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쟁이 '류제경 기념사업회'
규칙쟁이 '류제경 기념사업회'
  • KMC뉴스
  • 승인 2023.11.02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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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회장에 류제경 장로 장녀 류희상 권사 추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역사’라는 책에서 바빌론 여왕 니토크리스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도시 중앙을 통과하여 곧게 흐르던 유프라테스 강에 운하 몇 개를 파 물이 몇 구비로 굴절되어 흐르게 했다. 홍수를 예방하는 효과는 물론이고 외적들이 곧 바로 도성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또 많은 기념비들과 도로를 건설했다. 니토크리스는 소름끼치는 장난도 생각해냈다. 그는 도시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지나다니는 문 위에 자신의 묘를 만들게 한 후 이런 비문을 새겨 넣었다.

“금후 바빌론의 왕으로서 돈이 궁한 자는 이 묘를 열고 마음대로 돈을 취하라. 그러나 돈이 궁하지 않을 때는 함부로 열지 마라. 재앙이 있으리라.”

꽤 오랫동안 이 묘는 훼손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시체가 놓인 문 밑을 걷는 것이 꺼림칙하여 그 문을 사용하지 않았다. 나중에 다레이오스 왕은 그 문을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났고, 가능성이 있는데도 그것을 취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생각이 들어 사람들에게 그 묘를 열게 했다. 묘를 열자 재보는 없고 시체와 다음과 같은 문구만 있었다고 한다.

“네가 탐욕스럽지 않고 가장 비열한 방법으로 돈 벌기를 바라지 않는 자라면, 죽은 자의 관을 열지는 않았으리라.”

가장 절박한 순간 그 묘를 열면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이 왕들로 하여금 오히려 현실의 어려움을 견결하게 버텨낼 수 있는 힘으로 작동했는지도 모르겠다. 다레이오스는 그 보이지 않는 힘을 가시화하고 싶어 했고, 결과적으로 어리석은 자로 판명되었다. 석과불식(碩果不食)의 지혜가 필요하다. 씨 과실은 남겨두어야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옛 농부들은 굶주리면서도 이듬해 파종을 위해 곡식을 여퉈두었다. 지켜야 할 것을 끝끝내 지키는 것이 용기이다.

이런 실천적 지혜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 우리 시대의 슬픔이다. 미래 세대가 누려야 할 모든 것들을 가불하여 사용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자원이 고갈되고, 자연의 역습이 시작되었다. 기후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은 대체로 인정하는 분위기이지만 기후 붕괴를 막기 위해 당장 불편을 감수할 마음은 품지 않는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근거 없는 낙관론이나 아무리 애써 보아도 결국은 소용이 없을 거라는 비관론이 암암리에 퍼져있다. 후쿠시마 오염수 2차 해양 방류가 다시 시작되었다. 이 오염수가 장기적으로 지구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모른다면 해동머리에 얼음 위를 걷듯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일이다. 이미 벌어진 사태라 여기기 때문일까? 사람들은 이 엄청난 사건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인다. 세상의 모든 분노와 아픔까지도 표백시키는 시간의 풍화작용을 굳게 믿는 이들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때 사회는 위험에 빠진다. 신뢰의 토대인 말이 오염되었다. 소설가 이청준의 말처럼 사람들에게 혹사당한 말들은 기진맥진 지쳤고, 고향을 잃어버린 말들은 고향에 대한 감사와 의리를 잃어버렸다. 소통의 매개인 말이 오히려 단절을 심화시키는 아이러니를 우리는 일상적으로 경험한다. 여백과 여유가 없는 말은 때로 예리한 칼날이 되어 사람들을 갈라놓는다. 스스로 기준이 되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이들은 자기와 다른 이들을 배제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다. 배제는 혐오로 이어지고, 혐오는 억압이나 폭력을 정당화한다. 망설임이나 머뭇거림이 허용되지 않는 세상에서 진실은 가뭇없이 스러진다.

욕망의 벌판을 질주하는 동안 사람들의 호흡이 가빠졌고 성정은 거칠어졌다. 성경은 세상의 끝이 다가올 때 사람들은 돈과 쾌락을 사랑하고, 무정하고, 절제가 없고, 무모하고, 난폭하고, 선을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역사는 공감의 확대 과정이라는 말을 믿고 싶지만, 현실은 그런 우리의 낙관론을 비웃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일이든 이드거니 감당하는 이들을 만나기 어렵다. 성심과 성의를 다해 자기 일을 수행하는 이들이 줄어들고 있다. 시간 속에서 형성되던 삶의 서사가 사라지고 명멸하는 감각의 파편만 남을 때 뿌리 없이 떠도는 삶이 일상이 될 수밖에 없다.

