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양 전국 교역자 세미나
낙양 전국 교역자 세미나
  • 주성호
  • 승인 2017.05.18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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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호 목사, 은퇴 후 새로운 삶의 시작

새벽 6시에 택시를 타고 베이징 공항 국내선 2터미널에서 기다리고 있던 유선교사와 이번에 통역할 몽이를 만났다. 몽골에서 6년 동안 한족으로 한글을 배웠다고 하는데 과연 통역이 가능할까 의심하면서 넷이서 국내선으로 1시간 50분 만에 낙양에 도착했다.

전국에서 목회자들이 모여들어 아파트에 집결하여 점심을 먹고 나서 바로 강의가 시작되었고 첫 시간 강의 시간에 지안과 환인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고 나서 그곳이 실은 고구려 430년간 고구려 도읍지요 역사적으로 옛날 한국 땅이라고 했더니 크게 반발이 일어났고 10분 휴식시간에 쪽지가 올라왔다. 정치 이야기는 말아 달라고 하며 몇 명이 기분이 상해 돌아가려고 했다는 말을 듣고 속으로 한명이라고 가는 일이 발생하면 나는 바로 짐을 꾸려 가버리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다행하게도 요동이 없어 오후 강의를 끝냈는데 벌써 신고가 들어갔다는 것이다. 웬 사람들이 모였느냐? 여러 지역에서 모인 관광객들이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일은 차를 여러 대 세우고 관광을 일단 다녀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튼 날 휴강하고 낙양 박물관을 돌아보았다.
당나라 시대 수도다운 면모를 갖춘 규모였고 낙양은 목단 단지로 목단 장식이 많았고 특이했다. 다음날 강의는 부득이 장소를 옮겨야 했고 공장 내 안전 장소를 제공 받았다.
13년 중국에 다니며 강의를 많이 했어도 처음 경험함인데 그만큼 선교하기가 어려워졌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공장 사장 내외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교육장소를 허락했고 그날 점심까지 요란한 식당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녀 보았지만 20명이 앉는 round table은 처음이다. 중국식 대접은 푸짐도 하지만 요란해 보였다. 중국식 대접은 먹고 난 상에 음식이 많이 남아야 손 대접 제대로
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음식 문화와 큰 차이점이기도 하다.

강의실로 허락된 장소가 대형 회의실에 교육하기엔 너무도 좋은 여건이었다.
마이크 사용에 각종 시설이 완벽해서 여러 가지로 편리해서 강의하기에 좋았다. 쉬는 시간에 차를 대접 받으며 중국어 번역본 나의 책을 싸인하여 사장에게 전달했더니 안수 기도를 요청해 응하게 되었고 70여명의 회사 직원 중 50%가 이미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들었다. 주일이면 목사를 초빙하여 매주 예배도 드린다고 했다.
그런데 강의 3일째 오후에 목이 아프며 기침도 나고 열이 나기 시작하였다. 이미 베이징에서 3월15일이면
일체 난방 작동이 중지되므로 추위를 느꼈는데 낙양은 베이징에서 국내선 비행기로 서남쪽 두 시간 내려 왔기에 베이징 보다는 덜 추우리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아예 난방 시설초차 되지 않고 온수조차 사용되지 않아 많이 불편할 뿐 아니라 추리닝을 입은 채 두꺼운 이불을 덮었는데도 보온이 되지 않은 채 온 밤을 지냈다. 해열제를 계속 먹어가며 하루 강의를 끝내고 나서 다운 된 채 하루 밤을 지세우고 금요 오전 강의까지 하므로 계획된 강의를 끝냈다.

점심 식사를 간단히 하고 공항에 도착하고 보니 3시간의 여유가 있어 의자에 누워 가방에서 몇 가지 옷을 꺼내 긴 시간 덥고 있다가 베이징 공항에 도착했다. 다행이 예약된 호텔에서 나온 차로 도착해 하루 밤 지내고 다음 날 한국행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귀국하자마자 밤에 병원 응급실을 찾아 처방을 받고 영양주사 두병에 10여일 치료기간이 필요했다. 나이를 생각지 않고 건강만 믿고 두 주간 스케줄을 잡은 것을 후회하며 앞으로는 한 주간만을 강의하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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