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다 귀하다
귀하다 귀하다
  • 신상균
  • 승인 2016.02.03 0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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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교회의 시골목사 이야기 2016년 2월 3일

알람소리가 울린다. 새벽 3시 50분, 무거운 몸을 일으키고 세수를 한다. 그리고 딸아이 방에 가서 딸아이를 깨운다.

“나라야 일어나야지, 반주해야지”

딸아이는 몸을 더 웅크리면서 말한다.

“싫어 싫어. 나 하기 싫어”

우리교회는 매월 1일 새벽에 성찬예배를 드린다. 주일이어도 월요일이어도 무조건 1일은 새벽 5시에 모여 성찬예배를 드린다. 나는 4시 20분경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50분경 강단에 올라가 성찬을 집례한다.

그런데 작년 7월부터 시간이 바뀌기 시작했다. 성가대를 지도하던 장로님이 멀리 이사를 가는 바람에 내가 성가대를 지도하게 되었고, 딸아이가 반주를 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내가 일어나는 시간 3시 50분, 성가대 연습 4시 20분, 그리고 4시 50분에 강단에 올라 성찬을 집례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이 30분의 시간이 굉장히 빠른 느낌이 들었다. 목사인 나도 30분 일찍 일어나는 것이 힘든데, 평소에 새벽기도를 하지 않는 6학년짜리 딸아이에게 그 시간이 얼마나 낯선 시간일까!

그러니 당연히 싫다고 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딸아이를 깨우고 나는 먼저 교회에 갔다. 예배 준비를 한 후 성가연습을 하기 위해 교육관으로 갔다. 잠시 후 딸아이는 졸린 눈을 비비며 피아노에 앉았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매우 안스러워했다.

자리에 앉아서도 아이가 그런다.

“ 나 오늘이 끝이야. 이제 안할 거야.”

“그래 하지마” 하고 싶지만 꾹 참는다. 그러면서 딸아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예전에 반주했던 아이들이 생각났다.

‘그 아이들도 하기 싫었을 텐데, 엄마 때문에 할머니 때문에 하지 않았을까? 그 아이들도 참 힘들었겠구나!’

그러다 보니 4시 20분까지 부리나케 달려 나와 성가대를 하는 성가대원들도 다시 보이는 것이었다. 4시 20분까지 오려면 최소 4시 5분에는 나와야 하고, 그때까지 오기 위해서 3시 30분에는 일어나야 하고…

갑자기 성가대를 보는 순간 그들의 수고와 헌신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말했다.

“귀하다. 귀하다. 참 귀하다”

딸 아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비의 심정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성가대이니까 당연히 일찍 나와 성가를 해야 하고, 반주자이니까 당연히 반주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성가대와 함께 연습을 해보니까, 딸아이가 반주를 하기 위해 졸린 눈을 비비며 나오는 것을 보니까, 그제서야 성가대와 반주자의 모습이 얼마나 귀한지 알게 되었다.

참 미안했다. 진실로 느끼지 못했던 목사의 메마른 감정에 내가 진정 이들을 사랑했는가 하고 묻게 되었다.

언제나 불평 없이 자신의 일을 했던 성도들, 어린 나이에 고사리 손으로 반주했던 아이들, 그리고 당연한 듯 바라보던 담임목사.

과연 영적 스승, 영적 아비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오늘 나는 달라졌다.

헐레벌떡 달려오는 성가대원들, 짜증내면서도 반주하는 딸아이,

추운 새벽에 나와 가장 거룩하게 성찬을 받는 성도들

나는 성찬을 집례하며 속으로 기도한다.

“하나님, 귀한 성도들을 축복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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