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妥協, compromise)
타협(妥協, compromise)
  • KMC뉴스
  • 승인 2011.02.04 12: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행5:39)
 
미국의 남북전쟁 때의 이야기입니다. 남군과 북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일 때 한 사람이 중립을 지키기로 하고 지혜를 발휘하였습니다. 그래서 상의는 남군이 입는 회색 점퍼를 입었고 하의는 북군이 입는 청색 바지를 입었습니다. 그는 남북 군이 대치하고 있는 중간에 서서 나는 중립이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런데 그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북군의 저격수가 남군의 상의를 입은 사람에게 총을 쏘았고 동시에 남군 측에서도 북군의 청색 바지를 입은 이 사람을 향하여 총을 쏘았습니다. 그는 현장에서 즉사하였습니다.
 
세상에서는 흑백논리를 위험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항상 타협이라는 것이 양보와 균형을 이루는 미덕인 양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흑백 보다는 회색을 선호합니다. 그러나 신앙 세계는 다릅니다. 흑과 백은 결코 회색으로 타협할 수 없습니다(고후6:14-17). 영적세계에서 타협은 아주 위험한 것이며 마귀가 시험하는 통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타협의 덫에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며 단호히 타협을 거부했고 승리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생각엔 대체로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 것입니다. 타협이란 흔히 ‘너 좋고 나 좋지’라는 식의 행동 원리를 취합니다. 그러나 진리는 아닌 것은 아닙니다. 진리와 비진리가 섞일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양과 염소가 비슷하다고 같은 것은 절대 아닙니다. 완전히 다릅니다. 가말리엘이란 율법학자는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의 소행에 대하여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고 판단을 유보하며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모든 죄가 타협함으로 들어옵니다. 솔로몬이 이방여인들을 왕궁에 들이면서 우상숭배의 죄로 발전합니다. 타협은 두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입니다(약4:4; 마6:24). 타협하면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타협하면 마귀와의 싸움에서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타협의 결과는 아주 비참하여 영적인 권위와 존엄과 축복을 잃어버리고 마귀의 조롱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삼손의 최후를 보십시오.
 
영적 생활에서 사탄의 유혹을 단호하게 물리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마귀의 유혹은 초전박살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마귀에게 조금씩 타협하여 양보하면 마귀는 점점 강해집니다.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에 유폐되어 있는 동안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는데 마귀가 자주 찾아와 타협을 제의하며 방해했습니다. 루터는 그때마다 잉크병을 집어 던지며 “사단아 물러가라”고 외쳤습니다. 루터가 사탄에게 “NO!”하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타협은 단호히 물리쳐야 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