이들의 자녀 두 명을 합해 총 6명이 안장되어 있습니다. 윌리엄 홀과 로제타 홀은 의료선교사로사로 내한하여 평양 선교와 장애인 선교에 헌신했습니다. 어려운 가정환경을 극복하고 퀸즈대학교 의과대학과 뉴욕 벨레뷰 병원의과대학에서 공부하여 의사가 된 제임스 홀은 뉴욕 빈민가에서 의료 봉사를 하면서 조선 선교를 준비하던 의사 로제타를 만났고, 한국 선교사로 헌신한 로제타가 1890년에 한국 선교사가 되자 그 다음해에 자기도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윌리엄이 평양에서 의료 활동을 하면서 교회를 개척하는 동안 아내 로제타 홀은 여성 전문병원인 서울 보구여관에서 의료 선교사로 일했습니다. 그러나 윌리엄 홀은 평양에서 벌어진 청일전쟁의 부상자들과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불철주야 노력하다가 전염병에 걸려 1894년 소천한 뒤 양화진에 안장됐습니다. 그 이후 두 자녀를 데리고 미국으로 돌아갔던 로제타 홀은 1897년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다음해에 유복녀로 태어난 딸 에디스(Edith M. Hall 1895~1898)를 아버지 곁에 묻어야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제타 홀은 평양에서 약 20년 동안 헌신하면서 남편을 기념하는 기홀병원과 여성을 위한 광혜여원을 설립하여 여성과 어린이들을 돌봤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점자법을 개발하여 광혜여원에서 맹인을 위한 교육을 시작했고, 1917년부터는 서울 동대문병원에서 일하면서 여자의학원을 설립하여 나중에 경성의학교로 발전시켰습니다. 이 학교는 훗날 고려대 의과대학으로 발전했습니다. 1935년에 미국으로 돌아가 1951년 미국 뉴저지에서 소천한 로제타 홀은 화장되어 남편이 묻힌 양화진에 합장되었습니다.

클리포드 킹 씨의 할아버지 셔우드 홀은 1893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평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셔우드 홀은 1910년 미국으로 돌아가 오하이오 주의 마운트 유니온대학을 다녔는데 그곳에서 마리안을 만났습니다. 그 이후 마리안과 의사가 되어 1926년 4월 미국 감리회 의료선교사로 내한하여 일제에 의해 추방당한 1941년까지 의료선교사로 헌신했습니다. 셔우드와 마리안은 1926년부터 황해도 해주 구세병원에서 의료선교사역을 시작했으며, 1928년에는 해주 교외에 우리나라 최초의 결핵용양소인 구세요양원을 설립했습니다. 이후 그들은 당시 한국의 최대 전염병 중 하나였던 결핵퇴치를 위해 온힘을 기울였고, 특히 1934년부터는 결핵퇴치운동의 확산을 위해 크리스마스 실을 발행해 결핵퇴치운동의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셔우드 홀은 일제의 탄압이 극심해지던 1940년 일제에 의해 친미간첩 혐의로 연행됐다가 복역 중 1941년 11월 추방되었다가 인디아로 건너 가 그곳에서 1963년까지 의료선교사로 결핵퇴치운동을 벌인 후 은퇴했습니다. 1978년에는 한국에서의 선교활동을 정리한 회고록 <닥터 홀의 조선회상>을 펴냈습니다. 1993년 11월에는 대한결핵협회가 셔우드 홀 선교사 탄신 100주년을 맞아 그를 기리는 공적비를 세웠습니다.

웰본 선교사 소개

프리실라 웰본 여사의 할아버지인 웰본 선교사는 원주, 안동, 대구 등 우리나라의 오지에 복음을 전한 개척 선교사입니다. 웰본 선교사는 1866년 8월, 미국 미시건 주 이스트맨빌에서 태어나 매칼레스터대학과 샌프란시스코신학교를 졸업한 후 1900년 10월, 미 북장로교 해외선교사로 내한했습니다. 1년 뒤 1899년부터 조선에서 간호선교사로 헌신하고 있던 사라 선교사와 결혼했습니다. 1909년까지 서울 선교부에서 사역하며 YMCA 설립위원으로 기여하는 한편 철원과 원주 지역 선교의 초석을 놓았습니다. 그해에 북장로교 안동선교부 대표 선교사로 임명되어 8년간 안동 지역에서 활동하였습니다. 안동선교부 개설 당시 60교회, 3,000명이던 안동지역 교세가 1922년에 122개 교회, 7000명 교인으로 성장하는 데는 웰본 선교사 부부의 공헌이 작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 웰본 선교사는 2년 동안 평양에서 선교하다가 아내의 건강이 나빠져 1919년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3년 만에 다시 홀로 내한했습니다. 그러나 대구와 안동선교부에서 활동하던 중 1928년 과로로 장티푸스에 걸려 사망했습니다. 웰본 선교사의 6남매 중 태어난 지 10일 만에 사망한 첫째아들 하비(1903년)와 3살 때 사망한 막내딸 앨리스(1914년)도 양화진에 안장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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