어렵더라도 니토크리스의 묘는 그 자리에 간직되어야 했다. 니토크리스의 묘를 파헤치려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미래 세대의 것까지 허물어 자기 배를 채우려는 욕망은 어리석음이다. 다른 이들을 배제하기 위해 함께 딛고 서야 할 신뢰의 토대를 허무는 순간 자기 역시 추락할 수밖에 없다.

(2023/10/07, 경향신문 '사유와 성찰' 칼럼입니다)

류관순의 조카로서 2세 때 류관순 등에 업혀 만세시위에 참여했다는 류제경 장로(1917~2012. 공주제일교회, 대전중앙교회)의 신앙과 애국심, 그리고 교육철학을 계승하기 위한 <류제경기념사업회>가 11월 1일 서울 세종대로의 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창립되었다.

대한민국 3.1회와 류제경기념사업회 준비위원회가 주관해 창립된 <류제경기념사업회>는 이날 창립총회를 열어 류제경 장로의 장녀인 유희상 권사를 초대회장에 추대하고 류제경 장로의 94년 삶을 지탱했던 신앙심, 나라사랑, 교육철학을 다음세대에 전하는 사업을 이어가기로 했다.

애국지사 류제경 장로는 1917년 2월 28일 충남 공주에서 아버지 류경석 장로와 어머니 노마리아 장로의 7남매 중 장남으로 출생하여, 일찍이 기독교를 받아들인 할아버지(류중무 전도사)와 외할머니(백정화 권사)의 독실한 믿음 3대로 이어진 신앙생활 영향으로 일평생 기도와 말씀묵상으로 참된 신앙인의 정도를 걷다가 2012년10월13일 95세를 일기로 하나님 부르심을 받아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훈장 목련장(1972년)과 건국공로훈장 애족장(1990년)을 수여했다.

그는 12살이 되던 공주보통학교 6학년 때부터 공금학원 야학교사로 문맹자 한글교육과 민족계몽운동을 실시하였으며, 일제말기(1941년)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학생들에게 독립정신을 고취하였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3년형을 받고 서대문형무소를 거쳐 중국해남도에 끌려가 강제노동복역했다. 해방후 중고등학교 교사, 교감을 거쳐 일제 강점기 공주에 와 있던 프랑스 신부에게 배운 프랑스어를 기반으로 해방 후 공주사범대학 교수로서 불어불문과를 창설, 1957년부터는 공주사범대학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하였고, 만65세 정년퇴임 후에도 대전 및 청주대학교에서 1995년까지 불어불문학 교수로 후진양성에 진력하는 등 교육자로서의 일생을 보냈다.

무엇보다 류제경 장로는 22살 되던 초등학교 교사 시절인 1939년 11월 23일부터 건강 악화로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게 된 2008년 11월 13일까지 정확하게 70년 동안 일기를 썼다. 일기에는 일제말기 암흑과 해방직후 사회적 혼란, 전쟁으로 인한 파괴와 살상, 숨 막히는 독재와 갈등과 분노의 혁명, 새 질서를 찾기 위한 대중의 몸부림 등 역사 현장에서 목격하고 체험한 ‘기독자 지식인’의 고백적 증언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렇게 쓴 일기는 대학노트 117권 분량. 21,516쪽에 이른다. 이 일기는 감신대에 기증되었다.

류 장로는 기독교인으로서 올바른 마음가짐과 이를 구체적인 삶 속에서 실현하기 위해 엄격한 신앙훈련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그 스스로 매일 새벽에 기도하기, 성경 읽기, 성경 강좌와 신앙서적 읽기, 찬송하기, 글쓰기. 시조 짓기, 하루 세 번 걷기, 걸으면서 기도하기, 맨손체조하기. 독서하기 등을 수십 년 동안 매일 일정한 시간에 규칙적으로 실행한 메도디스트(규칙쟁이)였다.

