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성도의 금식 (마 6:16~18)
33. 성도의 금식 (마 6:16~18)
  • 주성호
  • 승인 2018.08.13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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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이면 실천해야 할 3대 덕목이 있는데 구제, 기도와 금식이다. 그런데 마태복음 6장에서 이미 말씀 드린 대로 구제와 기도의 경우 사람에게 보여주려고 외식하고 있으므로 예수께서 책망하셨는데, 본문에서도 유대인들이 하는 금식조차도 외식하는 이들이 많으므로 문제가 된 것이다.
본래 금식은 이방 종교에서도 흔히 하는 것인데 유대인의 경우 개인의 비애나 회개의 표시로 사용되었다(삼상 31:13; 시 35:13; 단 9:3; 욘 3장). 그런데 포로기 이후에는 국가적인 재난을 슬퍼하는 표로서도 행해졌다(느 1:4, 일년에 네 차례). 예수님께서도 사역을 시작하기 전 금식하셨다. 초대교회 때에는 일주일에 두 번씩(눅 18:12) 목요일과 월요일에 금식했다. 목요일은 모세가 산에 올라간 날을, 월요일은 모세가 산에 내려온 날을 기억하며 금식하였다. 그러나 문제가 된 것은 금식의 원래 목적은 상실되고 남에게 보이려고 하기 때문이었다. 보통 금식은 신앙의 정진을 위하거나 급박한 어려움에 처하여 하나님의 도움을 청할 때 하게 되는데 어쩌면 생명을 내놓고 하는 것이므로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해야 한다.

첫째: 가증히 보시는 금식(16절)

1) 사람을 의식하는 외식적인 금식

본래 유대인들은 그들의 종교적인 표현으로 자주 금식을 하였는데, 본래 금식은 신앙의 내적 표현으로 영과 육에 유익이 큰 것이다. 사람의 육체는 간사하여 서 있으면 앉기를 원하고 앉아주면 눕기를 원하게 되는데 그러므로 조금만 방심하면 나태와 게으름과 안일에 빠지게 되므로 연단의 과정을 통하여 강건하게 되어야 한다. 금식은 육체를 위한 식물의 공급을 차단하는 것으로 육신의 욕구를 이기게 하고 죄를 뉘우치며 깊이 기도하므로 영혼의 평강과 더불어 얼굴은 도리어 환한 빛으로 변화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한 주일에 두 번씩 금식은 하는데 지금 금식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일부러 슬픈 기색을 내고 있었다. 그렇게 우울한 표정을 하므로 사람들에게 동정심과 칭찬을 받기 위해서였다. 금식하면서도 문제가 된 것은 남에게 드러내므로 인정을 받으려 하는 것이었다.

2) 자기 의를 드러내고자 하는 가증한 금식

예수께서는 결코 금식 자체의 필요나 사실을 부정한 것은 아니고 바리새인의 그릇된 금식을 경계한 것이다. 금식이란 자기 의를 사람들에게 드러내고자 하면 외식이 되고 가증한 것이 되므로 어디까지나 하나님을 향한 금식이어야 하고, 육신의 음식을 끊고 절박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는 신호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의식하면서, 사람들에게 칭찬 받고, 또한 자기 의를 드러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어야 한다. 그러므로 금식은 의를 드러내기 위한 방법이 되어서는 안되고 하나님께 회개하며, 몸과 마음을 정결케 하며 진실하고 간절한 간구이어야 한다. 원래 외식하는 자란 뜻이 배우를 가리키는데 금식을 하면서도 외식을 한다면 탤런트가 하는 연기와 같은 것이어서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는 가증한 행위요 금식을 하면서도 칭찬은커녕 책망 받아야 한다.

둘째: 온전하게 보시는 금식(17~18절)

1) 금식하는 자의 자세

사람을 의식하고, 자기 의를 드러내고자 일부러 슬픈 기색을 띠고 금식하는 유대인을 향하여, 예수께서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예수께서 금식에 대한 새 법을 주신 것은 아니고 종교의 어떤 의식이든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행하는 것은 일절 금하신 것이다.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고 하는 것은 사치하라는 것은 아니고 평상시와 조금도 다름없는 모습으로 일상생활 하는 방법으로 사람에게 금식을 했다는 표를 내는 식으로 하지 말라는 것이다. 신앙생활을 표 나게 하는 이들이 많다. 사실 유대인들은 엄격한 금식을 할 때에는 기름을 바르는 것은 금했다(삼하 12:20, 단 10:3). 그러나 일반적으로 고대인들이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행위는 기쁨의 상징이기도 한데. 예수께서는 금식할 때 일부러 슬픈 기색으로 말고 기쁜 마음가짐으로 하라는 말이기도 하다. 금식은 마음과 정신이 어떤 일에 몰두하다 보면 먹고 싶은 생각마저 잊고 있으므로 자연히 금식이 되도록 해야 한다.
억지로 하고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할 때 인간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 열납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가증한 것으로 인정받게 된다.

2) 은밀한 자세

금식할 때에 단정하고 은밀한 자세로 해야 함은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에게 보이게 하려 함이라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마 6:6~7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보편적으로 신앙이 있는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기도는 교회에 나와서 기도한다든가 큰소리로 기도해야 들으시는 것으로 생각한다. 혼자서 조용히 기도한다든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기도하면 아무도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기 때문에 허공을 향한 헛된 기도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으나 기도는 절대로 그런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자세로 기도하느냐에 있다. 기도할 때도 은밀한 자세로 기도하라 하신 주님께서 금식할 때도 사람에게 보이게 말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서 보시도록 하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도록 하라고 하신 것이다. 사람을 의식한 기도나 금식은 사람이 있을 때는 더욱 힘을 내게 되고 주변이 사람이 없으면 맥아 빠지게 되지만,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만을 향해 간구하는 은밀한 기도는 주위 환경에 구애 받지 않으므로 최선의 기도, 진실한 기도나 금식이 되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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