류제경 장로의 가족들과 친지, 제자들, 안모세 목사를 비롯한 대한민국3.1회 관계자, 이수성 전 총리, 이덕주 전 감신대교수, 이우권 인덕대 총장, 은아월드미션 이사장인 구완서 목사, 독립유공자 유족회 김삼열 회장을 비롯한 지인들 등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류제경기념사업회> 창립감사예배를 드렸다.

창립감사예배는 구완서 목사(은아월드미션 회장)의 사회, 김진규 장로(전 공주대 교수)의 기도, 이현석, 송인옥, 박한용 등 공주사대 제자들의 한글, 영어, 불어 성경봉독, 안모세 목사(대한민국3.1회 회장)의 설교, 임헌경 목사(공주사대 제자이자 부산중앙교회 담임)의 축도 순으로 진행됐다.

창립감사예배에서 “별과 같이 빛나리라(단12:3)”를 제목으로 설교를 전한 안모세 목사는 “신앙과 애국심을 가지고 70년동안 류제경 장로가 동방의 칸트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로 규칙적이고 질서 있는 삶을 살았다”고 소개하며 “오늘의 시대에 바라볼 사람, 스승으로 삼을 사람이 없는데 제 자리를 지키는 별처럼 타협하지 않는 삶을 사셨던 류제경 선생은 우리에게서 별과 같이 빛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석윤 목사(대한민국3.1회 사무총장)의 사회로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국민의례로 시작된 창립총회에서 회원들은 류제경 장로의 약력을 보고받고 그를 기념하는 사업을 펼치기로 했으며 류제경 장로의 장녀인 류희상 권사를 <류제경기념사업회> 초대 회장으로 추대했다. 참가자들은 초대회장을 박수로 환영했다.

류희상 초대 회장은 단상에 올라 아버지의 일기를 세상에 드러나게 해준 이덕주 교수와 기념사업회를 발족시켜 준 안모세 목사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오늘, 여기, 류제경 교수님의 생애와 사상을 통하여 전쟁과 재난과 혼란으로 무질서한 시대에 질서를 민족의 숭고한 가치와 인륜의 미덕을 회복하고자 책임적 존재로서 겸손과 헌신의 고상한 품격을 위하여 역사화 작업이 시작되는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하신 내외 귀빈 및 가족 친지 제자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와 환영의 말씀을 드린다.”고 인사했다.

이수성 전 총리와 이덕주 전 감신대 교수가 축사를 전했다. 이 전총리는 일제가 해방과 동시에 해남도 산야에 나와 있던 한국인 강제노역자들을 살해해 매장한 이야기를 전하며 “류제경 선생이 3년형을 마치고 44년에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거기서 돌아가셨을 것”이라고 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에 달렸다는 의미를 전하려 한 이 전총리는 “이렇게 빛나는 업적, 그 올곧은 정신, 애국심, 이것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밝혀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기념사업회가 류제경 장로의 업적을 세상에 드러내 사표로 삼게 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덕주 교수는 류제경 장로의 70년 일기를 류희상 회장 부부로부터 기증받았을 당시를 떠올리며 “처음에는 역사학자로서 어떤 역사적인 사실, 정보, 자료 같은 것이 담아있는가 하는 호기심으로 시작했으나, 그러나 그것은 고백이었고, 명상이었고, 참회였고, 혼이 담긴 글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류제경 장로님의 94세의 삶을 지탱했던 세 가지 기둥이 있었으니, 그것은 부모님께로 부터 물려받은 기독교 신앙, 그리고 일제강점기 유관순 집안에서부터 시작된 나라 사랑의 그 굳건한 믿음, 그리고 평생 초등학교 교사로부터 시작해서 대학교 교수에 이르기까지 교육자로서 바른 사람 세우기, 이 세 가지였다”고 소개하고 “유재경 교수님은 교수로서 또 장로로서, 애국지사로서 많은 업적을 남기셨지만, 유재경 교수님은 항상 성경을 읽으셨고, 성경 속에서 믿음의 바른 길을 찾으셨던 분으로 히브리서 4장 11절의 말씀처럼 그는 죽었으나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고,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3.1회 회장이자 민족시인인 안모세 목사는 자작 축시 ‘당신의 길’을 낭독하여 류제경 장로를 기렸다. 유희상 초대회장의 폐회선언으로 창립총회를 마친 참석자들은 기념촬영과 오찬을 나누며 교제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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